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회사 업무를 처리하다가 실수를 했다. 그 실수는 보완을 목적으로 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어마 무시하게 커졌고, 커진 실수는 100여 명의 사람들에게(혹은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쳤다. (솔직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크리스마스 휴일을 반납하고 집에서 7~8시간 정도 그 뒷수습에 나섰다. '정말 이젠 최종이야!' 하는 안내 메일을 보내고 나자 12월 25일은 고작 4시간 정도 남아있었다. 사실 아직 끝난 건 아니다. 월요일에 엄청난 양의 명단 정리와, 개인 연락처로 연락을 돌렸음에도 아직 답신이 오지 않은 분들께 전화 연락을 돌려야 한다. 컴플레인 전화가 오지 않기를 지금도 빌고 있다. 나비효과의 예시를 이렇게 몸소 만들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정말로.
그리고 오늘 너무 힘들어서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미용실에 갔다. 혼자 집에 있으면 우울하고 힘들어서 울어버릴 것만 같아 전날 뒷수습을 끝내고 연락이 닿은 직장동료를 우리 동네로 불렀다. 동료는(a.k.a 동기 언니) 흔쾌히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 내게 와주었다. 그래서 내가 10cm 넘게 자르고 매직하고 레이어드 펌한 머리를 제일 처음 보았다. (심지어 가족보다 더 빨리) 동기 언니와 함께 점심도 먹고 커피를 사들고 내 집으로 초대했다. 머리가 끝난 점심시간대부터 밤까지 우리의 얘기는 끝날 줄 몰랐다. 놀랍게도 우리는 아직 만난 지 한 달 된 사이였다. 역시 나랑 잘 맞는 사람은 따로 있고, 안 맞는 사람은 계속 안 맞는 것 같다.
동기 언니와 얘기하다 보니 아무래도 회사를 소재로 한 이야기가 불쑥불쑥 나왔다. 동기 언니를 만난 직후까지, 아니 점심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답답하고 힘들었다. 오롯이 혼자 책임지고 뒤처리를 한다는 게 이렇게까지 힘든 일인 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겪으니 더 괴로웠다. 그래서 동기를 붙들고 내 이야기를 계속했던 것 같다. 나 좀 봐달라고, 나 좀 이해해달라고. 동기도 월요일 나 때문에 같이 고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동기는 너무나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고, 또 자신의 이야기도 해주었다.
이야기는 밤까지 이어졌다. 동기는 내게 조언을 해주었다.
내가 조금 더 나를 생각해도 괜찮다고.
사실 난 여러 일에 감정 소모를 잘하는 편이다. 그냥 친구를 사귈 때도 그렇고, 대외활동을 할 때도 그랬고, 연애를 할 때면 아예 미쳐버렸다. 그래서 공허했고, 상처를 많이 받았고, 또 그만큼 상처를 많이 줬다. '감정'과 '소모'라는 글자가 함께 있으면 그때의 감정은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도 이 습관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해 마음에 응어리를 하나씩 만들고 있었다. (그것도 입사 한지 아직 한 달밖에 안됐는데 말이다) 그러다 엊그제 업무 실수를 하고, 그 실수의 파급력을 경험하면서 나는 나조차 믿지 못하기 시작했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으로 폭발한 것이다. 그래도 대학 다닐 때까지는 일 잘한다고, 워커홀릭이라고 알려진 사람이었는데, 어쩌다가 하는 일마다 실수하는 보릿자루 같은 존재가 되었는지 화가 났다. 진짜 월요일 퇴사를 말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고된 상황에서, 동기의 말 한마디는 우울에 잠식된 나를 숨 쉴 수 있게 뭍으로 꺼내 주었다.
앞서 말했듯 난 사건이 터졌을 때 탓할 사람을 찾고, 원망하고, 어떻게든 책임자를 만들려는 태도보다, 빨리 이 일을 해결하려는 태도가 더 생산적이라는 사실을 안다. 이제야 알게 됐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신입사원', '사회초년생', '부하직원' 등등의 틀에 갇혀 아무 말을 하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늘 고단했다.
이제 나는 조금 더 나를 생각할 것이다. 물론 일의 뒷수습은 최선을 다해할 것이고, 그 최선보다 더 높은 기준치를 바란다면 죄송하지만 난 충족시킬 수 없다. 충족시킬 자신이 없는 게 아니라 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도 나는 미용실에서 업무 문자와 메일을 보냈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메일을 확인하고 명단을 정리했다. 나로서는 최선이고, 진심인 행동이었다. 그런데도 문제가 또 생긴다면, 사과는 하되 내 자존감까지 내려놓지는 않을 것이다.
더는 회사에 감정 소모를 하고 싶지 않다.
부디 사람들이 지금의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욕심일 수 있지만, 나는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