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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믐 Oct 11. 2020

사람들은 방에서 별을 만든다

새벽 2시에 창밖을 보면

새벽 2시에 창밖을 보면     

마감이 임박한 글을 쓸 때면 종종 카페인의 힘에 기대어 새벽까지 깨어 있곤 한다. 내 방은 창문이 커서 밤하늘을 보기 좋다. 글을 쓰다가 막히거나 지칠 때 고요한 하늘을 보는 것만큼이나 마음이 진정되는 행동도 없다. 그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글을 쓰다가 한숨 돌리기 위해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2시를 넘기고 있었다. 기지개도 킬 겸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까운 거리에 내 방과 마주한 다른 아파트의 모습이 보였다. 그날따라 수많은 창문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아파트를 빤히 쳐다보게 되었다. 그러다 한 집에서 갑자기 불이 팍 하고 켜졌다. 내 머릿속 깊이 있던 기억도 팍 하고 떠올랐다.     


새벽 5시 40분의 위로

고향에서 학교 다니던 시절 우리 집은 꼭 아침밥을 먹어야 등교할 수 있는 일종의 가족규칙이 있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이 규칙을 지키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무리 없었다. 그런데 마의 고3 수험생 생활을 시작하자 아침마다 밥을 챙겨 먹기가 힘들었다.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이른 등교시간 때문이었다. 지금 기억하기로는 아침 8시 10분까지 등교해 영어 듣기를 하고 아침 자습을 끝낸 뒤 정규 수업을 했다. 당시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걸어서 15~20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고, 헐레벌떡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일찌감치 준비를 끝마치고 나서는 날이 많았다. 7시 30분쯤에는 집을 나섰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밥을 천천히 먹는 타입이란 점이다. 그로 인해 나는 아침을 새벽 5시 40분쯤에 일어나 먹는 루틴을 잡게 되었다.      


여름이면 해가 빨리 뜨지만 겨울에 새벽 5시~6시 사이란 여전히 깜깜한 밤과 같다. 그때 한창 진로와 대학 진학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마음속에 팽배했던 나로서는 그 새카만 시간에 혼자 깨어있는 것이 서럽고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새벽, 감기는 눈을 겨우 뜬 채 꾸역꾸역 밥을 먹다가 뒤 베란다 쪽 창밖을 보았다. 평행하게 마주 선 다른 동 아파트가 보였다. 그런데 이전에는 몰랐던 집들이 보였다. 띄엄띄엄 불이 켜진 집들이 었다. 나처럼 새벽에 아침을 챙겨 먹는 학생들이 사는 집인지, 새벽처럼 일을 나서야 하는 가장들이 사는 집인지, 그날따라 눈이 일찍 떠진 사람들이 사는 집인지, 그렇게 몇몇 집이 불을 켠 채 아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3이라 힘들어서 그랬을지 몰라도 그 간간이 불 켜진 집들이 참 별처럼 보인다고 느꼈다. 아주 가까이에서, 내가 볼 수 있는 가장 큰 별로 보였다.     


사람들은 방에서 별을 만든다

5년이 지난 후 같은 모습을 마주했다. 여전히 나는 군데군데 불 켜진 집들의 모습을 별처럼 보고 있었다. 가장 어두운 시간에 가장 밝게 빛나는 별들이었다. 저곳엔 어떤 사연이 있을까,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나름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도 맞은편 불 켜진 내 방을 보며 일종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도 함께 했다.      



새벽 2시. 새벽 5시 40분. 누군가에겐 늦은 취침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이른 아침이 될 수도 있는 애매모호한 시간대이다. 그 시간의 조금은 씁쓸하고도 따뜻한 감정을 다른 얼굴 모를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건 꽤 매력적인 경험이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새벽에 눈을 뜰 일이 잘 없었다. 새내기 때를 빼고는 늦게까지 깨어있던 적도 잘 없었다. 최근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하면서 새벽에 깨어있게 된 것이 5년 전의 기억과 함께 새로운 기억을 만들게끔 한 것 같아 감회가 새롭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이르고 느리게 맺는 사람들의 하루에 불 켜진 방만큼의 따뜻함이 함께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오늘도 방에서 별이 빛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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