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그믐 Oct 25. 2020

그리움의 모양

그리움이란 무엇일까.

그리움 [명사]
: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     

별생각 없이 사전에 ‘그리움’을 쳐봤다. 한자어가 아니라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그리움’이란 말은 15세기 문헌에서부터 ‘그리움’으로 쓰여 현재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15세기 이전에도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 따로 있을 것이다. 사람이라면 살다가 한 번쯤 유독 정이 가고, 보고 싶은 존재가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리움이란 무엇일까.


나는 가장 먼저 다시 보려면 꽤 오래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 사람과 많은 추억이 있었다면 같은 시간이라도 더 오래 기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꼭 추억이 아니라 느끼기에 나쁜 기억이 많더라도 그걸 본인이 ‘정’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때부터 그리움이 된다. 어떤 물건을 봐도 그 사람이 생각나고, 비슷한 사람을 봐도 연관되어 생각난다면 그 이유 역시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대상으로 할 때에 그리움은 기하급수적으로 몸집을 불릴 수도,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리움은 종종 기다림의 모양을 한다.


나의 경우 떨어진 적 없이 지내던 형제가 교환 프로그램으로 생애 첫 긴 이별을 할 때에 그랬다. 그때의 나는 마냥 어리지도 않은 나이였지만, 형제가 떠나는 순간부터 나는 그를 그리워했다. 간간이 영상 통화가 걸려올 때면 부모님과 좁은 사각형 화면에 얼굴을 들이밀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교환 프로그램의 목적보다 무사히, 건강하게 귀국하는 것이 더 고마운 일이라 부탁했다. 우리는 당장 볼 수 없음에 슬퍼하기보다 그리워하는 것을 택했고, 건강히 돌아오기를 기대하며 기다렸다.     




그리움이 꼭 사람만을 상대하는 건 아니다.


사물 앞에서 그리움은 애착과 같은 맥락의 말로 쓰인다. ‘손때 묻은 물건’이란 말 안에는 정말 자주 사용해서 때 묻은 물건이라는 뜻 외에도, 그렇게 손이 자주 갈 만큼 애착이 가는 물건이었다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떨어지면 허전하다거나 항상 생활 루틴에 있어야 하는 사물들이 특히 그렇다. 해져서 이제는 정말 버려야 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것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쿠션감이 없음에도 물집 하나 없이 2년을 신었던 신발이 해져서 한동안 여러 신발들을 신으며 다음 신발로 맞는 것을 찾아본 적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푹신한 걸 신어도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뒤꿈치가 까졌다. 결국 포기하고 다시 원래의 신발을 신자 발이 아프지 않았다. 이렇듯 굳이 마음까지 가지 않더라도 내 몸이 더 익숙하고 편하다고 느끼는, 그런 형태의 그리움도 있다.      



그리움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그리워하는 당사자를 위한 것일까, 그리움의 대상을 위한 감정일까. 답이야 어찌 됐든 그리움으로 인해 우리는 보고 싶은 사람이 생기고, 곁에 두고 싶은 물건이 생긴다. 어떤 존재 때문에 애가 타는 건 과하지 않는 선이라면, 살면서 갈망이라는 걸 하는 몇 안 되는 경험이 될 것이다. 누구나 삶에서 그리움을 느낀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그리움은 어떤 걸 말하고 있는가?     

작가의 이전글 운수 안 좋은 날이라고 생각 말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