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없지만 감수성은 있다

나는 낭만파다

by 정그믐

싸한 기분에 통장 잔고를 본다. 아뿔싸, 아직 한 달 중 20일은 더 버텨야 하는데 돈은 10만 원도 채 안 남았다. 그렇다고 감성을 포기할 순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보는 거다.


나는 보기보다 꾸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느 달에는 식비보다 옷이나 귀걸이와 같은 잡화 구매에 더 많은 돈을 쓴 적도 있다. 물론 변명도 조금 덧붙이자면 평소에 소식하는 편이라 식비가 많이 들지는 않지만, 아무튼 그만큼 외적인 부분에 신경을 쓴다는 말이다. 나름의 TPO를 맞춰 외면을 꾸몄을 때 능률이 더 오르는 편이다. 그래서 꽤 보수적인 집안임에도 귀를 네 군데 뚫고 투톤 탈/염색하고 친구들은 모르지만 시스루 옷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런 유흥도 눈치 없이 용돈을 받는 시기에나 가능했다. 이제는 수중에 애써 모아둔 돈으로 써야 했다.


글 쓸 때 감수성은 포기할 수 없으니까

나는 글을 의무적으로 쓰지는 않고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쓴다. 그래서 오늘은 밝은 글을 썼다가 내일은 어두운 글을 썼다가, 소설을 썼다가 시를 썼다가 정말 여러 방향의 글을 돌아가며 쓴다. 한때 글쓰기가 내 업이라고 생각하자 부담감 때문에 슬럼프가 온 적이 있어서 지금은 최대한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쓰려고 노력한다. 그럴 때 꼭 필요한 것이 두 가지인데, 바로 ‘감수성’과 ‘분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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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분위기 모두를 잡기 위해 집 근처 카페를 작업공간으로 자주 삼곤 했다. 그러나 코로나 19로 카페에 가서도 마스크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답답함이 생겼고, 4,000원~5,000원짜리 커피 한 잔은 몇 시간씩 걸리는 내 작업 시간에 대한 소비로는 충분치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내 5평짜리 원룸을 주된 작업공간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자취생이라면 다들 공감하겠지만, 아무리 1인 가구라도 5평 원룸에 이것저것 짐을 부리다 보면 책상 위 공간도 확보하기 어렵기 마련이다. 게다가 뒤돌면 침대가 있어 쉬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기 쉽다. 여러 악조건을 견디려면 원룸 분위기를, 적어도 내가 작업할 책상의 분위기를 매력 있게 바꿔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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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집 앞 카페에서 작업할 때, 다른 사람들 같으면 집 근처이니 편한 차림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나름의 풀 세팅을 하고 나간다. 옷도 좋아하는 것으로, 화장도 하고, 렌즈도 끼고, 귀걸이도 4개 다 빠짐없이 한다. 그래야 카페에 가서도 ‘아, 내가 일하러 왔구나.’하는 기분이 들어 글쓰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집에서 거의 모든 작업을 끝내야 하는 지금은 집에서도 나름 정갈하게 세팅을 하고 작업에 들어간다. 예를 들면 향초를 피워 분위기를 은은하게 만든다던가, 커피믹스부터 시작해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홍차 등등 여러 종류의 음료를 준비해 그날의 기분에 따라 타 먹으며 작업한다. 그럼 옷은? 적어도 너무 후줄근한 옷이 아닌 선에서 깔끔하게 갈아입는다. 화장까진 하지 않더라도 샤워하고 얼굴에 팩까지 한다면 금상첨화이다. 누가 보면 겉멋만 잔뜩 들어있다고 하겠으나 나한테는 일종의 작업 전 의식과 같다. 내가 원하는 환경에서 원하는 글을 쓸 때 가장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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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멋은 내가 지킨다

점점 내게 야박해지는 통장이 원망스럽다가도 내가 나 하고 싶은 일 하겠다고 자초한 일이라 남 탓은 그만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겉멋을 완전히 포기할 순 없다. 멋은 글 안에서든 글 밖에서든 내게 있어 최소한으로는 꼭 존재해야 하는 잇템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신문에서 기성세대와의 가치관 차이를 다룬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청년들이 돈이 없다면 카페의 비싼 커피를 사 먹을 돈을 아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의 전문은 기억나지 않으나 그 구절이 머리가 띵하게 다가왔다. 돈이 없다고 로망을 실현할 권리조차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나친 소비는 내게 독이 되어 다가온다. 그러나 무엇이든 적당하게 누리는 것들은 좋은 영향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한다. 집안을 장식한 향초와 커피믹스에 대한 소비이든,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에 대한 비용이든 고단한 하루에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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