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성격적 이유

심리치료의 목적, 위로와 공감의 목적

by 정그믐

내가 글을 쓰는 성격적 이유

나는 6개월 정도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처음 만난 상담사 선생님은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내가 무엇 때문에 불안한지 글로 써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심장이 과하게 두근거릴 때 마음을 정리하고자 글을 자주 썼다. 차분하고 생각이 많아 ‘신중하다’는 말보다, 답답하고 우물쭈물한다며 ‘소심하다’는 평을 더 많이 들어 못난이 인형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내 생각을 한 줄 한 줄 써 내려갔다. 그러면 그나마 어디다 털어놓은 기분이 들어 마음이 편해졌다. 적어도 나는 심리치료의 목적으로 글을 쓰는 경우가 많은 작가일 것이다.


내가 교복 입는 학생일 때에는 학급마다 주도권을 잡은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나처럼 숫기 없고, 적응하는 데 오래 걸리는 아이들은 주도권을 잡은 아이들의 눈치를 보는 일이 잦았다. 그들 중 몇몇은 사실상 선생님보다 힘이 세 보였다. 학교 축제를 준비할 때면 그들의 진두지휘 아래 의견을 통일하게 되었고, 혹시나 내 모습이 아니꼬워 보일까 봐 나는 매번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학생 중 한 명이 되었다. 합창대회를 연습할 때 무대 울렁증 때문에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할 때도, 그 아이들은 굳이 이유를 묻지 않았다. 목소리 좀 크게 내라며 답답해했을 뿐이었다. 사람들 앞에 서면 얼굴이 빨개지는 나는 합창 연습이나 발표할 때 종종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지만 이에 대해 따지지 못했다. 토를 달지 않고 그저 그렇게 물 흐르듯 살면, 나만 좀 참으면 계속 순탄한 삶을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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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힘이 센 아이들의 편에 소속되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선택할 때면 마음이 불편했다. 가령 반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와 선을 긋고 다가가지 않는다거나, 이유 없이 친구를 험담할 때 동조했던 나 자신이 떠오를 때면 심장이 너무 두근거렸다. 강한 자들에겐 약하고 약한 자들에겐 강한 내 모습이 싫었지만, 나의 학창 시절은 그렇게 점철되어 있었다. 잘못된 걸 묵인했던 경험이 10여 년이 지난 뒤에야 후회로 찾아왔다. 스스로 떳떳한 사람이 아니란 걸 깨달은 순간, 나는 성인이 되어있었다. 성인 되어서도 나의 태도는 변함없었다. 오히려 더 약은 기회주의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내성적인 성격의 변화는 하나도 없이 나이만 먹었고, 죄책감이 생기기 시작하자 그때부터 약을 먹게 되었다.


아르바이트에도 진입장벽이

정신과 약을 먹는 데엔 수많은 이유가 있고, 정신과를 다닐 만큼 마음의 병이 생긴 데에도 수많은 이유가 있어 하나를 꼽기 힘들다. 그러나 내가 약을 먹었던 원인 중 하나는 분명 내 성격에서 오는 것이 있었다. 어떤 결과를 도출하는 데 있어 외부랑 얘기하기보다 속으로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생각의 꼬리 물기를 잘했고, 이는 남들보다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로 만들어주었다. 예민한 성격은 남들보다 섬세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적어도 아르바이트 면접을 볼 때는 단점으로 작용했다.


지인의 추천으로 마련된 아르바이트 면접 자리였다. 초행길이었지만 시간 맞춰 도착했고 담당자님의 첫인상도 좋았다. 그러나 그의 질문은 좋지 못했다.


“목소리에 왜 그렇게 힘이 없어요? 어디 아파요?”

“남자 친구는 있어요?”

그리고 아르바이트 시간을 정하기 위해 출근이 어려운 날과 그 시간에 병원에 간다는 이유를 덧붙여 말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상당히 불편했다.

“정신과? 언제부터 다녔어요? 뭐 때문에 다니는 거예요? 심해요?”


몇십 분도 채 되지 않는 면접에서 나의 치부를 모두 드러낸 기분이었다. 낯가리는 성격 탓에 자신감 없는 모습으로 비치는 걸 들켰고, 병원에 다니는 이유부터 기간까지 모두 설명해야 했다. 당장 일을 하는 데 지장이 없는 질병 사항이라는 걸 잘 어필하지 못한 내 탓인지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좀 더 뻔뻔하게(혹은 당당하게) 굴었다면 면접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었을까. 매사에 이랬으니 주변 사람들이 내 성격을 ‘소심하다’라고 표현하는 것 같았다. 정중하게 병원과 관련된 질문을 하지 말아 달라고 얘기할 성격이 아니라는 게 억울했다. 억울함과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이 공존한 마음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성인이 되어서도 내 성격은 날 손해 보게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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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고 강한 힘

사람들은 왜 성격 묘사를 위해 긍정적인 단어를 선택하기보다 부정적인 단어를 선택할까? 왜 어릴수록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목소리 좀 크게 내봐라 등등 자존심이 깎일만한 단어를 더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걸까? 어린 날 들었던 거친 말들, 성인 된 뒤에도 좋지 않은 자극을 주는 주변의 말들에 힘이 들고 지칠 때면 나는 책으로 도망쳤다. 그러다 문득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이 거친 말을 한 사실을 깨달았을 때면 더 책으로 들어갔다. 솔직하면서도 과하지 않는 기성작가들의 문체가 신기했고 계속 알고 싶었다. 이렇게 부드럽고도 강한 말은, 글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지 궁금했다. 시간이 지나자 나도 이런 문체로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나처럼 상처받고 상처를 주다가 책과 글로 정착할 사람들을 위해.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이 생각을 간직하게 된 건 바로 이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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