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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믐 Feb 16. 2021

사회생활에서 술은 필수인가요?

회식이 선택이 되는 그날까지

사회생활에서 술은 필수일까?


이 생각의 시발점은 오늘 잡플래닛과 사람인을 돌아다니다 발견한 어떤 회사의 면접 리뷰를 보면서였다. 

'면접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됐음. 술 잘 먹느냐고 물어봄'

술을 먹을 줄 아는지, 먹는다면 잘 마시는지 못 마시는지. 이 부분이 면접 질문에 필요한가? 

대체 왜?


수능이 끝나고 대학 입시 결과가 나온 뒤, 나는 고깃집에서 부모님께 술을 배웠다. 우리 집은 엄마가 술이 약해서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 타입이었고, 아빠가 술이 세서 주량이 딱히 없는 수준이고, 형제자매가 술이 센 편이라 먼저 진학한 대학에서 매번 뒷정리 담당이라고 했다. 솔직히 유전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래도 좀 섞였을 테니까 나는 소주 반 병까지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소주 두 잔 마시고 고깃집 화장실에서 토했다. 그게 술과 나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날의 기억과 더불어 원체 낯 가리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이후 토할 정도로 사람들과 술을 마신 적이 거의 없다. 내 주량은 두 잔이었고(그것도 컨디션이 아주 좋고, 꺾어마셨을 때), 대학에 입학한 후 사람들의 첫인상은 '부어라, 마셔라'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1학년 때는 술자리에도 가지 않고 막차를 핑계로 상당히 소극적인 삶을 살았다. (여담이자 미담으로 당시 학과 친구들이 이런 나를 잘 데리고 놀아주어 잘 적응할 수 있었다. 항상 고맙다.)


대학교 4년은 술을 마시지 않아도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물론 술자리가 잦은 환경상 친구를 사귀지 못할까 봐 무서운 생각이 1학년, 2학년 내내 들어 괴로워하긴 했지만 결국 잘 졸업했다. 그런데 술은 대학보다 사회에서 본격적이었다.


최근 본 인스타툰과 영상에서도 이와 관련한 내용이 올라왔었다. 


자네를 위한 자리인데 술을 빼면 안 되지~!
꺾어마시는 거 아니야.
술을 못 마시면 사회생활 힘들지~!


그래도 학생일 때는 이런 내용을 볼 때 아직 내 일이 아니니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는데, 입사를 앞두고 있는 요즘은 아주 많이 신경이 쓰인다. 가뜩이나 원래 준비하던 직무랑 다른 직무로 입사하게 돼서 업무 능력이 떨어져 직무평가 점수가 낮을까 봐 걱정이 태산인데, 이런 내용의 콘텐츠를 자주 접하게 되자 이제 회식자리까지 걱정하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을 하는 데 음주는 꼭 필요한 부분인가?


사회생활=단체생활이니 공동체의 으쌰 으쌰를 위해선 편안한 분위기가 필요하고, 그 편안한 분위기의 마련을 위해서 긴장이 풀리는 음주, 즉 술이 필요하다는 의견. 그걸 난감한 표정으로 빼는 순간 공동체에 스며들지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찍는 곳. 언제부터 회식의 의미가 이렇게 바뀌었을까. 다시 순수히 회식 그 자체의 의미로 되돌릴 순 없는 건가.


내가 다녔던 첫 번째 회사는 점심 회식만 존재하고 저녁 회식은 없었다. 점심 회식도 일하던 분들의 마지막 근무를 기념한 식사 자리여서 술은 일절 없었고 각자 식사를 했을 뿐이었다. 이 회사의 경우가 특이했다는 것을 안다. 두 번째 회사는 어떨까. 아무리 기업 평가와 명시된 복리후생이 좋더라도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감이 안 잡혀 걱정이다. 


여전히 면접 질문에 '술을 잘 마시느냐'라는 직무랑 상관없는 질문이 포함되어 있고, 술자리에서 '술을 못 마신다'라고 밝힐 때 싸한 표정들을 마주해야 하는 세상에서 낯가리는 내성 보스 알코올 쓰레기는 살아남기 힘겹기만 하다. 회식은 무조건 선택이어야 한다. 왜? 업무란 상관관계가 없으니까. 음주도 무조건 선택이어야 한다. 왜? 업무랑 상관없으니까!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당연하지 않은 말인 '회식은 자율참석'이라는 말 앞에서 나는 오늘도 내일을 불안해한다. 그 말이 거짓말일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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