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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한 Nov 02. 2023

서울에 산다

서울살이에 길을 잃었다.

시차가 없다고 피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도쿄에서 하루에 이만보씩 걸어 너덜너덜해진 몸을 들고 서울로 돌아왔더니 서울은 단풍이 만연하다. 서울. 나의 고향.


아마 서울의 대부분 사람들이 그러겠지만 우리네 부모님들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서울에서 자식을 낳고 산 경우가 많으실 것이다. 나는 그런 자식들 중 하나이다. 부산과 목포에서 올라온 부모님이 결혼해 서울에서 나를 낳았다.


외국 생활, 지방 생활 온갖 생활을 했지만 어디서도 서울 같은 곳은 없었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도시를 가로지르는 큰 강 - 한강이 있다. 파리의 센 강도, 물의 도쿄의 도쿄만도 이와 같지 않다. 그 압도적인 크기와 도시를 가로지르는 호쾌한 패기. 

도심 안으로 들어오면 저 멀리 산이 보인다. 북한산이던 - 인왕산이던, 서울은 산을 끼고 있는 도시이다. 어디서든 산에 쉽게 접근 가능하다. 이는 다른 어떤 도시와도 차별점이다. 공항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차 안, 차창 밖으로 보이는 그 풍경을 보면 언제나 아 역시 이 도시 만한 곳은 없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새의 나는 서울에서 길을 잃은 것 같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무엇을 즐겨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인가를 계속 찾아내는데 어떻게 찾아내는지 부러울 따름이다. 나의 서울 생활은 책과 클래식 음악 고양이의 복지라는 쳇바퀴에서 계속 구르기만 하는 중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유행에 빠릿빠릿하지 않아서인지 스스로를 꾸미는 법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나는 서울 어디서도 재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도시 사람들은 어디서 낙을 느끼고 살까? 이 도시에서 산다는 것이 이 도시의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혹자는 이제 사람들은 서울에서 산다는 것 자체만으로 하나의 계급이라고 하는 서울러로 스스로를 칭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 감사함을 몰라서 이렇게 서울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것일까?


나는 외국의 친구들에게 서울의 가장 좋은 점으로 도시 전체가 거대한 흐름을 가진 -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성을 꼽는다. 서울은 다이내믹하다. 게다가 밤새 잠들지 않는다. 서울은 어디서든지 밤새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원하는 것을 구하는데 돈 이외의 자격 역시 바라지 않는다. 이런 도시는 흔치 않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술을 마시는 것도 사교 생활을 그만둔 나에게 이 도시의 장점은 더 이상 나에게 메리트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말과도 같다. 이 도시의 소란스러움과 걸치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그 눈빛이 지친다. 지치지 않고 살아 숨 쉬는 이 도시는 반대로 조용히 숨을 곳 한 군데 마련해주지 않는다. 어디서든지 SNS와 나만이 이것을 잘 알고 누릴 수 있다는 특권의식이 따라붙는다. 


어쩌면 나의 이 한탄은 이 도시의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는 나의 자격지심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서울에서 나와 맞는 곳을 찾지 못했거나 그 특권의식에 따라가지 못하는 패배자일수도 있겠지. 이 도시에서 나는 그냥 고루하고 뒤떨어진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도 있지만 개인의 개성대신에 남들보다 비교하여 앞선다와 뒤선다만 있는 이 도시에서 개인의 개성은 존중받지 못하고 한 번에 몰개성 하게 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이 도시에서 내 영혼이 쉴 곳을 마련할 수 있을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건 내가 까다로운 사람이기도 하고 이 도시 어디든지 SNS가 따라붙기 때문에 숨겨진 장소 같은 곳은 아무 데도 없을 테니까. 다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지방에서든 외국에서든 서울에 돌아왔을 때의 그 감각. 고향에 돌아왔다는 그 감격은 내가 이 도시를 사랑하던 미워하던 항상 함께할 것이다. 고향이니까.



이 도시에 산다는 것의 의미를 언제쯤 다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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