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그믐 Apr 03. 2021

입사 4주 차 마케터, 내가 일을 하나 일이 나를 하나

이제 좀 힘들기 시작했다.

오늘은 봄비가 내리고, 입사하고 4주 차를 막 지난 날이다. 


이제는 어땠냐고 묻는다면 힘들다고 답할 수 있는 심정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게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글쎄, 신입사원의 스트레스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다고 얼버무릴 것도 같다.



입사하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6시간 넘게 자본 적이 없다. 


적게 자면 4시간, 좀 잤다 싶으면 평균 5~6시간 정도 잔다. 주말에도 뭘 한다기보다 계속 기획안을 쳐다보고(아이디어가 생각이 안 나니까), 출근하는 날 새벽에 일어나 또 쳐다보고(아이디어가 생각이 안 나니까 2), 지하철 가는 길에 서서 또 폰에 메모장 띄운 채 또 쳐다보고(아이디어가 생각이 안 나니까 3), 그냥 그런 하루하루를 쌓다 보니 4주가 지났다. 그러나 막상 결과물은 내놓고 보면 내 성에 차지 않는다. 내 성에 차지 않는데 사수분들 성에 찰리가. 그러나 감사하게도 한 번도 내 기획안이 '별로다'라고 말씀하신 적 없다. 그저 보완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주신다. 웃으시면서. 처음엔 마냥 감사한 마음만이 들다가 이젠 나 자신이 답답해진다. 얼마나 더 보완점 가득한 기획안만 만들어 낼 거야? 그믐아?



이 직무에 내가 맞나. 


아니라면 나를 위해서도, 회사를 위해서도 빨리 판단을 내려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버거워하는 부분은 다른 게 아니다. 신선한 생각이 나지 않는다. 회사에서 다른 팀원들은 비슷한 아이디어를 파생하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든 어쨌거나 하루에도 몇 개씩, 일주일에 많으면 열댓 개를 생산해낸다. 난 그러지 못한다. 하루에 스스로 다짐한 업무량은 달성하기 힘들고, 누가 말이라도 걸면 졸아서 깜짝깜짝 놀라고, 괜히 아무 말하다가 심기를 건드렸을까 봐 조마조마한다. 여전히 그렇게 살았다는 사실에 오늘 갑자기 현타가 왔다. 이거 원래 내 성격 아닌데... 이제 아무도 안 믿을 것 같아. 그리고 실제로도 믿지 않았다. 내가 원래 진중하고 완벽하고 싶어 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금요일엔 몇 가지 실수를 했다.


혼나지도 않았고 죄송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까지 들었지만 마음이 그냥 불편했다. 메모까지 해놓은 일인데도 실수했다는 사실에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심지어 그 메모는 다시 보니까 정말 새롭게 느껴져 별 쓸모가 없었다. 사무실에서 내 책상에만 엄청 많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데 거기엔 다 각각의 업무마다 진행하는 순서랑 이번 주 우선적으로 해야 할 콘텐츠 목록이 적혀있다. 이렇게 적어놨음에도 잘 까먹는다. 나는 안다. 내가 그렇게 잘 까먹기 시작한 게 정신과 약을 1년 동안 먹은 뒤부터 그랬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어서, 그게 속상하다. 이게 내 모습 전부가 되어 버릴까 봐.



왠지 속상한 한 주였다.


오늘은 모처럼 하루 종일 비가 내리니까, 괜히 우울해진 날이니까, 이런저런 푸념을 해봤다. 그냥 말을 하지 말까 봐. 원래 성격대로 말없이 시키는 대로만 할까 봐 싶기도 하고... 어떻게 다 친해져. 거의 한 반 규모인데. 학교 다닐 때도 몇 명 하고만 친했는데 어떻게 다... 모르겠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아직은) 매번 무섭고 매번 불안하고 갑자기 내가 큰 실수를 한 게 걸려서 혼날 것 같고 불려 갈 것 같고 그렇다. 이럼 안 되는데. 이건 다시 병원에 가야 한다는 소리니까. 입사 극초반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자고 마음먹었던 게 이렇게 금방 바닥을 보이는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