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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한 Nov 06. 2023

강북 쥐 아인씨의 일일

일요일 12시에 일어난 아인씨는 창문 밖에서 비가 내리는 것을 본다. 마당의 고양이들이 안녕할 것인가. 이 비가 지나간 다음에 본격적으로 고양이들을 위한 핫팩을 흔들어야 하나 잠깐 고민을 한다.


아인씨는 뒤척뒤척 일어나 냉장고로 향한다. 지금 끼니 때를 놓치면 또 이상한때 밥을 먹어 살이 찔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냉장고를 열어본다. 아무것도 없다. 하다못해 김치도 없다. 오렌지주스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스통만이 아인씨를 반긴다. 아인씨는 빠르게 포기하고 라면을 먹기로 한다.


'그래도 한국인은 김치는 먹어야지'


아인씨는 남편 곰씨와 라면을 먹으면서 마트에 가자고 종용한다. 남편 곰씨 역시 마트에서 주방세제를 사야 한다고 말한다. 아인씨의 남편 곰씨는 30분 거리의 대형마트에 갈 것을 제안한다. 아인씨는 비도 오고 귀찮다. 그냥 11시 전에 주문하면 다음날 배달해 주는 배달 어플을 쓰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본다. 남편 곰씨는 집에서 꼼짝도 안 하는 아내를 가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중재안으로 압구정에 있는 백화점으로 장을 보러 가자고 권유한다.

압구정은 안 간 지가 한참 되었기에 아인씨는 곰씨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따라나선다.



압구정은 차도 많고 사람도 많은 것이 아인씨가 사는 동네와는 전혀 다른 별천지의 동네이다. 벌써 크리스마스트리가 장식되어 있다. 비가 와도 아랑곳 않고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역시 압구정' 아인씨는 속으로 생각한다.


주말인데도 차를 대려면 지하로 한참 내려가야 한다. 그만큼 이 백화점에 온 사람이 많다는 것이겠지. 지하 4층 경차 주차구역에 주차하라는 주차 요원의 말에 따라 중형차를 구겨 넣듯이 경차 구역에 주차하고 지하 1층 식품관으로 올라간다. 백화점에는 그 특유의 분냄새와 정신없는 인파, 그리고 가게들이 이리저리 엉켜있다.


카트를 챙겨 과일을 사려고 보니 사과가 4개에 3만 원이다. 사과값이 금값이라는 기사를 얼핏 본듯하다. 추석이 아직 안 끝났나.. 올해는 태풍 때문에 사과가 빨리 떨어졌다는데 그 덕에 1년 내내 사과값이 비쌌던 것 같다. 그 옆 샤인머스캣은 한 송이에 17000원이다. 아인씨는 그나마 저렴해 보이는 귤 2KG와 홍시 5개를 카트에 넣는다. 


아인씨를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청양고추값이다. 청양고추가 6000원이다. 애호박이 1600원인걸 보니 유난히 이 매장이 비싼 것은 아닌 것 같다. 그 옆에 시금치는 4500원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고추의 작황이 좋지 않아 물가가 이렇게 많이 올랐나? 비싸다고 생각하지만 선택권이 없는 아인씨는 장바구니에 청양고추를 밀어 넣는다.


압구정이라 그런지 장 보러 온 사람들의 모습이 장 보러 온 것 같지 않다. 식품관임에도 불구하고 어르신이 아닌 한 한 손에 다들 유명한 브랜드의 가방을 한 손에 끼고 잘 차려입고 나와있다. 아인씨는 슬리퍼에 운동복 차림인 자기 자신의 옷차림을 들여다본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안다. 하지만 지난 몇 개월간 아인씨는 많은 불행을 겪어 패배감에 젖어 있는 상태이다. 스스로를 꾸밀 여유도 능력 역시 상실한 상태이다. 시상식에 온 듯한 사람들 사이에서 초라한 스스로가 이방인같이 느껴진다. 나 역시 시간과 돈이 여유로웠을 때는 그들과 비슷했는데. 아인씨는 속으로 생각한다.


대충 카트에 이것저것 구겨 넣고 계산을 마치고 커피를 마시러 푸드코트로 간다. 푸드코드는 더 화려하다. 푸드코트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차려입은 옷에 비싼 가방과 빛나는 구두 화려한 화장이 사로잡는다. 2만 원짜리 밥 - 6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렇다니. 확실히 압구정은 다르다. 별천지에 있는 것 같다.


그 사람들을 가만히 관찰하며 아인씨는 스스로의 운동복과 슬리퍼를 다시 한번 바라본다. 아인씨 역시 몇 년 전에는 그 사람들 사이에 섞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이 그립냐고 물어보면 그립지는 않다. 하지만 이 알 수 없는 소외감은 뭘까? 그들과 나는 이제 다른 세계의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주말에 꾸미고 나올 수 있는 그들의 여유가 부럽기도 하면서 그때의 본인이 지금의 본인보다 나은 구석이 있냐고 물어보면 딱히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이 된다. 하지만 딱히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지막 남은 알량한 자존심일까 아니면 정말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아인씨는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스스로에 대한 알 수 없는 의문과 묘한 소외감과 함께 아인씨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백화점 문을 나선다. 이미 밖은 어두컴컴하다.

알 수 없는 감정의 답을 찾으려고 아인씨는 계속 - 이 별천지의 소외감을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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