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을 찾아서
전공이 나와 맞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나를 억지로 전공에 맞추는 거 같아.
부모님이 공무원 준비하래.
이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내 친구들은 나처럼 예체능 계열을 전공하는 경우가 많다. 20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질 때면 진로에 대한 고민을 잔뜩 늘어놓곤 했다. 순수한 열정만으로는 의식주를 해결하기 힘들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자, 나와 친구들은 하나둘 현실과 타협했다. 공무원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늘어나고, 나는 그나마 취업 문을 넓히고자 복수전공을 선택했다. 아예 전공을 바꾸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선택이 옳다, 옳지 않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서로의 커리어를 보며 조바심을 느끼고, 불안해하는 날이 많아졌다.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면 이런 우리 상황에 대한 결론은 항상 같았다.
뭐 어쩌겠어.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
애초에 나는 글이 좋아 글을 썼고 그걸 전공으로 삼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글쓰기는 정기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직종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일정 수준의 수입은 필요했다. 전공자로 발을 처음 내디뎠을 때는 로망과 환상만이 가득했다. ‘이제 졸업만 무사히 하면 어디 가서 전공자라는 명함을 내밀 수 있겠구나’하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졸업까지 가지 않아도, 전공자로 1년만 살아봐도 이 길로는 먹고 살기 험난하겠다는 걸 알게 됐다. 심지어는 전공 수업 중 교수님도 농담으로 얘기하시곤 했다.
너희 설마 취직할 건데 문창과 온 건 아니지?
저 질문 아닌 질문에 오기로라도 ‘아니요’라고 답하고 싶었던 나는 이리저리 글쓰기로 돈 벌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나의 능력 부족인지, 아니면 정말 사회는 가혹한 것인지 결론은 다시 처음과 같았다. 한때 내가 생각해낸 방법은 글과 관련된 아이템을 활용한 창업이나 POD 출판과 같은 자가 출판 등이었다. 그런데 창업이든 자가 출판이든 시간과 돈은 필수적으로 필요했다. 창업이라면 최소한의 자본금이 필요했고, 자가 출판이라면 출판하는데 필요한 돈이나 출판하기까지의 생계비가 필요했다. 결국 글쓰기만으로 먹고사는 건 거의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명확한 대안이 없는 생각을 거듭하자 지치는 날들이 생겼고, 지치는 날의 끝엔 ‘이렇게까지 할 정도로 난 글쓰기를 좋아하나?’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매일 쓰는 것도 아니고, 여가에 틈틈이 쓰는 버릇만 챙기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럼 굳이 글쓰기를 내 업으로 삼을 필요는 없지 않나. 그냥 다 접고 남들 하는 것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라는 슬럼프에 나도 빠지게 된 것이다.
내 전공이 나한테 맞는지 모르겠다는 뉘앙스의 말을 꺼내자 아빠는 상반기, 하반기 공기업 채용 정보를 문자로 보내주기 시작했다. 다른 길을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는,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부모로서의 걱정이 담긴 문자였다.
00 기업 하반기 채용 시작하네. 9월까지 접수 마감♥
아빠는 항상 문자 끝에 하트를 붙여 보냈다. 그 내용이 얼마나 좋든, 좋지 않든 상관없이 하트는 함께 수신되었다. 한동안은 아빠의 문자가 나를 움직였다. 시키는 대로 이력서를 쓰고,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1차 서류심사도 통과 못하는 결과를 보며 피드백도 없는 회사에 아쉬운 소리를 했다.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쓰겠다는 명목으로 돈 들여 토익 인터넷 강의 수강권도 끊고, 꽤 열심히 들었다. 포토샵, 일러스트 자격증 시험 일정을 체크하고 크게 마음먹고 노트북까지 사서 공부했다. 딱히 특정 직무를 준비하기 위해 하는 공부는 아니었지만, 그냥 ‘남들’이 하길래 따라서 이것저것 찔러보게 되었다. 긴 시간도 아닌 하반기 채용 시즌 한 달을 그렇게 이력서와 포트폴리오의 반복으로 보냈다. 남들처럼 취업을 준비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층 편해지면서도, 웃긴 게 하나도 절실하지 않았다. 토익은 공부한 만큼 점수가 올랐고, 문외한이던 디자인 툴도 간단한 작업은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는데도 기쁘지 않았다. 뭘 꾸준히 하는 성격은 아닌 내가 일러스트 특강을 끝까지 완주하는 기염을 토했는데도 체감은 ‘취준 하는 기계’가 된 기분이었다. 채용공고에 직무기술서를 봐도 여전히 외계어 같기만 하고 와 닿는 건 하나도 없었다. 이런 고민을 얘기하면 다들 겪는 과정 중 하나이니 그냥 참으라는 말만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간만에 시간이 나서 한글 파일을 열고, 푸념인지 에세이인지 모를 글을 써 내려갔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썼다. 한참을 그렇게 쓰고 나서야 타자를 멈췄다. 후련했고 너무나 오랜만에 ‘즐거움’이란 기분을 느꼈다. 내친김에 메모장에 끄적이던 문장들을 가지고 와 시도 썼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는 느껴보지 못한 집중력에 웃음이 났다. 처음에는 취업 준비에 지쳐 글쓰기가 갑자기 다시 좋아진 건 아닐까 경계했다. 그런 이유라면 조만간 다시 글쓰기에 싫증 낼 테니 말이다. 그러나 괴로워하며 있지도 않은 지원 동기를 쓰던 나날을 돌이켜보면 답은 하나였다. 나는 글쓰기와 잠시 냉전이었을 뿐이지 결국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일에는 애정을 쏟지 못하고 좋아하는 일에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내가 호불호 강한 성격이라는 걸 글과 다른 일을 번갈아 한 후에야 다시 알게 되었다. 엄청 돌아가지 않아도 답을 찾을 수 있어 어이가 없었다.
그럼 그렇지. 난 글을 써야 돼.
가까이 있을 땐 소중함을 모른다는 말이 있다. 나는 글쓰기와 그렇게 멀리 이별한 적도 없는데 한 달 만에 소중함을 깨달았다. 쓰면서도 실소가 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안다.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