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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믐 Dec 29. 2020

입사 36일 차, 퇴사를 결심했다.

입사 37일 차에 말할 작정이다.

생각보다 퇴사를 결정하는 일은 쉬웠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나 단기로 봤을 때나 이 회사에 오래 몸 담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 회사의 비전과 내 비전을 생각했을 때 둘은 빨리 헤어지는 게 더 낫겠다는 판단. 내부적인 상황을 말할 순 없지만, 더는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제의 글만 해도 날 위한 선물을 주고, 열심히 엑셀 파일을 정리하면서 살았지만, 오늘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퇴사해야겠다. 이 생각만 마음에 품게 되었다.



복에 겨운 결정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지원서를 넣고 서류심사를 거쳐 2차 면접심사 및 최종 합격을 하게 된 케이스가 아니었다. 구직사이트에 올려놓은 이력서를 열람하고 지금 회사가 먼저 연락을 해 온 케이스였다. 그래서 나는 운이 아주 좋게도, 이 청년 취업난에 비교적 편하게 첫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인들은 나를 부러워했고, 축하해줬다. 그러나 지인들이 내세울 수 있는 범위는 딱 거기까지이다. 입사 이후의 삶은 온전히 내 것이고, 내 삶이니 혼자서 고민할 수 있었고, 이후 퇴사라는 결정을 내렸다. 적어도 상사가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아닌 다른 직장동료에게 하지 않았다면 이 선택은 바뀔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어쨌거나 지금의 나는 누군가의 눈에 '복에 겨워 제 발로 복을 걷어차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그 사람까지 설득할 자신은 없다. 나는 내일 나 자신과 회사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현실적인 고민은 발목을 잡지 않았다.


나도 현실적인 고민이 내 발목을 잡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딱히 그런 건 없었다. 가족 구성원이 취업에 성공했고, 당장 내 생계에 무리가 갈 만큼 무슨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야근이 없어도 저녁이 없고, 야근을 하면 밤마저 없는 생활을 하다가는 나를 잃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심장이 하루 종일 커피를 마신 것처럼 두근거려 한동안 커피를 끊었다. 그런데도 두근거림은 멈추지 않았고, 오늘은 퇴근 직후 귀에서 삐- 소리가 났다. 나는 깨달았다. 여기서 더 시간을 지체하면 예전처럼 한없이 우울한 상태에 놓인 대학생 때의 나로 돌아가버릴 것을. 나에게 현실적인 고민이라면 '금전'보다 '마음건강'이 우선이다. 지금 내 마음은 노란불에서 빨간불로 움직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다 먹지도 못할 라면을 두 개나 끓였다.


그렇게 행동하면서도 참 전형적이라고 느꼈다. 스트레스는 너무 받고, 풀 데는 없고, 그래서 먹을 걸로 모조리 풀어버리겠다 해서 라면을 두 개나 끓였는데(원래 한 개 먹으면 딱 배부른 정도의 위장이다) 반 개 정도 먹자 바로 배가 부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다 먹지도 못할 라면을 두 개나 끓인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래서 꾸역꾸역 다 먹었다. 막판엔 위가 아팠다. 밤 9시 넘어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어 눈물도 흘렸다. 한심, 답답, 서러움, 스트레스, 업무 걱정이 한꺼번에 마음에 들이닥치자 마음속은 금세 만원이 됐다. 그래서 하나하나 내보내기로 했다. 그 첫 번째 방법이 바로 '퇴사'이다.



일단 내일 퇴사를 말할 것이다.


퇴사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말하는 퇴사가 회사 입장에서 당연히 못마땅할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고용자의 입장일 뿐이다. 그래서 일단 내일 퇴사를 말할 것이다. 내게 더 나은 내일을 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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