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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믐 Feb 14. 2021

괜찮다는 말이 희박해진 세상에서 잘 지내?

우리는 우리를 다독이는 법을 몰라

취업난이래, 알고 있니?

오늘 뉴스를 보니 중소기업중앙회와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참 괜찮은 중소기업' 플랫폼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방금 나도 사이트에 접속해 자가진단으로 내게 맞는 중소기업 목록을 보고 왔다. 결론은 채용을 진행 중인 곳 중 내 자가진단과 맞는 곳은 없다는 걸로 나왔지만.


이번 주까지 서류 접수 마감이던 기업에 일찌감치 서류를 접수했다. 노션으로 만들던 포트폴리오가 이때 쓰였다. 연휴 내내 붙들고 있던 거라 막상 접수하고 나니 허탈함 반, 뿌듯함 반, 걱정 반으로 기분이 범벅되었다. 이제 '좋은 결과'를 원하기보다 인사 담당자가 내 포트폴리오를 처음부터 끝까지 봐주기를 바라게 되었다. 제대로 접수가 됐는지 몇 번이나 들어가서 확인했다. 


연일 기사에서는 IMF 이후 최대의 취업난, 고용쇼크라는 헤드라인을 내걸었다. 어렸을 땐 취업률이나 실업률이란 단어가 나랑 멀리 떨어진 것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내가 그 자체다. 내가 고용쇼크의 안에 포함된다. 꽤 신기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당장의 나는 가족들의 보살핌 아래 밥 굶는 일 없이 구직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밥을 먹는데도 마음이 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밑 빠진 독이 아니라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우리는 우리를 다독이는 법을 몰라

원래 나는 스스로에겐 야박하나 남에겐 퍽 관대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주변에 '괜찮다', '그럴 수 있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가장 최근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언제인가 싶다. 일단 나도 괜찮지 않은데 남의 인생에 내가 뭐라고 괜찮다, 라는 위로를 건네줄 수 있나 회의감이 들었고, 우선 나부터 안정적으로 변하고 싶었다. 나부터, 나부터 라고 생각하던 게 벌써 1년이 지났다. 여전히 난 불안정한 청년세대의 한 명이자 한 면이다. 


친구들과 나누는 카톡은 점점 그 주제가 취업, 진로 고민, 스펙 고민으로 한정된다. 나는 퇴사하고 나면 어디 돌아다닌 이야기도 브런치에 쓰고, 사람 이야기, 사랑 이야기 등등 여러 주제를 고른 비중으로 다룰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내 브런치의 상당 비중은 결국 '진로 고민'이 차지했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괜찮다는 말은 몇 번 오고 간다. 그러나 그 말을 서로 나누면서도 우리는 알고 있다. 이게 진심의 위로가 되려면 고민 해결의 실마리라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결국 나는 더는 괜찮다는 말만으로 쏟아져 나오는 졸업 후 백수의 삶을 위로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만다. 



괜찮다는 말이 희박해진 세상에서

업적이라는 말보다 실적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시대다. 실적이 없으면, 활동 경력이 없으면, 경력 많은 신입이 아니면 괜찮다는 말은 그 힘을 잃는다. 그래도 잘 지내야겠지. 하루가 멀다 하고 하루가 올 것이고, 내일은 또 내일이 되어 올 테니까. '참 괜찮은 중소기업'이라고 했다. '참 괜찮은 세상'이란 말을 쓸 수 있는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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