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부심과 자존심은 한 끗 차이

종이 한 장씩 차이나지도 않았다.

by 정그믐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내가 하는 일, 즉 글쓰기와 작사를 묶어서 ‘쓰기’라고 할 수 있다. 글은 세대와 시대를 넘나들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나는 내가 그 매개체를 향유하는 사람으로서 지금 사회의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을 즐기며 동시에 책임감도 느낀다. 내가 남긴 한 글자, 한 글자가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는 한편, 논란의 중심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직접 경험하며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과정에서 배운 것들을 지닌 채 글을 쓰는 마음을 나는 ‘자부심’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나의 어린 날과 주변의 상황을 보면 ‘자부심’이 아닌 ‘자존심’을 가진 채 창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창작자로서 바람직한 마음가짐이 뭔데?’하고 묻는다면 ‘정답은 없다.’라고 말하겠지만, 적어도 영 아닌 것 같은 마음 몇 가지는 있다고 덧붙일 것이다.


대학교 생활 막바지 무렵 교수님과 나 사이에 오해가 생긴 적이 있었다. SNS에 교수님이 참석한 문학 포럼 관련 기사가 올라왔길래 친구 이름 세 글자를 태그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해당 교수님이 수업에서 이와 관련해 좋지 않은 분위기의 말씀을 했고, 그래서 그 수업을 수강하던 친구가 듣고 당황하여 내게 연락했다.


OO아, 너 SNS에 OOO 교수님 기사에 댓글 단 적 있어?

아, 나 그거 그냥 교수님 사진 있길래 한번 보라고 태그 한 건데?

아니, 교수님이 댓글 단 거 안 좋게 말씀하셔서...


이때까지만 해도 무슨 일인지 정확히 인지하기 힘들었다. 나는 그 교수님의 수업을 수강하고 있지 않았다. 그 결과, 당사자인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먼저 소식을 듣고 내게 괜찮냐고 묻는 상황이 됐다. 나로서는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 것인지 알 길이 없어 답답했다. 그런데 내가 더 놀랐던 것은 수업 시간에 수업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보다 그날 이후 교수님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얼마 뒤, 우연히 교수님과 친구와 난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게 됐다. 그때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그때 그 기사 나가고 내가 욕을 많이 먹었거든.

...?

그래서 그런 거니까 좀 봐줘요.(정확한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뜻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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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나는 그 기사 내용을 확인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학과 교수님의 얼굴이 기사 메인 사진으로 걸려 있길래 신기해서 친구를 태그했다. 그런데 교수님은 해당 문학 포럼에 참석하여서 한 발언들로 인해 비판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신경이 날카로워져 계셨고, 내가 친구의 이름을 태그하여 댓글을 단 것도 마침 그 직후였다. 교수님은 이미 비판을 많이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단 댓글에 비판적인 어조나 내용이 있는지 자세히 확인하지 않은 채로, 나와 내 친구 역시 본인을 비판했을 거라 짐작하셨다. 그리고 그 생각을 수업 시간에 공개적으로 말씀하신 거다.


기사를 제대로 읽지 않고 아는 얼굴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를 태그한 내 잘못도 있다고 본다. 댓글 하나, 말 한마디에 조심해야 하는 건, 글 쓰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이 갖춰야 할 매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댓글의 유무보다 댓글의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설령 기사가 교수님을 비판적으로 묘사한 내용이었더라도 반대 내용을 말할 수 있는 곳이 댓글 창이다. 거기에 난 내 친구 이름을 태그한 채 내용에 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명백히 교수님의 오해였다. 그래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 멀어져가는 교수님을 보며 씁쓸했다. 비판받았다고 하여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 아닌 틀렸다고 단정 짓는 행동은 내가 꿈꾸던 ‘작가’의 모습과는 아주 달랐다. 내가 생각했던 창작자와 마음가짐과도. 그렇게 교수님이 지키고자 했던 자존심은 내게 잊지 못할 기억을 주었다.


자부심과 자존심의 차이는 뭘까. 둘 다 과하면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 타격 정도는 자존심일 때 더 크다고 본다. 자부심이 내가 아닌 내가 하는 ‘분야’에 대한 자랑스러움이라면, 자존심은 분야에서 일하는 ‘나’를 지키기 위해 방어기제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분야에서 열심히 살면 언젠가 자부심을 느낄만한 위치가 될 거라는, 그러니 꿈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식의 그런 희망찬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앞서 창작자의 마음가짐에 정답은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은 곧 내가 어떤 분야에서 활동하건 ‘내가 정답이 아닐 수 있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뜻도 된다. 나 역시 자부심이라 착각한 자존심, 고집을 부리다 사람들에게, 조직에 손해를 끼친 적이 있고 자기합리화로 나를 방어한 적도 있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그 모든 행동은 정답이 아니었다. 그때 생각했다. 자부심과 자존심은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도 아닌, 한 끗 차이에 불과하다고. 그래서 더 경계해야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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