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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믐 Jan 14. 2021

문송한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하나요?

취업난 속에서

문송하다
: '문과라서 죄송하다'라는 뜻으로, 취직이 어려운 문과생들이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이르는 말.
잉문학
: 상대적으로 취업이 더 어려운 인문계 출신들이 '인문학'을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말.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20대 청년들의 고민 


요새 친구들과 카톡을 하다 보면 심심찮게 스스로를 비관적으로 말하게 된다.


"세후 200 받는 직장 구할 수 있을까..."

"요새는 뭐 하고 싶은 것도 없어."

"공무원 시험 준비할까..."


한때 프리랜서를 희망했던 나는 현실과 일부분 타협하고 회사를 다녔다. 그러나 내 가치관과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한 달만에 관두게 되었다. 그렇게 호기롭게 백수 생활을 시작하고 근 일주일 정도 지난 지금, 나는 또다시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시기에 이르렀다. 최근 잉문학 전공의 문송한 사람이라는 자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문과로 졸업해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한마디로 뼛속까지 '문과'인 사람이다. 친척 어른들은 내가 '문과'를 선택했을 때, 그중에서도 예체능 계열인 '문예창작'을 전공하겠다고 말했을 때 망설임 없이 탐탁지 않아하셨다.


"글 쓰는 작가를 하겠다고? 그거 돈 못 벌잖아."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서 나는 내 적성과 소신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글 하나만 잘 써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막상 사회로 나오니 그때의 마음가짐은 패기가 아닌 객기가 되었다. 10년 전에는 그 존재감을 무시했던 바로 그 '돈' 때문에 말이다.


서울에서 월세방 하나를 얻어 산다고 쳤을 때 월세 40~50만 원, 건강보험, 교통비, 휴대폰 요금, 가스비, 관리비 등등하면 '집'에 들어가는 돈만 최소 70~80만 원은 된다. 여기에 내 생활비로 아무리 바짝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봤자 한 달 50만 원은 들어간다. 생활비로 50만 원이라 함은 친구들과의 약속, 데이트, 여가생활 비용을 거의 쓰지 않아야 가능하다.(밥은 그래도 챙겨 먹는다는 가정하에) 여기까지만 해도 한 달 120~130만 원은 족히 지출된다. 그리고 주택청약이나 기타 보험료를 포함하면 한 달에 최소 150만 원은 고정비용으로 나간다. 


그래서 나는 기타 적금도 들고 정기예금도 만들고 할 요량으로 세후 200, 못해도 세후 190만 원선인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다. 연봉으로 따지면 2,500~2,600만 원 사이인 곳이다. 그런데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채용 공고에서는 그만한 연봉인 곳이 없었다. 출판업계나, 기타 글쓰기와 관련된 업계에서는 경력직을 제외하곤 그만한 연봉을 찾기 힘들었다. 


내 전공을 살려서, 글 쓰는 걸 업으로 삼고서 그만한 연봉을 원하는 건 욕심이었다. 내가 잘 못 찾는 것이길 바랐지만, 왠지 찾으면 찾을수록 고액 연봉과 소액 연봉을 존재하는데 중간 연봉이 없는 것 같았다. 고액 연봉은 주로 대기업이니까 입사할 가능성이 없고, 소액 연봉은 앞서 말한 고정비용보다 10만 원~20만 원 더 얹은 금액이었다. 10만 원, 20만 원을 모아 자차라도 마련하려면 몇 년을 모아야 할까? 이 생각이 들자 내가 '문과'라는 사실이, '인문계'라는 사실이 확 와 닿았다. (문예창작은 예체능 계열로도, 인문사회계열로도 분류된다)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떤 선택이 더 나을까. 많은 문송이들(=문과라서 죄송한 사람들)은 오늘도 고민한다. 사실 더 나은 선택이라기보다 최악 중 차악을 선택하는 상황이 곧 닥칠 것 같아 걱정이다. 진로에 대한 불안감과 불확실성은 퇴사 이후의 내게 불면증을 안겨주었다. 퇴사한 지 이제 막 일주일 즈음에 접어들었음에도 말이다. 문예창작 전공에서 내가 배운 건 사회에 필요한 실무 능력이 아닌 문학적 소양과 문학 갈래별 작법이었다. 매년 신문사에서 개최하는 신춘문예는 각 분야별 1등 1명씩을 선발할 뿐이고, 출판업계와 같은 글쓰기 관련 직종은 모집인원을 '0명'으로 표시한다. (아마도 1명만 뽑는 것 같다) 


요즘은 잘 못 봤지만, 그래도 문과를 '필요 없는' 계열로 여기는 분위기는 여전히 남아있는 듯하다. 졸업할 때까지 자격증 하나 안 따고 뭐했냐, 어학성적은 만들었냐, 스카이 말고는 다 똑같다... 등등. 왜 나는 그런 조언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왜 내 전공을 멀리하고, 전공을 살릴 생각 말라는 말로만 들릴까. 


나와 같이 입학한, 나와 같이 졸업한 사람들의 진로는 어디로 정해졌을까. 

아니, 정해지긴 했을까. 

정할 수는 있을까.


새삼 내 전공과 내 위치가 파악된 날, 나는 문송한 사람들의 길은 어디인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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