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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한 Nov 06. 2023

자살시도 그 후

자살시도 하신 후, 안녕하신가요?

자살시도 이후에도 삶은 이어진다. 그러니까 글을 쓰고 있겠지만... 그 뒤의 일에 대해서 보고하려고 글을 쓴다.


일단. 삶은 나아진 게 하나도 없다. 자살시도가 10월 초에 이루어졌으나 10월은 신이 이렇게 나를 안 도울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재앙 그 자체였다. 10월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천지신명에게 빌고 우는 것뿐이었다. 그 와중에 인간관계가 박살 나고 가족과 절연하는 경험도 했다. 정말 재앙의 10월이었다.


사람이 적당한 불행을 겪으면 엉엉 울면서 울부짖을 수라도 있지만 그냥 완전히 불행에 찌들면 울부짖을 기운조차 없다. 지금의 내가 딱 그렇다. 처음에는 울부짖었다. 울부짖어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고- 나를 돕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때 사람들이 나에게 말하더라. 내가 세상에 대해서 기대가 너무 많다고. 내가 사람에 대해서 기대가 너무 많다고. 나의 불행은 너무나 정당하며 보통 사람들은 다 이 정도의 불행을 겪는다고.


아. 그렇구나. 내가 세상에 대한 기대가 참 컸구나~ 이 모든 게 나의 잘못이구나.

세상에 대해서 최선을 다한~ 사람에 대해서 최선을 다한 내가 잘못이구나~.

뭐가 되었던 좋은 시절에 기왕네에서 같이 노래 부르던 사람들이 나라가 망했다고 강남에서 나를 모른척하다니.

그래. 내가 인간에 대해서 큰 기대를 가졌구나. 좋은 시절에도, 슬픈 시절에도 같이 하는 게 인간으로서의 의리라고 생각했다만,


그렇다면 나는 나만의 세상에서 나와 살겠다.라고 마음먹었다.

부모도 형제도 친우도 누구도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는 나라는 소우주 - 디오라마를 최대한 잘 꾸며나가겠다고. 이 디오라마에 뭐가 들어갈지 나에게 뭐가 필요할지 잘 모르겠지만 어차피 수많은 인간들과의 만남에서 이미 남은 것이라고는 폐허뿐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지 않았는가? 그러면 더 이상 인간들과의 만남을 두 번 반복할 필요가 무엇이 있는가? 유일하게 내가 만나보지 않은 사람은 이제 나밖에 없다. 나는 나만의 정원에 들어가 이 우주에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실 정확하게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겠고, 너무 오랜 시간 나와 대화를 안 했기에 나랑 말하는 방법도 잘 모르겠다. 가끔 바깥세계의 사람들의 세파에 흔들리는 날들도 계속되고 있다. 남의 욕망이 나의 욕망일 때도 많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고 싶어도 현실을 살아야 하니까 쉽지 않을 때도 있다. 현실의 퀘스트들이 나에게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일 역시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냥 지금 퀘스트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 왜냐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지금에 최선을 다하는 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하려는 것은 어둠 속에서 손으로 더듬어서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가장 쉬운 것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마인드맵을 그리듯이 내 세계를 카테고리화시키고 세계를 가지 치듯이 뻗어나가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외부의 공격 - 예기치 못한 불행은 어떻게 대처하느냐......

사실 이것에 대한 정답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일단은 최대한 맞서지 않고 피하려고 한다. 지금 나의 마음의 에너지가 맞서 싸울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가 아니니까.

다만 최대한 몸을 움직이려고 하고 체중을 조절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일단 술을 줄였다. 완전히 끊는 것은 불가능하고 최대한 엄청나게 많이 줄였다. 그리고 외부의 쓸모없는 자극을 최대한 줄이는 쪽으로 하고 있다. 사람도 최소한으로 만나고 바깥 생활 역시 필요하지 않으면 최대한 줄이고 있다. 독서와 음악을 듣고 차를 마시며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들여다보는 일을 집중적으로 하려고 한다. 많은 시간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마음을 써왔던 만큼 이제 나를 신경 쓰고 싶기 때문이다.


여전히 불안장애는 나를 괴롭히고 있다. 고통스럽다. 저녁이 되면 다음날이 오는 것이 두렵고 미래가 하나도 기대되지 않는다. 제일 고통스러운 것은 내일도 행복한 일 따위는 없을 거라는 기대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작은 데서 행복을 느끼라고 강요하지 내가 원하는 행복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그렇기에 나는 나를 준비했다. 나의 행복에 대해서 깊게 관심 있는 것은 나뿐이더라. 새 가방을 사는 날까지. 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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