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병장병장 Jul 28. 2019

모래성과 벽돌집 그리고 설계도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해변에서 모래성을 쌓아본 사람은 안다. 아무런 장비 없이 맨 손으로 쌓아낸 모래성은 오래지 않아 완성된다. 하지만 밀려오는 파도에, 몰아치는 빗방울에 모래성은 성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처참히 부서져 내린다. 모래성과 달리 사람이 사는 집을 지을 때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수많은 인력과 특수한 장비도 필요하다. 주어진 공간에서 폭풍우가 몰아쳐도 거센 바람이 불어도 꿋꿋이 지켜낼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설계와 공이 들어간 집은 속도전에선 밀리지 모르지만 그 견고함과 안정감은 모래성을 압도한다.



모래성과 집의 차이는 설계에 있다.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청사진을 그리지 않은 채 쌓아 올렸던 모래성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뿌리를 두고 곧게 뻗은 나무처럼 기초를 다진 채 쌓아 올린 집은 다르다. 집은 비바람이 몰아친들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들 인생도 매한가지다. 우리는 ‘성공’에 급급해 많은 것들을 놓치곤 한다. 정작 중요한 기초적인 방향성이나 버텨낼 수 있는 인내심은 외면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성공궤도에 오르기 위해 속도만을 중요시한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성공’이 조금이라도 늦춰지게 되면 열등감과 조급함으로 점철되면서 스스로를 루저로 낙인찍는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다. 인생의 비바람에도 이겨내는 힘과 그것을 뚫고 나가 내가 정한 길로 나아가는 방향성이다. 성공에 눈이 멀어 이리저리 떠도는 것은 무모할 뿐이다. 목적지와 가야 할 방법과 방향이 정해진 후에 속도를 내도 늦지 않다. 계획이 없는 달리는 대로 내달리는 여행은 재밌을지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핑크빛 미래가 점쳐지는 여행과는 거리가 멀다. 앞으로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중요한 건 우리의 인생에는 언제 비가 내릴지, 화창할지 알려주는 일기예보처럼 삶의 고비를 알려줄 알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예보가 없어, 한 번의 폭풍우에 휘둘려 경로를 이탈할 것이 걱정돼 가고자 하는 방향을 망설여서는 안 된다. 꾸물거리며 우두커니 서있는 것은 튼실한 집은 고사하고 한 줌의 모래성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텅 빈 설계도를 펼쳐야 하는 이유다.



나아가 방향성에는 결이 있어야 한다. 이겨내고 버텨내기 위해, 옳은 일을 해내기 위해서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매진한다면 제 풀에 지치고 만다. 나무는 주변 환경과 상황에 따라 살갗의 상태가 달라진다. 돌멩이 또한 파도와 바람 그리고 시간에 깎여 표면이 변한다. 따라서 나무와 돌의 표면은 삶의 무늬이며 결이 된다. 이처럼 우리의 방향성도 시간과 삶과 주변 환경에 닳고 밀리면서 결이 생기기 마련이다. 중요한 점은 어떤 결이 입혀지는 지다. 만약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방향성의 결이 너무 거칠 다면 아늑한 집이 있다 한들 주위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으려 할 수 있다. 반면에 방향성의 결이 너무 닳고 닳아졌다면 어떤 성공에도 무감각해져 버려 기쁨을 온전히 느낄 수 없게 된다. 거센 비바람이 불 때, 잠시 비를 피하는 것처럼, 인생의 고난이 찾아왔을 때 방향성의 결을 위해, 더 나아가 나 자신을 잠시 주저앉을 용기는 어리석은 행동이 아니다.



근사한 해변에 반나절 만에 완성한 아름다운 모래성을 보면 저절로 눈길이 간다. 웅장함과 화려함을 앞세운 모래성을 외면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머물 안식처는 튼튼한 벽돌로 이루어진 집이다. 몰아치는 비바람에 매번 다시 모래성을 쌓을 수는 없다. 비록 그 형태가 단순하고 짓는 과정이 지루하지만 결국 우리의 몸이 누울 곳은 모래성이 아닌 집뿐이다. 성공이 급해서, 화려한 외관이 부러워서 한 줌의 모래를 집기보다는 복잡하고 어려운 설계도를 펴야 한다. 집을 짓는 과정이 고되고 괴로울지라도 설계도를 펴야만 한다.





작가의 이전글 전쟁과 평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