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위한 글은 입금 후에 써줄게

페이는 협의 가능

by 정그믐

널 위한 글은 입금 후에 써줄게

학창 시절 내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는 글쓰기였다. 사람 친구가 잘 없었고, 그래서 30명 정원의 반에서 외로움과 무서움을 달래고자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초등학교는 거의 해마다 학생들의 장래 희망을 과일 모양 종이에 적어 코팅한 뒤 교실 게시판에 붙이는 활동을 했다. 1학년 때부터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아침마다 울었던 나의 꿈은 당연하게도 가장 가까운 친구인 글쓰기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6년 내내 장래 희망을 적는 칸에 ‘작가’라고 써서 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생일 때 가장 자신감 있게 했던 행동이었다. 여담이지만 그때 장래 희망으로 축구선수나 프로게이머, 과학자를 써냈던 친구들은 지금쯤 그 꿈과 가까워졌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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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는 학년별 권장 도서 목록이 반마다 구비되어 있었다. 나는 그 목록을 1년 동안 거의 다 읽는 것을 매해 목표로 삼았고, 어느 정도는 성공하는 학생이었다. 그래서 같은 반 아이들의 눈에는 내가 ‘작가가 될 것 같은 아이’로 보였나 보다. 아이들은 종종 책을 읽는 내게 다가와 내 꿈을 물으며 이런 부탁을 했다.


“너 책 진짜 많이 읽는다. 꿈이 작가야?”

“응, 난 작가가 되고 싶어.”

“그럼 막 글 쓰는 거 좋아해?”

“그렇지?”

“그럼 나 보고 생각나는 거 글로 써줘!”


당시에 나는 어떻게 행동했는지 모르겠다. 내 솜씨를 발휘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 열심히 무엇이라도 써줬던가, 아니면 당황하며 말을 얼버무리고 말았던가. 성인이 되고서야 알게 된 거지만 ‘날 위한 글을 써 달라’나 ‘날 위한 가사를 써줘’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사용료를 지불할 수 있어야 했다. 물론 학창 시절에는 다들 아마추어이고 글쓰기나 작사를 직업까지 연관시키지는 않으나, 문제는 이때의 아무렇지 않은 부탁을 나는 커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계속 듣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널 위한 글을 입금 후에 써줄게’라고 말할 줄 아는, 되바라진 연습을 했다면 내 통장잔고는 더 나아질 수 있었을까.


좋은 포트폴리오라는 명목

글을 쓰거나 가사를 쓰는 사람들에게 ‘페이(여기서는 원고료, 작사비)’의 개념은 다른 분야에 비해 모호하다. 글은 문예지마다, 신문사/잡지사마다 단체마다 원고료를 달리 책정하고 지급한다. (물론 내가 지급하는 입장이 되어 본 적은 없다. 그러니 문단계에서 통용되는 원고료가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어떤 창업팀의 제품에 실을 시를 써서 낸 적이 있는데, 그때 받은 첫 정산금으로는 치킨 한 마리도 사 먹을 수 없었다. 두 번째 정산까지 합하고 나서야 겨우 치킨 한 마리를 시킬 수 있는 정도였다. 문제는 첫 번째 정산과 두 번째 정산 사이의 기간이 길 경우 내 생계는 직격탄을 맞는다는 것이다. 글을 써서 제품에 싣고 표지 디자인을 정하고 출간하고 판매하고 작가에게 정산하기까지 길게는 6개월이 걸렸다. 그럼 그 6개월 동안의 수입은 달마다 0원이다. 그래서 하나의 원고 작업이 끝나면 다른 투고 자리를 알아보고 지원하고, 잘 되거나, 고배를 마신다. 정말 최악의 상황으로 아무 자리도 얻지 못하면? 말 그대로 손가락만 빨면서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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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도 마찬가지였다. 운 좋게 작곡가와 연락이 닿아도 그게 곧바로 수입원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일단 내 작업물이 작곡가의 눈에 들어야 하고, 그전에 작사비에 대한 서로 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내가 했던 대다수의 작업은 ‘좋은 작사 포트폴리오를 마련할 수 있다’라는 전제하에 작사비를 받지 않고 작사를 했다. 그러다 특정 작업물이 공모전에서 수상한다거나, 발매된다면 상금과 저작권료를 받을 수 있다. 난 아직 상금을 받아본 적은 없고 저작권료를 받은 경험만 있다. 그러나 저작권료는 2020년 1월부터 9월까지 3,000원이 조금 넘게 들어왔을 뿐이다. 작업 유형 중 발매를 할지는 불투명하니 일회성으로 작사비를 받고 작업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사람들이 알 만한 곡의 가사를 쓴 사람이 아니기에 작사비는 0만 원 선으로 받는다. 그리고 0만 원 정도의 페이는 매번 내 통장을 잠시 스쳐 지나간다.


이런 작업환경에 놓여있다가 문득 생각했다. 이게 내가 바라던 ‘좋은 포트폴리오’인가? 아니, 절대로.


페이는 협의 가능

최근 1년간 원고를 투고할 곳과 작곡가를 찾는 과정에서 내가 제일 우선시 한 건 ‘페이’였다. 요새는 과감하게 페이를 줄 수 없다면 작업을 하지 않는 편이다. 페이를 회사원 월급만큼의 금액으로 달라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내 노력의, 시간 투자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을 뿐이다. 음악 커뮤니티에서 페이는 상관없으니 작사가가 필요한 분들은 연락 달라는 글을 볼 때면, 내가 속세에 찌들어 물욕이 많아졌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글쓰기나 작사나 모두 노동력을 제공하는 일이고, 나는 그에 합당한 비용을 받고자 한다. 간혹 작업물 퀄리티에 따라 페이를 줄 수도 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애매모호한 말을 듣기도 하는데, 나는 이러한 입장에 반대한다. 회사도 직원이 일을 못 했다고 해서 월급도 안 주고 자르지는 않는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페이는 협의 가능’이란 문구를 단 채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나름의 구직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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