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있어도 먹고사는 건 걱정된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네

by 정그믐

요새 4년 동안 잊고 있던 현실감각을 서서히 깨우는 중이다. 여전히 돈이 궁핍하면 가족에게 손을 벌리는 건 똑같지만, 그래도 전보다 돈을 아껴 쓰려고 노력 중이다. 혼자라는 생각이 강해 하나라도 놓칠까 봐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는 아니고 일정과 가계부를 정리하는 용도로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쌓인 다이어리는 벌써 다섯 권째에 접어들고 있다. 예전에는 가계부를 써도 귀찮은 날이면 며칠씩 몰아서 쓰고 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안일해지는 걸 경계한다. 통장 사정도, 내 위치도 예전보다 나빠졌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도 학생 신분을 완전히 탈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누가 보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격일 수 있다. 어쨌든 개인적인 소감으로는 제한이 사라진 것도 같고, 제약이 많아진 것도 같다. 20살이 되었을 때 단순히 음주에 자유로워진다는 생각 말고는 어른이 되었단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대학까지 졸업하자, 나를 감싸고 있던 울타리가 모조리 증발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족들도 나의 선택에 과거에 비교해 강압적으로나, 부드럽게나 설득하는 횟수가 줄었다. 온전히 내 판단과 실력, 그리고 체감상 50%는 차지하는 것 같은 운을 믿어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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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주 보는 걸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게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남들은 새해맞이로 한 번씩 본다는 걸 나는 마음 맞는 친구만 있으면 두 달에 한 번씩도 보러 간다. 물론 한 군데에 고정적으로 가서 그곳의 말만 맹신하는 건 아니다. 여러 군데를 돌고 그중에서 기억하고 싶은 말이나, 가장 빈번하게 나온 말을 주로 믿는 편이다.


그런데 지금은 사주 속 내용의 빈도와 상관없이 현실적인 대안을 알아보려고 한다. 사주에서는 내 전공 중 하나인 경영과 내가 잘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주식투자와 같은 일들을 해도 안 맞을 거라고,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현실감각이 점점 깨어나면서 은행 예•적금의 이자만으로는 돈을 불리기 힘들다고 느꼈다. 그래서 계획적이진 않았지만 언젠가 필요하겠다 싶어 주식투자에 관한 책을 샀다. 지금껏 주식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꼭 사주 때문만은 아니라 ‘아는 게 없어서’였다. 잘 모르는데 덤볐다가 홀딱 망할까 봐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물러설 곳이 없다. 내 명의의 통장 안에 잠들어 있는 이 자그마한 아이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 머리를 굴려야 한다. 가능한 한 빠르고, 잃지 않는 쪽, 기왕이면 더 벌 수 있는 쪽으로 말이다.


그렇다.
어엿한 직업인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난 내 미래가 너무나 걱정되는 프리랜서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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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말은 이렇게 하면서 주식투자 책을 앞쪽만 읽은 채 덮어두고 있다. 역시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다고 여실히 느끼며. 일단 용어 자체가 너무 어렵다. 내가 경영학 수업을 들었어도 이해가 안 된다. 딱 첫 페이지를 보고 느낀 건데, 이 한 권을 다 떼려면 남들보다 최소 5번은 더 봐야 할 것 같다. 그래도 흥미가 없으면 아예 먼 곳으로 밀어놓던 습관은 버리고, 눈앞에 보이는 자리에 꽂아두기는 했다. 언젠가는 꼭 배워둬야 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눈앞에 보여야 내가 그래도 미래 생각을 조금은 하는구나 싶어 마음이 안정된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일 때 엄마는 부엌 식탁에서 가계부를 쓰며 한숨 쉬곤 했다. 나는 그런 건 아랑곳 하지 않고 엄마에게 용돈 가불을 시도하는 철없는 자식이었다. 언젠가 심부름으로 은행에 가 엄마의 통장을 정리한 적이 있다. 그때 통장에 찍힌 액수가 내가 모은 용돈의 액수보다 적어 놀랐다. 그 뒤로 엄마에게 무언가를 사달라거나, 용돈을 올려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내가 직접 가계부를 쓰고 난 후로는, 엄마의 한숨과 함께 섞여 나온 말에 공감했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네.
돈 좀 모으려고 하면 돈 나갈 데가 생기네.


돈을 절약하기 위해 쓰는 것이 가계부라면 나는 그 정의대로 쓰고 있지는 않다. 그저 저번 달보다 더 쓰지 않게 해 주세요, 이미 많이 썼다고요, 하며 빌다시피 지출목록을 정리한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생활비를 지원받는 대신 월세, 휴대폰, 공과금, 건강보험료까지 주어진 생활비 선에서 해결하기로 아빠와 합의를 봤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니 어느 시점부터는 그렇게 헤프게 쓰지 않지만, 목돈이 나가는 상황마다 아까워 죽겠다. 그것도 예상 밖의 상황으로 나가는 목돈이면 더 억울하다. 최근에는 갑자기 나랑 이별을 선언한 노트북 때문에 새 걸 장만했는데, 그때 통장 앞자리가 바뀌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팠다. 정말.


언제쯤 돈 걱정 없이 살아볼까. 그런 날이 내 인생에 오기는 할지 궁금하다. 직장인들이 한 달에 몇백씩 받아도 돈이 없다고 괴로워하는 심정을 이제야 공감하게 됐다. 나도 직업이 있다고 말하지만, 먹고사는 건 직업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숙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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