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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믐 Sep 09. 2020

약속해, 네 잎 클로버만 찾지는 않겠다고

내 인생의 Turning Points

인생에 찾아오는 세 번의 전환점

아빠는 종종 내게 '인생에 찾아오는 세 번의 전환점'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사람은 살면서 총 세 번의 기회, 전환점, 변화 등등으로 불리는 시기를 맞이한다는 이야기였다. 할머니 때부터 내려오던 이야기인데 할머니도 꼭 그런 시기가 세 번 있었고, 아빠도 두 번 정도 겪은 것 같다고 했다. 인생의 전환점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되어 긍정적으로 흘러갈 수도 있고, 180도 다르게 부정적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고 한다. 60년을 살아오고 있지만 아직 세 번째 전환점이라고 할 만한 경우는 없어서 마지막 한 번이 어떻게 찾아올지 무섭기도 하고 궁금하다며 아빠는 대화의 끝에 항상 내 인생에 몇 번의 전환점을 겪은 것 같은지 생각해보라고 덧붙였다. 


'내 인생은 지금 어디쯤 있을까?'


아빠의 조언은 나 자신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인생에 찾아오는 세 번의 전환점을 세어보기 전에, 나는 내 인생이 지금 어디쯤 있는 건지도 궁금했다. 만약 인생에도 소설의 구성단계처럼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 존재한다면 나는 인간의 기대수명 100세에서 이제 막 20년을 지나는 시점이니 전개의 초반부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이만으로 인생의 진행상황을 판단하는 건 너무 섣부른 걸까. 아빠의 이야기대로라면 20년을 살았어도 그 안에 세 번의 전환점을 모두 겪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랬다면 나는 그 지점마다 제대로 된 판단을 내려왔을지도 의문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뒤늦은 사춘기가 찾아왔나 싶을 정도로 머릿속이 복잡한 나날이 많았다. 그러던 중 '아, 이게 그 전환점이구나!'싶은 시기가 왔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의 전환점역에 잠시 정차해 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온전한 '나'로서의 시간

코로나 때문에 뒤숭숭한 분위기였지만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다. 확진자가 늘어나는 시기라 친구들도 부르지 못하고 가족끼리 급하게 사진만 찍고 돌아온 졸업이었다. 이제 학교 홈페이지에 로그인을 하면 학적 구분이 '재학생' 아닌 '졸업생'으로 뜨고, 자유롭게 들어가던 수업시간표 조회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학생으로서 학교생활을 시작한 지 장장 16년 만에 '학생'이란 타이틀을 떼어내게 된 것이다. 나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무소속의 나'가 되었다. 처음에는 더 이상 회원가입을 할 때 직장을 학생으로 체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지금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온전히 '정그믐'으로 지낼 수 있는 시간은 두 번 다시없을 것 같았다. 내 인생의 몇 번째일지 모를 전환점에 도달한 것이다.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에서 나는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누구나 이맘때 하는 고민인 진로를 정할 시기가 온 것이다. 흔히 '적성/전공을 살릴 것인가? or 사회의 기준에 맞출 것인가?'에서 많이 고민한다. 문예창작인 전공을 살리자니 비정기적인 작업과 불규칙한 수입이 발목을 잡았고, 사회의 기준에 맞추자니 이번 달부터 매달 하나씩 자격증을 딴다고 해도 이력서에 쓸 것이 없을 정도로 쌓은 스펙이 없었다. 이 시점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냐에 따라 앞으로 내 삶은 달라질 것이다. 각각의 선택은 언제 비교해봐도 장단점이 확실히 보였다. 그래서 어떤 한 방향을 고르기가 애매했다. 고뇌를 거듭하던 중 발상의 전환을 해보기로 했다. 생각을 달리 해보자. 내 삶을 내가 원하는 쪽으로 진행하기 위해선 이 시점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찍어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오늘날 맞닥뜨린 이 전환점에 내가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여러 번 생각을 거치자 결론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그리고 단순하게 나왔다.


'외부의 시선이 아닌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자.'


나의 모든 선택은 옳다는 생각으로


네 잎 클로버를 쫓다가 세 잎 클로버를 밟지 않기

동기부여를 위한 말들 중 유명한 하나가 있다. "행운을 뜻하는 네 잎 클로버만을 쫓다가 행복을 뜻하는 세 잎 클로버를 모두 짓밟을 수 있다."는 문장이다. 간혹 있는 행운을 위해 주변의 행복을 놓치지 말라는 뜻인데, 이 말을 알게 된 지 십수 년이 지난 뒤에야 이 문장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실행해보려고 한다.


지금부터 사회의 기준에 따라 어학성적을 만들고, 컴활, 한국사, 한국어 등등 자격증을 따면 분명 이력서에 쓸 것이 더 많아지고, 때에 따라 좋은 기회도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 행운이라고 불릴 수 있는 기회 앞에서 내가 행복할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난 아니라고 대답할 것 같다. 좋아하는 취미가 특기가 되고 그 특기를 살려 문예창작을 전공으로 삼은 내게, 사회적 시선과 현실의 벽은 인생의 과반을 차지할 수는 있으나 100%를 차지할 순 없다.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나라면 주인공답게 모험을 즐기려고 한다. 물론 현실을 아주 무시하지는 않는 선에서 말이다. 


그래서 일단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공부하고, 배워볼 생각이다. 어쩌면 지금 내 선택이 10년 뒤 내가 보기엔 잘못된 선택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점이 내 인생의 마지막 세 번째 전환점이라 하더라도 내 인생의 세 잎 클로버 역시 놓칠 수 없는 존재임은 확실하다. 좋아하는 일을 통해 행복을 얻고, 건강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행운은 뒤따를 것이라 믿는다. 


p.s 행복과 행운이 내 삶에 어우러진다는 건, 인생에 전환점이 언제 찾아오든 최선의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뜻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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