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그믐 Jan 15. 2021

퇴사 8일 차, 일어나니 오후다.

아침이 순삭 됐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나는 철저한 '아침형 인간'이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에는 반에서 5등 안으로 등교해야 성에 찼고, 고등학교 때는 학년마다 빨라지는 등교시간에도 지각 한 번 하지 않았다. 나름 모범생이었다. 


그런데 이런 규칙적인 아침형 생활패턴은 대학교에 가서 완전히 무너졌다. 아침 8시 0교시부터 8교시, 9교시까지 빽빽하게 들어찼던 시절과 달리 대학생활은 나 하기 나름이었다. 점심시간도 여유를 부리려면 1시간 30분씩 비워서 시간표를 짤 수 있었고, 심지어 평일에도 공강이라는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20살이 된 이후 나는 밤을 새우거나 오후에 일어나는 올빼미형 인간의 삶을 살았다.


올빼미형 삶은 대학 졸업 후 더 심해졌다. 새벽 3시~4시에 잠들다 보니 눈뜨면 오후 2시~3시였고, 그래서 아침은 물론 점심도 건너뛰고 하루 한 끼 저녁만 먹는 일상을 보냈다. 그러다 작년 11월, 입사를 하게 됐고 한 달 동안 다시 규칙적인 아침형 인간의 삶을 살게 됐다.



론이 길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퇴사 후 다시 올빼미형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올빼미형보다 아침형 인간이 되기를 선호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식습관 때문이다. 올빼미형으로 살 때는 늦은 기상과 늦은 취침으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어려웠다. 아침은 없고, 늦은 점심은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아 귀찮으니 배달음식으로 시켜먹고, 점심때 먹은 배달음식은 배가 잘 꺼지지 않아 결국 저녁 시간대를 건너 야식 시간 때에 또다시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잠드는 그런 패턴이었다. 


아침형으로 살면 적어도 오전에 내 할 일 하나를 끝낼 수 있다는 장점(빨래라던가 청소기 돌리기라던가, 전날 설거지, 분리수거 등등)과 오후 약속 이전에 은행 등의 업무 처리가 가능하다는 점, 아침 섭취로 변비가 해결된다는 이점이 있었다.

(근데 이거 저만 그런가요? 아침을 챙겨 먹으면 쾌변이 쉽더라고요...ㅎ)

결국 건강이 더 좋았던 시기는 아침형 패턴으로 생활할 때였다.



오늘로 퇴사 한 지 8일이 됐다. 오늘 일어나 시간을 확인해보니 오후 1시였다.


오전을 날렸다는 아쉬움도 아쉬움이지만, '이러다 몇 달 전처럼 밤낮 바뀐 채로 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사람들은 직업 특성상, 본인의 체질상 야행성으로 사는 경우도 많지만 내 건강에는 안 맞았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건강에 좋은 건 입에 쓰고, 안 좋은 건 입에 달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건 내 건강에 좋지 않은데 하긴 쉽다.  


유감스럽게도 오늘 점심도 빈속의 마라탕이었다. 여기에 커피까지 안 마신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나는 한번 패턴을 놓치면 다시 되돌리는데 엄청난 동기부여가 필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이 글을 쓰는 저녁 7시 13분인 현재까지 저녁식사를 안 하고 있다. 점심때 먹은 마라탕 때문에 아직 배가 안 꺼져서.


다음 주면 준비하던 기업의 채용이 마감되고, 그다음 주 중으로 면접의 기회가 주어질지, 그냥 서류 탈락일지가 결정된다. 운 좋게 면접까지 간다며 다다음주 중으로 최종 합격 결과까지 얻을 수 있다. 그때까지는 조금만 더 부지런했으면 좋겠는데,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필요성과 동기부여가 꼭 충족되어야 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취업의 필요성은 여실히 느끼고 있지만, 험난한 세상에 다시 사회로 나가야 한다는 게 고민이기 때문이다.


순삭 된 아침을 여전히 아쉬워하며, 내일은 꼭 오전 중에 눈을 떠 보리라 다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문송한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하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