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요약 키워드 세 가지
오늘 하루를 요약하면 세 가지 키워드로 말할 수 있다.
엑셀, 식단관리, 민원신고
내 브런치를 자주 읽는 사람, 특히 이 매거진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알겠지만 난 크리스마스 연휴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채 회사에서 진행하는 이벤트의 대규모 신청을 받았다. (어떤 신청인지 구체적으로 말하는 건 좀 꺼려진다) 아무튼, 중간에 신청 폼을 잘못 만들어서 또다시 받느라 연휴를 거의 다 날렸다. 마음이 불편한 채로 월요일을 맞아 출근하자, 못 보던 얼굴들이 출근하기 시작했다. 오늘부터 새로 출근하게 되신 인턴분들이었다. 모처럼 북적북적한 사무실이었지만 내 정신은 오직 하나, 바로 신청자 명단을 정리할 엑셀 하나뿐이었다.
사실 지금도 100% 완벽하게 명단을 정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알고 있는 정보를 총동원해 신청자들이 한 명이라도 낙오되지 않게 이곳저곳에서 찾아 명단에 기입했지만, 내일부터 신청 명단에 따라 배송을 보내봐야 안다. 배송이 끝나면 나는 어제와 똑같이 또 빌어야 한다. 제발 컴플레인 전화 오지 않게 해 주세요. 제발요. 지금은 내가 송장 신청을 제대로 했는지도 확신이 안 선다. 뭔가 한 줄씩 밀려서 명단 맨 끝이 안 맞아 있는데 내가 미처 확인 못했을 것만 같고 또 불안하다. 왜 이렇게 돌아서면 기억이 안 나고 까먹는지... 그래서 오늘은 퇴근길에 디데이 어플을 켜서 메뉴바에 내일 할 일을 하나하나 입력하고 고정시켜놨다. 업무용 수첩에는 적어놔도, 내가 다음날 이걸 적었는지 기억을 못 한다. 진짜 내 기억력 왜 이럴까.
우여곡절 끝에 오늘도 (나름) 무사히 퇴근하고 동기와 샐러드 가게에 갔다. 처음으로 볼에 담긴 샐러드를 먹어봤는데, 양이 정말 많고 배부르고 건강한 맛이었다. 자극이 없는 맛이라 점심때까지 육개장 라면을 먹은 나로서는 간이 심심하기도 했지만, 2~3시간 뒤에 누워있을 계획이라면 저녁을 이렇게 건강하게 챙겨 먹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요새 퇴근이 늦어지다 보니 자꾸 밤에 야식을 시켜먹게 되는데, 저녁에 샐러드나 야채, 과일 위주로 포만감 있게 챙겨 먹으면 밤에 먹을 것의 유혹을 뿌리치고 쉽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비엔나소시지는 동기 말로는 물에 삶아서 염분을 빼고 나온 것 같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짜지 않고 담백했다. 사실 난 밥 따로 국 따로 먹는 편이라 밥과 샐러드를 한 볼에 넣어주는 것이 낯설긴 했지만, 나름 적응할 만했다. 이 정도면 집에서 따로 만들어 먹어도 좋은 식단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귀찮아서 절대 해 먹진 않는다. 맨날 말만.)
든든하게 샐러드도 챙겨 먹었겠다 동기와 인사하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러 갔다. 환승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타는 순간 술냄새를 맡았다. 뭐지 싶어서 냄새의 출처를 보니 어떤 술 드신 중년 남성이 앉아있었다. 그것도 마스크를 턱까지 내리고 말이다! 심지어 중간중간 전화를 하는 건지 혼잣말을 하는 건지 자꾸 입을 벙긋벙긋하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나는 취객의 존재가 이렇게나 위협으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마스크 하나 때문에 말이다...! 나는 30분 가까이 지하철을 타고 가야 했고 그 남자도 조만간 내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급한 데로 폰으로 '지하철 마스크 미착용 신고'를 검색해 신고하는 방법을 찾았다. 웬만하면 그냥 가겠는데 이 시국에 노 마스트가 웬 말인가. 검색 내용에는 '또타지하철'이라는 어플을 깔고 '민원신고-질서 저해'를 누르면 열차 내 내 위치를 조회하고 보안관이 출동한다고 나왔다. 그래서 그대로 했다. 그런데 난 분명 지하철 뒷칸에 타 있는데 자꾸 내 위치가 앞칸이라고 떠서 이러다 출동 안 하면 어떡하지란 생각만 여러 번 했다. 다행히 곧 보안관분들이 두 세명 등장하셔서 그 남자에게 주의를 주고 마스크 착용까지 확인하신 후 가셨다. 어플로 신고를 하니 접수 후 보안관이 출동했는지, 신고를 처리 완료했는지 푸시 알림으로 다 알려줘 좋았다. 그렇지만 이 어플을 쓰는 날이 그리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 마스크 미착용 승객을 신고하시려면 '또타지하철'어플을 사용하세요...! 혹시 아직 모르는 분도 계실까봐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