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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믐 Jan 10. 2021

퇴사 2일 차, 재취업은 개뿔

무기력이 심한 날

불안 속에서 백수로 지내기

이 불안감을 이해하려면 내가 했던 업무 특성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퇴사 직전까지 가장 열심히 했던 건 '택배 관련 업무'였다. 그래서 갑자기 내일부터 택배 오발송, 미발송으로 나를 찾는 전화가 올까 봐 놀면서도 불안하다. 사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미 나는 퇴사를 했기에 더 이상 업무에 관여할 이유가 없다. 이제는 내게 남은 도의적 책임감이 얼마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난 스스로 남들보다 책임감이 강하다고 생각하다가도, 이건 책임감이 아니라 그저 소심할 뿐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래서 괜히 더 불안하다. 할 수 있는 만큼은 하고 퇴사한 것이라 자신을 다독이다가도, 이 뒤에 만약 일이 생긴다면 정말 내 능력 밖이란 생각에 걱정스럽다. 이렇게 마음이 좁고 불안정해서야, 다른 회사에 바로 입사하는 게 가능할까?



구직 사이트에서 스크랩한 채용 공고가 있다.

아직 서류접수 마감까지는 2주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다. 꼼꼼하게 준비한다면 지원서 말고도 부가적으로 포트폴리오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이전 회사는 내가 직접 지원한 게 아닌 스카우트 형식의 입사였어서 제대로 된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안 만들어 본 지 몇 달 된 상태이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 통통 튀게, 트렌디하게 해시태그를 사용해서 쓸지, 일반적으로 쓸지, 포트폴리오는 어떤 순서로 내용을 구성할지, 이전 회사의 한 달짜리 근무 내용도 넣어야 할지, 그걸 넣지 않는다면 내 어학성적도 없는 스펙은 어떡해야 할지 이런저런 고민을 했다. 고민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진 뒤에야 알게 된 거지만 고민은 할수록 답이 없다. 회사를 들어가도 고민, 나와도 고민인 삶. 다들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오늘 내 마음과 같은 춥고 텅 빈 골목길


퇴사 2일 차, 이력서는 개뿔. 놀기만 했다.

불안하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주말에 충실히 놀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 오늘은 꼭 이력서를 수정해야지.'라던가, '오늘은 포트폴리오 시작이라도 해야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일요일이 되자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지고 '아, 다 귀찮다. 쉬고 싶다...'란 생각만 들기 시작했다. 거기에 월요일에 또다시 업무 연락이 올까 봐 불안한 마음까지 겹쳐 무기력증이 도졌다. 그래서 가족 구성원과 밀린 드라마를 정주행 하다가,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늦은 생일 축하 인사를 마저 받다가, 다시 먹고 보고를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마치 학생일 때 '공부해야 하는데...' 하면서도 휴대폰을 보고 있을 때 마음과 같았다. 놀랍게도 학생 때의 나와 사회초년생이 된 나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퇴사 2일 차, 이력서는 개뿔이고 내키는 대로 지냈다.



방황하긴 싫은데, 방황할 것 같은 기분

원체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회생활의 맛(?)을 잠깐 보고 다시 한동안 백수의 삶으로 지내려니 마음이 복잡하다. 퇴사를 선택한 것도 후회하진 않지만, 다른 회사에 들어가서도 같은 선택을 할까 봐, 결국 한 곳에 오래 못 버티는 게 내 습성이 될까 봐 미리 걱정하게 되었다. (중요한 건 아직 재취업에 성공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 그냥 '이런 날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는 마음의 소유자가 되고 싶은데, 마음처럼 잘 안된다. 방황해서 가족들과 나 자신에게 걱정을 끼치긴 싫다. 그렇지만 한동안은 좀 무기력할 것 같고, 방황할 것 같은 기분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있는 걸 안다. 그래도 최대한 덜 아프고 싶은 청춘도 여기 있다. 


오늘은 얼른 우울함을 털고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이 강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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