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태어난 사람과 함께 여름을 걸었다. 꿈에서 숲을 보았다고 했다. 매미 소리와 풀냄새로 덮인 수풀을 헤치고 나왔다. 울창한 나무 그늘에서 잎사귀를 쓰다듬었다. 꿈을 만질 수 있냐고 물었고 무채색의 숲은 계절을 가늠할 수 있을지 되물었다. 꿈의 색에 관해서 얘기하며 신경을 필름으로 환산해보았다, 곁에서는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색이 있든 없든, 우리의 여름밤 꿈은 초록으로 기억될 거야-
여름에는 무성해지기 위해 쏟아지는 생채기를 참고 견뎌야 했다, 짙어진 색은 그만큼의 결실이었다. 이면 없이 그대로 끌어안는 모습에 어렴풋이 네가 여름과 닮았다고 이해했다. 퍼붓는 소낙비도 삼키고 소화할 것 같았다. 걸음을 늦추고 바라본 네 뒷모습이 문득 풍경에 섞일 것만 같았다. 녹음 사이에 서 있는 그 자체로 여름이 되었다. 네가 퍽 여름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여름이 너와 잘 어울리는 것일지도. 지나온 자리에는 함께 한 날들이 짙게 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