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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믐 Feb 17. 2021

회사가 날 채용한 이유는 내가 만들기

회사에서 쓸모 있는 사람 되기

대학교에 입학하고 친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하던 말이 있다.


"우리 학과가 날 뽑은 건 전산오류이거나 교수님 판단 미스일 거야! 하하!"
"맞아 나도!"


목표하던 대학교에, 원하던 학과에 붙었을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집안의 경사라고 맛있는 걸 잔뜩 먹고 칭찬과 격려만 잔뜩 받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회사는 붙어도 최종 합격 연락을 받은 딱 하루만 기쁘고, 그다음 날부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회식문화도 그렇고, 회사 동료와의 대인관계도 그렇고, 입사 동기가 몇 명일지 입사 동기가 있긴 할지, 출근 첫날 들어가서 뭐라고 해야 되나 하는 별별 걱정이 피어오른다.


대학교는 붙고 나면 웬만해선 잘릴 일이 없다. 정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건의 주요 인물이 되거나, 갑자기 한 학기에 F만 두 개 이상 받아버리거나 하지 않으면 학교에 못 다닐 일이 없다. 그래서인지 내가 학교에 다닐 때 퇴학이란, 그저 뜬구름 잡는 명칭이었다. 존재는 하지만 아무도 본 적 없는 그런 의미로 말이다.


그런데 회사는 체감상 너무나도 달랐다. 첫 번째 회사를 다닐 때도, 두 번째 회사의 입사를 앞두고 있는 지금도, 나는 잘 다닐 생각보단 어떻게든 안 잘릴 생각부터 하고 있다. 회사 판매 제품을 입사 전까지 모조리 꿰고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면접 때 떨어지면 다신 안 볼 사이니까 엄청 텐션 높게 지른 말들이 많은데 입사하면 다 책임져야 하지 않을까, 근데 그걸 어떻게 책임져? 등등. 


대학교에 성적이 있다면, 회사엔 실적이 있다. 내가 첫 번째 회사를 다니면서 스트레스받았던 건 오늘 한 업무를 후에 상사가 확인하고 그날 밤에 전화하거나 다음날 날 불러 지적할 때였다. 그럴 때마다 내 업무 능력 평가가 깎이는 것 같아 조마조마했고, 그래서 퇴사 의사를 밝혔을 때 내 평가가 좋았다는 말을 듣고도 잘 믿지 못했다. 그땐 직무가 마케팅이 아니었으나 그랬다. 그리고 이번엔 마케팅이다. '마케팅=실적 싸움'이라는 생각이 박혀 있는 내게 두 번째 회사를 표현하라면 솔직히 설렘 20%, 두려움 80%다. 


붙을 줄 몰랐어서 여전히 궁금하다. 두 번째 회사가 나를 채용한 이유는 뭘까? 마케팅 관련 경력이나 대외활동이나 공모전 수상이 1도 없는 나를 계약직이나 인턴이 아닌 정규직 자리로 덜컥 뽑은 이유가 궁금했다. 신선한 마케팅 소재를 위해서?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공을 살려서 신선한 소재를 찾아야겠구나. 그런데 기획안은 어떻게 작성하는 걸까... (아마 입사하면 뼈저리게 이것 또한 회사의 전산오류이거나 대표님이 판단 미스라고 생각할 것 같다.)


학교는 무조건적으로 배움을 0순위를 두는 곳이다. 그러나 회사는 내가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래서 성과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달마다 월급을 받는 이유가 없어지고, 사무실에 내 자리가 있어야 할 이유도 없어진다. 회사에서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게 내가 한 달 남짓한 회사 생활과 취업준비를 하며 깨달은 점이다. 내 걱정은 모두 그 고민에서부터 나온다. 좀 더 잘 맞물리는 톱니바퀴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회사가 날 채용한 이유를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것. 때아닌 미션 임파서블이 따로 없다. 그러나 해내야만 수습 기간 중에 나간다거나, 수습기간이 끝난 뒤 나가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난 SNS에서 '마케팅'이란 글자가 보이면 일단 멈추고 읽어본다. 그게 그냥 콘텐츠라도, 마케팅 강의면 커리큘럼까지 쭉 읽어본다. 좀 괜찮다 싶으면 찜도 해둔다. 집에는 이미 엑셀과 일러스트&포토샵 교재가 배송돼있다. '무사히 녹아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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