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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한 Nov 06. 2023

강북 쥐 아인씨의 일일 2

강북으로 가는 한강 다리 위 강북 쥐 아인씨는 압구정에서 느꼈던 위화감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그 위화감은 무엇이었을까? 더 이상 강남의 화려한 사람에 속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것일까? 아니다. 이미 강북에서도 충분히 화려한 시골쥐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아니면 불행에 잔뜩 찌든 본인의 삶에 대한 한탄 때문이었을까? 그래. 이건 그럴 수 있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이 모든 것이 낯설고 삐딱하게 받아들여지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강북 쥐 아인씨의 눈에는 압구정에서 느껴지는 숫자의 개념이 있다. 압구정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숫자를 통해서 서로 비교한다. 저 사람이 든 가방보다 내 가방이 더 비싼 가방. 저 사람이 입은 옷보다 더 비싼 브랜드. 

샤넬보다 에르메스에 1점. 루이비통보다 샤넬에 1점. 롤렉스보다 파텍 필립에 1점. 끊임없이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과 의미 없는 점수의 피 튀기는 전쟁을 벌이는 강남의 그 소리 없는 전쟁이 피곤하다.


물론 그들에게 삼선 슬리퍼에 구질구질한 운동복 차림의 아인씨는 전쟁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소리 없는 전쟁터에 참전할 능력이 없어 참전할 수 없는지 참전하기 싫어서 참전하지 않았는지는 깊은 이해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아인씨 역시 갓 30살이 막 넘은 젊은 여자일 뿐이다. 타자의 욕망이 매우 신경 쓰이고 그 전쟁터에 참전하지 않은 것이 못내 자존심이 상한다.


남편 곰씨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교보문고로 가는 중이다. '곰씨는 편해서 좋겠다' 아인씨는 생각한다. 겹쳐진 불행으로 상처받은 마음 위로 자존감이 내핵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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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안.

습관처럼 가는 교보문고라 뭐 새로운 게 있겠냐 싶었지만 새로운 것이 있었다. '러시아인 인간' 아인씨가 좋아하는 출판사에서 내놓은 신간이다. 출판사에서 별다른 프로모션이 없었던 것을 보니 출판사에서도 크게 기대하는 신작은 아니었나 보다. 하지만 러시아 음악 처돌이인 아인씨는 책을 보자마자 대작의 냄새를 맡는다.


아니나 다를까 책은 정확하게 아인씨의 취향을 저격하다 못해 19세기 러시아 작가들에 대한 아인씨의 빈약한 지식을 꽉꽉 채워주기까지 했다. 강남에서 좋아하는 숫자로 치면 2만 원 남짓으로 얻을 수 있는 새로움이다. 

하지만 압구정의 그들이 좋아하는 숫자들에 비해서는 어디서 자랑할 수도 없고 눈에 띄지도 않는 무형의 무엇이다. 심지어 모두가 인정할지 아닐지 알 수도 없는 - 마이너 한 취향의 무엇 - 그것에 비하면 돈은 몇백 배나 들지만 천만 원이 훨씬 넘는 가방이 나을 수도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2만 원짜리 러시아 19세기 작가에 대한 지식보다는 누군가는 확실하게 인정할 확률이 높으니까. 


그렇게 치면 지식을 가졌다고 자부심을 느끼는 것조차 지적인 자위이자 허영일 수 있다. 아인씨는 생각했다. 어느 것이 더 우월한지 어떻게 아는가? 아인씨는 순간 망설여졌다. 2만 원짜리 지식이 정말로 천만 원짜리 가방이 주는 행복보다 양질의 행복인 것일까? 천만 원짜리 가방이 주는 행복을 선택한다면 나는 속물적인 인간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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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남편 곰씨는 아인씨가 이해되지 않는다. 강북 쥐라고 스스로를 비웃긴 하지만 아인씨는 강북에서도 부촌에 살고 웬만큼 하고 싶은 일들을 다 하고 사는 - 재력도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울증과 불운으로 인하여 일이 심하게 안 풀리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지 못했을 뿐. 아인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이 불행하지 않은데 아인씨는 세상을 계속 한도 끝도 없이 불행하게만 보는 것 같다.

곰씨는 세상을 둥글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쉽게 물 흐르듯이 흘러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예민하고 부서질 것 같은 감성을 가진 사람은 더욱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곰씨는 강북 쥐인 마누라가 우울해하는 이유와 반짝이는 압구정 사람들의 차이와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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