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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믐 Oct 04. 2020

길 위의 풍운아

산책의 이유

산책의 이유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날이나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날, 그냥 기분이 안 좋은 날이면 산책을 나간다. 내가 사는 곳은 해가 떨어지면 달이 성급하게 떠오르고 이름 모를 별자리가 뒤따르는 밤이 온다. 집 주변은 산책로가 잘 다듬어진 탓에 주민들은 달처럼 성급한 걸음을 재촉하며 운동량을 채우려고 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 틈에서 하늘의 별을 세어보는 낭만을 누린다. 그러면 잠시간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서로 평행한 산책로와 밤하늘이란 존재가 안심이 되는 날은 내 마음이 다소 불안한 하루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글을 즐겨 쓰는 사람이다. 그래서 길을 걸을 때면 전공병일지 모를 습관을 가지고 있다. 바로 길을 걸을 때 바닥이나 정면이 아닌 길가를 자주 본다는 점이다. 보통 산책로는 기분 좋은 산책을 돕는 예쁜 경관이 마련된 경우가 많다. 분기별로 꽃을 다르게 심어둔다던지, 스피커를 군데군데 두어 노래나 라디오를 틀어준다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올해는 여름에 걸쳐 해바라기가 자라고 꽃을 피우고 꽃을 거두고 말라 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어느 날 마찬가지로 길가의 꽃들을 보며 걷고 있었는데 내 앞의 중년 부부가 풀과 꽃들을 가리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 봤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듯 휴대폰으로 사진도 찍고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이었다. 나 말고도 길가의 생명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더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새삼 신기한 마음에 나는 휴대폰에 그날의 일들을 정리해 메모해뒀다. 


이렇듯 평소랑 다른 생각이 들 때면 글 쓸 소재로 사용하기 위해 메모한다. 보통은 꿈이나 책 내용을 메모하는 경우가 많지만, 요새 산책을 즐겨하며 이 과정에서도 메모하는 횟수가 늘었다. 산책로에서는 많은 사람과 많은 자연물이 함께하기에 뜻밖의 광경이나 기분을 느끼는 때가 곧잘 찾아온다. 그래서 글이 잘 안 써지는 날에 산책을 한다면, 마음도 가라앉히고 소재도 얻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산책로의 사람들

산책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자주 나오지 않는 시간대를 자연스레 알게 된다. 내가 산책하는 곳은 주거단지가 많은 동네라 퇴근시간 이후로는 아주 북적북적한 편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고 저녁이 되면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 운동량을 채우려 산책로에 발을 딛는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고 느낀다. 낮 동안은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 소리가 주를 이뤘다면, 저녁이 되고 밤이 오면 사람들의 도란도란 말소리가 길을 메운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사람들의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배운다. 열정이란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 없는 그들의 삶을 그들의 발걸음에서 찾아내고, 또 응원한다.      


이후의 생각은 나를 향한다. 내가 낮 동안 있을 위치는 앞으로 어디가 될까. 아직 고르고 맞춰보는 중인 난 어떤 인생의 톱니바퀴와 맞물리게 될지 기대와 동시에 걱정도 된다. 또한 내가 길과 어울리는 사람들을 보며 영감을 얻었듯이, 산책로 위의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원하는 시간대에 나갈 수 있는 이 산책로가, 언젠가는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한 공간으로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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