작디작은 나만의 세상에서 홀로 남겨져.
10월은 정말로 재앙 그 자체인 달이었다. 부서진 인간관계와 가족관계. 폐허가 된 위에서 서 있는 것은 나와 내 등에 업힌 고양이 네 마리와 마당의 수호자 15마리. 무엇을 하려고 해도 제대로 되지 않는 달이었고 -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달이었다. 즐거울 때 함께하는 것은 정말로 쉽지만 어려울 때 사람들이 외면하는 속도는 누구보다 빨라서 나의 불행 앞에 사람들은 쉽게 나를 손절하기도 했고 - 내가 그들을 손절하기도 했다. 나는 오롯이 나 혼자 남았다.
이제 나의 소우주가 남들과 부딪혀서 소리 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대대손손 무역을 하지 않고 국경을 봉쇄해 온 나라들이 오래 살아남는 경우는 없었다. 자유로운 사고방식과 사상을 가지는 일도 드물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 정치가 발전했지만 중국에서는 전제주의만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겠는가? 그리스에게는 항해와 - 무역 그리고 민주주의가 있었지만 고대 중국에는 항해는 없고 전제주의만 남았다. 이제 내 소우주는 나의 전제주의 정치만 남았다.
원래도 나는 사람들과의 교류가 서툰 사람이다. 태생이 그렇게 태어났다. 그런 내가 어떻게든 후천적으로 인간관계를 위해서 노력해 왔지만 결론은 쉽게 되지 못했다. 왜 쉽게 되지 못했는지는 사실 아직도 모르겠다. 그냥 다 박살 난 결괏값만 받아들일 뿐이다.
나는 아직도 나에게 의문인 것이 그것이다. 나는 사람을 잃은 것이 두려운 것일까? 아니면 사람과의 교류가 없어 발전이 없을 나 스스로가 두려운 것일까?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하지만 발전하겠다고 너덜너덜해진 나를 계속 인간관계의 파도 속에 갈아 넣을 수도 없다. 그리고 상대의 마음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이 아닌 것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잘되었다. 인간관계가 박살 난 것을 그 기회로 삼기로 했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에 나의 우주를 꾸미는 그런 시간 말이다.
그런데 막상 나의 우주를 꾸미려고 보니 내가 마지막으로 나 스스로에 대해서 명확하게 정의했던 20대와 다르게 30대의 나는 맹숭맹숭해지고 그동안 취향도 스타일도 마음도 너무 많이 바뀌어서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많은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작은 기회에 최선을 다했다면 어른이 된 지금은 든든한 자본력으로 수많은 기회를 창출한 만큼 반대로 기회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 안 하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내 조그마한 밭에 벚나무도 심고 매화나무도 심고 싶다. 그 옆에 목서도 있으면 좋고 딸기도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포도주도 좋아하니 포도나무도 심으면 좋을 것이다. 문제는 이제 내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밭장수라는 거다. 포도를 키우는데도 벚나무를 키우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언제까지 하고 싶은 것, 궁금한 것들을 계속하겠다고 이것저것 기웃거리다가는 내 밭은 뭐 하나 제대로 자라지 않는 이상한 밭이 될 것이다.
내 소우주 역시 이와 비슷하다. 이제는 무엇 하나를 깊게 알아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깊게 알지 못하는 나를 보면 걱정된다. 겨우 고독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내 소우주에 뭘 둘지조차 결정하지 못하는 나를 보면 어렸을 때는 이것보다 더 쉬웠던 것 같은데 그동안 어떤 어른이 된 건가. (내 취향에 관한 에세이집을 어떻게 펴냈는지 놀라울 따름)
30대가 이렇게 맹숭맹숭하면 40대는 더 맹숭맹숭한 어른이 되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이 나를 사로잡는다.
이번 고독으로 내가 나 스스로를 깊게 알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으련만. 다른 어느 것보다 나를 나 스스로 들여다보는 일은 어려운 것 같다. 스스로를 들여보려니 멍해진다. 나는 뭘 좋아했지? 나는 '정말로' 그것을 좋아하는가? 반대로 나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더라고 잘 알고 있는가? 나에게는 어떤 재능이 있는가 등등.
어렸을 때는 남이 나에게 물으면 명쾌하게 대답했던 것 같은데, 지금의 나는 어떤 것도 대답할 수 없는 사람이다. 좋게 말하면 어릴 때보다 세상이 넓어진 거고 나쁘게 말하면 내가 가진 재능은 넓은 세상에서는 그리 특별한 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된 걸지도 모른다.
내 우주에 뭘 심어두면 좋을지, 뭘 하면 좋을지 어디서부터 생각하면 좋을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멍하다. 무언가 계기가 있다면 좋을 텐데. 그 계기를 찾는 것조차 나의 몫일 것이다. 누구 말마따나 그동안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보냈으니 고독한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 모르는 게 아닐까 싶다. 밝음 없는 어두움은 없다고 가장 어두운 시간이 밝아오기 직전이라고 하던데, 내가 이 침전을 현명하게 보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