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지 않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방향을 찾아가는 중
나는 중요한 결정을 빠르게 내리는 편은 아니다.
전공을 고를 때도,
커리어의 방향을 정할 때도
늘 남들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전공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굳이 한 학기를 더 고민했다.
다른 전공 수업도 들어보고
스스로 계속 질문했다.
나는 뭘 좋아하지? 뭘 잘할 수 있을까?
조금 돌아갔지만,
결과적으로는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경영학을 선택했지만
그 전에 철학, 문학, 심리학 수업을 들었고
경영을 하는 사람과 관계에 대해
항상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전략 컨설팅 회사에 들어가서는
여러 산업과 다양한 문제들을 접할 수 있었다.
단기간에 압축적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계속 나를 탐색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성장 = 탐색의 과정인 것 같다.)
지금은 커리어를 시작한 지 15년 가까이 됐다.
여전히 특정 산업에 올인한 사람은 아니지만,
어떤 특성을 가진 시장에 끌리는지는
제법 분명해졌다.
에너지, 금융, 의료 같은 분야.
사람들의 삶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주고,
규제가 있지만 그 안에 기회가 있는 시장.
처음 들어가는 건 어렵지만,
들어가면 오래 버틸 수 있는 시장들.
나는 그런 산업을 좋아한다.
이제는
인공지능과 게임, 콘텐츠 산업도
이런 시장이 되어 버렸다.
흥미로운 변화이다.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관 업무나 정책 이슈를
다루는 역할도 많아졌고,
그 과정에서 오랫동안 특정 산업에 몸담은
전문가들을 만날 기회도 많았다.
그들 대부분은
그 산업에 커리어를 걸고 살아온 분들이다.
가업을 잇거나, 공공기관 출신이거나,
필요한 자격과 네트워크를 갖춰 온 사람들.
이들은
다른 산업에 관심을 가질 여유는 없지만,
그 산업 하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깊다.
나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많이 배웠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방식이지만,
그 방식의 진지함과 전문성을 인정하게 됐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는 깊이보다는 구조화에 가깝고,
속도보다는 방향 감각에 가깝다.
그래서 요즘은
“무엇을 할까”보다
“어떻게 일하고 싶은가“를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커리어 14년 차에 자기 객관화를 해 본다.
나는 빠르게 움직이는 편은 아니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구조를 고민하고 방향을 조금씩 만들어 가는,
그게 나다운 역할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