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이란 호수에 빠져 발버둥 치고 있다면
일상을 지내다 보면 어떤 말을 들어도 어떤 걸 봐도 재밌지 않고 한없이 떨어지는 기분이 드는 그런 날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때 중요한 건 이 기분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것보다 내 기분이 누군가를 힘들게 하지 않을지 유심히 살펴야 한다는 점이다. 감정에 솔직한 건 좋지만 치우치다 보면 불상사가 생기기 마련이니 말이다. 포괄적인 개념의 '기분'이란 말은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우발적'이 될 수도 있고, '날씨'의 한 유형처럼 그저 그렇게 지나갈 수도 있다. 특히 우울한 감정은 그 지배력이 커서 헤어 나오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우울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물결처럼 퍼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발장구 한 번으로 일렁이기 시작한 물결이 잠잠해지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듯 우울한 기분이 완전히 사라지는 데에는 사람 by 사람의 시간이 걸린다. '사람들은 다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만 왜 이럴까?'라는 생각이 한 번 등장하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해진다. 부정적인 기분 앞에선 머릿속이 마치 호수와 같고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어느 정도 자라고 난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걸 실례라고 여긴다. 그래서 아이들은 바로바로 울고, 아프다고 하지만 어른들은 상대적으로 그러지 않는다. 대신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하여 우울한 감정을 털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시도하는 건 '운동'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반 있다면, 싫어하는 사람도 반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중에 한 명이다. 그래서 나처럼 우울함이 꽤 자주 오면서도 활동적인 해소법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 나름의 취미를 공유하고자 한다.
활동성 ★☆☆☆☆
집중력 ★★★★★
혼자력 ★★★★★
우울하면서도 혼자 있고 싶을 때는 컬러링북만 한 취미가 없는 것 같다. 아무 말하지 않아도 손은 계속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우울함에 집중되었던 신경을 분산시켜 해소할 수 있다. 컬러링북+색연필+색연필 케이스의 세트를 한 번 구입하고 나면 한참 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TMI. 가격대는 판매회사별로 다르긴 하나 세일할 때를 노리면 색연필 세트까지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선 진짜 하루 종일 붙들고 있지 않는 이상 며칠씩 걸리기 때문에 장기적인 활동으로 안성맞춤이다. 개인적으로 컬러링북을 색칠하며 우울감이 해소된다고 느꼈던 순간은 작품이 완성된 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참 색칠할 때 손에 전해지는 색연필의 부드러운 질감이 감정의 완화에 영향을 더 많이 주었다. 미술시간처럼 미적으로 뛰어나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고, 색칠의 순서, 색감 등 타인이 간섭하는 것 하나 없이 오로지 내 마음대로 하면 되기 때문에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손으로 하는 걸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분전환용으로 컬러링북 한 권 씩 마련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활동성 ★★★☆☆
집중력 ★★★★☆
혼자력 ★☆☆☆☆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혼자 살아갈 순 없다. 그렇기에 아무리 MBTI에서 I(내향형)의 성향이 뚜렷하더라도 지인을 만나 밀린 수다를 떠는 건 행복한 일이다. 나는 그런 날 지인을 데리고 예쁜 카페를 찾아간다. 이를 종종 '카페 투어'라고 부른다. 코로나가 없었을 때에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예쁜 카페를 갔지만, 현재는 자제하고 있는 중이다. 집에 있을 때에는 아무래도 후줄근한 옷차림, 편한 상태로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단 약속을 잡게 되면 외출을 위한 청결과 나름의 TPO를 준비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부지런해짐과 동시에 기분전환이 된다. 그리고 요즘 카페에는 특유의 감성을 내세우기 때문에 메뉴부터 시작해 분위기, 테이블, 인테리어의 분위기가 마치 날 고급스럽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리고 카페별로 내세우는 대표 메뉴를 먹어보면 달달한 것을 먹으면서 오는 기분 좋음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울감이 다소 줄어든다. 앞서 어른들은 상대적으로 아이들에 비해 힘듦을 내색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가까운 지인을 만나 힘든 점을 털어놓은 시간은 가끔씩 필요하다.
활동성 ★☆☆☆☆
집중력 ★★☆☆☆
혼자력 ★★★★☆
요즘은 향수를 꼭 외출 때만이 아니더라도 여러 상황, 장소에서 쓸 수 있다. 북 퍼퓸이란 이름으로 책 페이지에 뿌리는 향수가 있고, 몸이 아닌 옷에 뿌리는 섬유향수도 있고, 흔히 우리가 아는 손목/귀 뒤/목 등에 뿌리는 향수가 있다. 나는 다른 것들보다 몸에 바로 뿌리는 향수를 선호하는 편이다. 외출할 때에도 기분을 더 상쾌하게 만들기 위해 쓰고, 가끔 방 안 공기가 탁한 것 같으면 방에도 뿌린다. 향이라는 것이 과하면 머리가 아플 정도이지만, 적당히 향유한다면 기분전환용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도구이다. 나는 단정하게 하고 나갈 때 뿌리는 향과 사랑스럽게 보이고 싶을 때 뿌리는 향 두 가지로 나눠 소지하는데, 여러 향을 맡아보고 내게 더 잘 어울리는 향을 찾아가는 과정도 나름 즐겁다. 단순히 향수를 많이 가지고 있을 때 우울감이 해소된다기보다는, 내 몸에서 좋은 향이 날 때에 스스로 더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에서 자기애가 높아질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향의 유무와 관계없이 나 자신을 사랑하는 건 중요하다!)
어떤 감정이든 의연하게 맞이하고 보낼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러긴 힘들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찾아오는 우울의 호수에서 어차피 내 감정이라면 발버둥이 아닌 발장구를 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는 게 좋다. 내가 추천하는 취미 말고도 다양한 방식을 통해 우울에 정복되지 말고 어떤 감정이든 발맞춰 걸을 수 있는 단단함을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