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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믐 Jan 11. 2021

백수의 작품 다시 보기① <셜록>

셜록의 사회생활

<셜록 4> 정주행


오늘은 넷플릭스에서 영국 드라마 <셜록 4>를 봤다.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작년 11월 무렵부터 정주행을 시작했는데, 퇴사하고 나서야 마지막화까지 다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즌은 시즌4다. (삼 남매인 셜록과 마이크로프트와 에우로스의 이야기와 존의 감정선까지 아주 훌륭한 시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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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의 사회생활


백수가 되어 셜록이라는 인물을 다시 보게 됐다.

셜록도 '탐정'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회인이다. 매일 수많은 의뢰인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사건을 해결해야 하고,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부탁하는 사건들도 종종 맡아서 해결해야 한다. 한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은 적어도 두 세명이 된다. 해결 과정에서 셜록은 존과 돌아다니며 연관된 인물들을 탐방하고 사건 현장도 가보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인다. 드라마 속에서 셜록은 당황하거나 조급해서 실수하는 모습을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런 장면을 보면서 셜록이 사회생활을 꽤 잘한다고 느꼈다.


일이 꼬이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작중 셜록이 이미 베테랑급의 탐정이긴 했지만. 회사에서 일이 꼬인다면 나는 멘붕이 와서 죄송합니다만 입에 달고 살 것 같은데, 셜록은 설사 중간에 추리가 어긋난 부분이 있더라도 재빨리 머리를 회전시켜 다른 답을 찾아낸다. (물론 실수했다고 사과하는 타입은 아니다) 셜록의 회사는 건물 하나, 사무실 하나가 아니라 영국의 전국구다. 어쩌면 전 세계이다. 셜록이 고기능 소시오패스라 감정 공감 능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설정이 있지만, 자신이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한해서는 맹세를 할 정도로 의리가 넘치는 인물이다. 사건 해결의 중심에 서서 여러 사람을 상대하면서도 지인들의 의리는 저버리지 않고, 전국 각지에 흩어진 사건의 실마리를 수집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힘들다고 불평불만을 하진 않는다. 셜록은 일을 하는 동안에 열의가 넘치고, 실수를 책임지는 인물이다. 그걸 이번에 다시 정주행 하면서 알게 됐다.  



셜록은 베테랑이었다.

업무능력면에서나, 대인관계면에서나 그는 베테랑이었다. 업무능력은 당연히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뛰어난 게 더 자연스럽긴 하다. 그러나 그걸 모리어티처럼 범죄에 이용하는지, 그 범죄를 해결하는 선善을 위해 이용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다르다. 셜록은 어떻게든 맡은 사건은 해결하려 노력했고, 범죄자의 말에 딱히 휘둘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와 비교한다면 냉정하게 말해서 나는 맡은 일을 끝까지 하지도, 그 일의 인수인계를 제대로 끝내 놓고 나오지도 않았다. 그랬다면 이번 달까지는 근무했어야 하니까. (자책이라기보단 정말 냉정하게 말했을 때이다) 새삼 셜록이 책임감이 강한 성격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셜록의 대인관계 형성 능력을 의심하지만, 내가 이해한 셜록이라는 캐릭터는 공사 구분이 확실한 편이다. 그러나 감정을 숨기지는 않는 편. 그래서 일은 일대로 잘 처리하면서도 친구도 (결국엔) 본인만의 방식으로 지켜내는 인물이다. 처음 <셜록> 시리즈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나는 20살쯤이었나 그랬다. 그래서 셜록의 생활보다 셜록이 해결하는 자극적인 사건들에 더 관심이 갔다. 친구들의 감정에 공감해주지 못하는 셜록의 태도를 단편적으로 보고 '저런 지인이 주변에 있음 좀 피곤하긴 하겠다'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시즌4에서 절친 존의 부인 메리가 자신 대신 총에 맞아 죽자, 그 뒤로 약물중독자 폐인이 되어 한동안 살아간다. 그런데 사실 그가 약물중독자가 되어 살아간 건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죄책감도 분명 작용했겠지만) 메리가 생전 남긴 '존을 구하려면 셜록 자신을 위험에 빠뜨려서 존이 구하러 오게 해라'라는 메시지 때문이었다. 날 위해 이렇게 해 줄 지인이 있을까 싶었다. 아니, 나는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 희생할 수 있나? 그 정도의 책임감이나 의리가 있나?



이야기가 많이 샜지만 결국은 셜록의 사회생활을 말하고 싶었다.


셜록의 자신의 사회생활에 나름 충실했다. 그리고 본인의 사회생활에 충실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이제 나는 대충이라도 알 것 같다. 나의 가치관, 신념, 대인관계와 사회생활을 모두 지킨다는 건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한 달짜리 사회생활로도 내 가치관과 대인관계, 사회생활 모두를 그다지 잘 지키지 못한 채 퇴사했다. 물론 <셜록> 시리즈는 드라마이고, 사건은 픽션이고, 셜록은 아주 예전의 원작이 존재하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사회초년생의 입장에서 바라본 셜록은 베테랑이자 괜찮은 사회인이었다. 


ps. 런던에 세 들어 살지만 방을 구했다는 것도 아주 괜찮은 사회인의 척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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