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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믐 Dec 27. 2020

나를 위한 선물을 줬다.

내일도 나는 견뎌야 하니까

어제, 그리고 오늘은 회사와 관련된 연락을 1도 받지 않았다. 


엊그제 반나절 가까이 수습했던 업무에 또 한 번 문제가 있었다면 상사나 다른 사람이 연락을 하거나, 수정된 업무의 반응이 잘못되거나 했겠지만 아직은 그런 일이 없는 것 같다. 어쨌거나 다행이다. 그러나 내일의 나는 제대로 일을 돌려놓기 이전에 엉망진창이었던 시간들을 하나하나 동료들과 정리해야 한다. 벌써부터 까마득하다. 내일은 아마 월요일부터 야근을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내일 고정 업무 중 한 가지를 오늘 밤에 미리 하나 해놓았다. 내일 가서 업로드만 하면 되게 말이다. 사실 이렇게 준비하면서 속으로 계속 나쁜 생각을 한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 없겠지?


"네가 애초에 잘못하지 않았으면 다 잘 됐을 일이야."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못했어?"

라는 말을 듣지 않는 게 내일 내 목표인데, 잘 되려나 모르겠다. 아직 상사분들의 마음을 읽는 단계의 노련한 직장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저 말을 내 귀에 들어버릴까 봐 무섭다. 회사에서 울고 싶지는 않은데, 종이를 툭 던지며 화내던 상사분의 얼굴을 보고서도 잘 참았었는데, 이번에는 모르겠다. 


힘들어하는 내 글에 한 작가님이 댓글을 달아주셨다. 업무 뒷수습을 했던 25일 날에도 울지 않았던 내가 그분의 댓글을 읽고 울어버렸다. 


빠르게 멋진 사람이 되고 있네요.


댓글의 내용 중 '빠르게 멋진 사람이 되고 있다'라는 부분을 읽자마자 그냥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아, 그래도 날 알아주는 사람이 있구나. 내 노력을 노력이라고 봐주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서 반갑고 서러웠다. 오늘도 난 회사 연락을 받지는 않았지만, 이젠 스스로를 못 믿는 마음이 커서 수시로 업무용 메신저와 메일을 들락날락거렸다. 불안했다. 휴대폰에 상사의 이름이 뜰까봐, 그리고 내가 또 무슨 잘못을 했을까 봐. 좀 더 나를 생각해도 된다는 마음과 불안한 사회초년생의 마음이 충돌하는 게 오늘 하루였다.



그래서 나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


내일도 나는 살아야 하니까, 회사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그래서 다음 월급을 받고 그 월급을 떳떳하게 쓸 만한 노하우 있는 직장인이 되어야 하니까. 그래서 오늘까지의 나는 불안하고 초조하고 우울할지라도 내일은 그런 티를 최대한 내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날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 내가 조금이라고 기분 좋아지라고.


아이섀도우와 브러쉬와 파운웨어쿠션. 다 처음 써보는 제품들이다.


어제는 미용실에 가고 입사동기를 만나면서 기분을 최대한 풀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8시간의 숙면이라는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오늘 온전히 혼자 시간을 보내게 되자, 다시 불안감이 날 엄습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바빠졌다.'라는 볼멘소리를 할 것만 같아 걱정이 심해졌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머릿속을 아예 스톱시키고 싶었다. 그 순간은 날 위한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던 화장품을 단숨에 질렀다. 꽤나 충동구매였지만 내일부터 새 화장품으로 기분전환을 시작하려고 한다.


원래 나는 계획형이라서 지출이 좀 많다 싶으면 화장품과 같은 부가적인 구입 비용을 줄이는 편이다. 그러나 오늘은 내가 기분이 좋아질 만한 품목이기 때문에 화장품을 구매했다. 당일 배송이 가능해 실물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뭐, 새 제품을 확인하고 나서 기분이 막 급격하게 좋아진 것은 아니다. 그건 그거대로 이상한 일일 테니. 그냥 나를 좀 더 아껴주고 싶었다. 댓글을 남겨주신 작가님의 말씀처럼, 입사동기의 조언처럼,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대하고 싶었다. 


여전히 기분이 예전 이 시간처럼 평온하지는 않다. 25일, 26일, 27일 3일 동안 커피를 먹지 않아도 가슴이 뛰는 게 느껴질 정도로 두근거리고, 온갖 상념에 사로잡혀 있다. 스스로 이런 말 쓰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난 예민한 편이기 때문에 이번 일련의 사건들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정말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믿는다. 왜 그렇게 예민한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일을 못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은 어쨌거나 날 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고 생각할 거다. 지금도 주문을 외운다. 난 할 수 있는 만큼 했으니까.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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