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친구들의 학사 졸업식에 다녀왔다. 나는 8월 코스모스 졸업을 해서, 너무 더웠어서, 그리고 코로나가 한창 심할 때였어서, 친구들을 따로 부르지 않고 가족들과 조촐하게 사진을 찍으며 보냈다. 그래서 사람도 없었고, 학위복이 겨울에 맞춘 재질이라 무척 더웠다. (더위가 너무 심해서 친구들 안 부르길 잘했다고 여겼다) 그런데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 일단 합격, 아는 얼굴들이 대거 졸업하는 날이라 또 합격, 와중에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신나는 마음에 합격, 완벽한 하루였다.
나는 당시 졸업을 마냥 신나게 받아들인 기억이 없다. 내가 너무 걱정만 많은 건가 했는데 오늘 만난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은 내 입사 소식을 물어봤고, 퇴사에 대한 고민을 말했고, 서로를 잠깐의 말로 보듬었다. 오늘은 빡빡한 현실에서 탈출하는 날이었으니까 그래도 됐다. 학위복을 입은 친구들은 이미 학생이 아닌 어른들이었다. 벌써 직장인과 같은 분위기를 풍겼고, 성숙해졌고, 말투는 여전했으나 성장한 것 같은 이질감이 들었다. 꽤 신기한 경험이었다.
대학교까지 졸업할 즈음이면 내 진로가 완벽히 정해져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난 여전히 내 미래가 보이지 않고(정말 말 그대로 분명하지 않다는 뜻), 내일의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가늠도 못한다. 20대와 변덕이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다. 어제 한 생각을 오늘 다시 하면 또 아닌 것 같고 그렇다.
졸업하는 친구들이 좀 많아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꽃다발을 전달하고 사진을 찍고 사진 속에 나오고 하다 보니 오후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우당탕탕 졸업식을 끝내고 오후 약속을 갔다. 그때 만난 학과 선배 역시 오늘 졸업을 한 분이었다. 선배와 동기 친구와 카페로 가 디저트를 먹으며 직장과 일과 진로와 걱정에 대해 한바탕 이야기를 풀어놓고 보니 밤이 되었다.
다들 제각기 가야 할 길로 갔다.
졸업은 사실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학교에 다닐 때는 졸업이 피니쉬 라인인 것처럼 전력 질주했는데 알고 보니 그저 수많은 반환점 중 하나였다.
반환점도 잘못 돌면 속도를 못 이겨 넘어진다.
나는 좀 살살 돌고 있다. 그래도 넘어지는 건 싫으니까.
누구는 졸업하니 홀가분하다 말하고, 누구는 아는 게 없는데 졸업이라니 부담된다고 한다.
사실 '졸업' 그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졸업 그 후가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