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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믐 Mar 21. 2021

마케터 입사 2주 차, 말실수의 늪에 빠지다.

사람들과 친해지는 법을 까먹었다.

입사하고 2주가 지났다. 첫 번째 회사를 다닐 때보다 심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힘든 것 같다. 일단 출퇴근 시간이 3시간 정도로 이전 회사가 2시간 거리였던 것에 비해 체력 소모가 컸다. 그리고 직원수도 이전 회사에 비해 거의 3~4배 정도 더 많은 규모라 여전히 사무실은 내게 낯설기만 하다. 낯가림쟁이에 어색하면 아무 말이나 해대는 나는 2주 동안에 여러 말실수를 했다. 부디 팀원분들이 내 말실수를 길게 기억하지 않으시길 바랄 뿐이다.


우리 회사는 스타트업이다 보니 연령대가 다 낮아 비교적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그렇기에 뭔가 대화를 할 때 내가 자꾸 한 단계 낮은 필터링을 거친다는 걸 깨달았다. 보통 사수분께 무언가를 물어볼 때는


"00님, 죄송한데 모르는 부분 여쭤봐도 될까요?" → 이런 식으로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그런데 나는,

"00님, 죄송한데 이것 좀 물어봐도 될까요?" → 이런 식으로 말이 튀어나간다. (내가 미쳤지...)


그 밖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말실수가 많았다. 고작 2주 만에 말이다. 점심 먹으면서 이야기하다가 회의 때 팀원분들 목소리가 낮고 너무 좋아서 졸리다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던가, 사수님께 설명을 듣고 나서 "내일도 물어볼 거예요!" 한다던가 등등... 살갑고 싹싹하게 군다는 명령어가 대뇌에 입력은 되는데 입으로 출력을 할 때 이상하게 나온다. 


예전에 SNS에서 어떤 사람이 아르바이트 첫날 고객 응대를 할 때, "이건 뭐예요?" "이거요? 이거 신발인데요?"라고 해서 매니저가 차비까지 쥐어주며 집에 가라고 했다는 썰을 본 게 생각났다. 그땐 보면서 이 사람 말을 되게 필터링 없이 하는구나 했는데 그게 나였다. 세상에 끔찍해라.



내 형편없는 처신과는 별개로 회사생활은 아직까지 만족스럽다. 첫 번째 회사는 입사한 지 2주 차에 접어들었을 때 어떤 안 좋은 쪽의 이벤트들이 생겼던 것 같은데 여긴 아직 없다. 입사 동기들도 너무 선한 분들이고, 사수분들과 친해지진 못했지만 바쁜 와중에도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그런데 내가 '직장상사'라는 생각을 너무 깊이 가지고 있는 탓에 그분들을 어려워한다. 부디 수습기간 내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요새도 출근하기 전 새벽이나 출근길, 그리고 퇴근하고 나서 광고 아이디어에 대해서 끄적여보고, 업무 툴에 올라온 자료들을 쭉 살펴본다. 그러지 않으면 다음날 업무를 아예 못 따라갈 것 같은 두려움이 여전히 있다. 아마 3개월 내내 있지 않을까 싶다. 원래 준비하고 생각했던 직무는 마케터가 아닌 에디터 쪽이었어서, 매일매일이 새로운 업무와의 전쟁이다. (사실 아직 엄청 많은 걸 한 건 아니지만ㅎㅎ)


신기하게도 차라리 얼른 출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얼른 배우고 얼른 익히고 얼른 내 것으로 만들어서 잘 활용하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사무실 직원분들 얼굴과 성함도 아직 못 외우고, 낯가린다고 땅만 보고 걷는 사람이지만, 살아남고 싶다. 내 두 번째 사회생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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