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오래 잡아두지 말기
예전에 TV 예능에서 김동현 선수인가, 징크스가 많은 모습으로 화면에 나왔었다. 남들이 보기에 별 일 아닌 것 같은 상황에도 무조건 좋은 쪽으로 말하는 모습은 내게 인상적인 모습으로 남아있다. 모르고 돈을 넣고 세탁기에 옷을 돌렸을 때에도, ‘세탁기에 들어갈 정도로 돈이 남아돈다는 건가?’라는 말을 해 패널들의 원성을 사긴 했지만 나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후회하고 아쉬워하면 뭐하나, 이미 지나간 일이다.
나도 사실 미련이 많은 편이라 물건도 잘 버리지 못하고, 싸우고 절교하고 나서도 죄책감이나 원망으로 밤을 새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민과 걱정으로 밤을 새우고 있다가, 이대로 살다가는 나만 다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 몸뚱이는 내가 챙겨야 하는데 이렇게 허구한 날 후회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생각을 고쳐먹기 시작했다. 운수 안 좋은 날도, 너무 오래 잡고 있지 말기로.
'운'이라는 이번 주 글감을 보고 가장 먼저 <운수 좋은 날>이란 작품이 떠올랐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에서는 인력거꾼 김첨지의 아내가 병색이 짙고, 그런데 그날따라 인력거 일은 잘 풀리고, 그렇게 돈을 벌어 아내가 먹고 싶어 하던 설렁탕을 사들고 갔더니 아내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는 이야기를 한다. 교과서에서 배울 때에는 ‘나 같으면 아내가 위독하니 그날 일은 접어두고 아내 병간호를 하겠다.’라는, 당시 시대 배경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는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갑자기 홀로 남겨졌을 김첨지의 텅 빈 마음이 상상됐다. 집안의 가장이라고 아득바득 손님을 태우고 달려서 벌어온 돈일 텐데, 아내는 그 돈을 보지도 만지지도 못하고 떠났다. 김첨지는 이미 떠난 아내를 보고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미안함에 많이 울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첨지의 아내는 남편을 원망했을까?
나는 그것도 아닐 것이라 본다. 김첨지는 하층민이었다. 소위 말하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으로서 세상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아내는 무뚝뚝한 말이라도 남편의 상황을 충분히 헤아리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떠나고 난 후 그가 얼마나 미안해할지도 전부 다 알고서 마음 아파했을 것이다. 그리고 김첨지가 빨리 슬픔을 털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나름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나자, 그다음부턴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조금은 더 어른스러울 거란 생각을 한다. 물론 <운수 좋은 날>은 인물의 죽음과 당시의 시대상과 하층민의 고달픔을 모두 아우르는 작품이라 내 시선으로는 해석에 부족함이 많다. 그러나 나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사람들의 언행에 화가 나다가도, ‘나도 그런 적이 있겠지’, ‘저마다 최소한의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했을 때 마음이 한결 편한 걸 느낄 수 있다. 지나간 것에 큰 미련을 두지 않을 때, 떠난 사람도 자유롭고 아직 남아있는 우리도 자유로울 수 있다. 그게 사람이 아닌 물건이라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일 때문에, 어떤 사람 때문에, 혹은 어떤 물건 때문에 오늘이 운수 안 좋은 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충분히 무엇을, 누군가를 원망하고 미워할 수도 있다. 그런 감정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그 감정을 너무 오래 붙잡아두지 말자. 물결처럼 얼른 흘려보낼 순 없어도 껌처럼 계속 곱씹지는 말자. 김동현 선수처럼 매사에 긍정 회로를 돌리며 말하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나를 더 토닥여주는 습관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