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이 없다면 결과도 없다.
예전에는 작가가 되기 위해선 신춘문예나 문예지 등단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문인협회에 가입이 되어야 비로소 작가라고 대외적으로 인정받는 것이라 여겼다. 문예창작학과가 있는 예고, 예대 수순을 밟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으리라 판단했고, 대학교에 와서 본 교수님들도 등단을 기준으로 작가 데뷔를 말했다. 그래서 나는 자격증처럼, 도장처럼 내 신상정보에 무언가 꾹 찍혀 있지 않을 거면 쓸모없는 경력이라고 여겨, 일찌감치 작가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 헤맨 적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의심이 들었다.
나는 누구를 위하여 글을 쓰는가?
나는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고 싶은 건가?
작사를 처음 시작하고 교류를 위해 음악 커뮤니티에 가입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수많은 유형을 글을 봤는데, 작사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적 조언을 해주는 글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소위 ‘입봉’이라고 하죠. 작사가로 불리기 위해선 참여한 곡이 발매되고 저작권 등록이 되어야 입봉이 되었다고 해서 작사가라고 합니다.
그땐 그 사람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곡도 없으면서 노트에 자칭 작사 습작이라고 부르는 낙서로는 그 양이 수십, 수백 편에 달하더라도 ‘작사가’라고 불릴 자격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내 진로에 관심을 가지고 보여 달라고 할 때는 자신 있게 작사 노트를 보여주었으나, 막상 작곡가들에게 내 포트폴리오를 설명할 때에는 작사 노트 얘기는 쏙 빼고 실질적으로 발매된 곡들만 어필했다. 그들도 내 연습장의 끄적거림에는 별 관심이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다 너무 결과 중심인 내게 실망했다. 노력이 반영된 것이 ‘결과’이고 그게 작사에서는 발매된 ‘곡’이라고 해도, 나는 왜 내 노력을 숨기면서 좋은 결과만을 바라는 걸까.
과정이 없다면 결과도 없다.
진로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을 할 무렵 내린 결론이었다. 그 결론을 내릴 무렵 나는 내가 글이든 작사든 생각보다 그 분야에 정성을 기울이지 않은 것 같다고 느꼈다. 소설 전공이면서 4년 내내 습작한 소설은 4편에 불과했고, 그렇다고 시나 희곡이나 비평이나 다른 갈래의 글을 많이 쓴 것도 아니었다. 작사도 중학교 때 200편에 달하는 끄적거림을 모아둔 후 대학교에 와서는 작업 제안이 들어오지 않으면 따로 작사 노트를 만들지 않았다. 좋은 결과만 바라다보니 노력을 숨기다 못해 없애버린 것이다.
뜸해진 습작은 지난한 과정을 견딜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 판단했다. 단순히 ‘지망생’으로만 불리기는 싫은 마음, 남들만큼 이미 이뤘으면 싶은 조급한 마음으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먼 미래만 상상하고 있었다.
지금 나는 글도 쓰고 작사도 하는데, 왜 지망생으로만 불려야 돼?
그래서 그 뒤로는 남들에게 말은 안 해도 습작을 이어나가며 스스로 ‘나는 작가, 나는 작사가’라고 되뇐다. 이게 별 효과가 없어 보여도 꽤 자신감을 채워준다. 직업마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고 선을 불분명하게 한다는 건 다른 누군가의 눈엔 비판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하나, 적어도 글과 작사 앞에서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입봉’을 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만 작품이고 지망생이 쓰는 글은 글이 아니고, 지망생이 쓰는 가사는 가사가 아니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나는 오늘도 글과 책 출판의 경계, 습작과 작사 곡 발매의 경계를 조금 더 무너뜨릴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작가이고, 곡 작업을 할 때의 나는 작사가로 자칭하며 지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