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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믐 Jan 11. 2021

#11 아빠의 항암치료가 끝났다.

병원 탈출

아빠는 항암치료를 성공적으로 끝냈다. 

이제 음식도 아무거나 다 잘 드시고 (그러나 여전히 술과 치킨을 좋아하신다...) 걸을 때 숨이 차오르거나 심장이 아픈 것도 없다고 하신다. 


가장 최근 방문한 병원에서는 대장 내시경 결과도 아주 깨끗하다며, 이제 정기 검진만 받으면 될 것 같다고 하셨다. 이 얘기를 들은 건 내가 첫 회사에 입사하기도 전이다. 글로 남겨야지, 남겨야지 하다가 결국 첫 회사를 퇴사하고 나서야 경과를 알린다.



아빠는 대장암으로 암환자 칭호를 처음 달게 되었다.

엄마가 떠난 지 딱 1년 정도 지난 뒤였다. 그래서 세상을 원망했고, 아빠를 원망했고, 그럼에도 효녀로 자식 된 도리를 다 하는 언니를 원망했다. 왜냐면 난 모든 게 불만이었으니까. 지금 그 마음가짐이 많이 바뀌었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다시 아빠의 암이 재발한다면, 또다시 원망하고 미워할 것 같다. 난 평소에도 아주 미움이 많은 사람이다. 그 대상이 가족이라고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아무튼. 아빠는 예상외로(?) 수술과 항암치료를 잘 견디고 병원을 탈출했다. 물론 이제 지난한 과정을 거쳐 완치까지 5년 정도의 병원 스케줄이 주기적으로 잡히겠지만 일단은 탈출이다. 



대장의 절반을 자른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엄마가 인공항문인 장루를 달았던 것처럼 아빠도 그렇게 되는 건가 싶어 암울했다. 인생의 절망을 맛보았다는 표현도 과장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 이런 비관적인 마음이 안쓰러웠던 건지 세상은 나를 살렸고, 아빠를 살렸다. 


앞으로 평생을 조심해야 할 병력이 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지금 아빠는 건강해 보인다. 엊그제도 내 생일을 축하하러 서울까지 왔다 갔다. 그냥, 오늘만 같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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