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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믐 Dec 05. 2020

INFJ 직장인이 주말을 보내는 법

이불 밖은 위험해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고 2번째로 맞는 주말이다.

놀랍게도 글을 쓰는 지금 밤 11시가 넘도록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아무것도'란 내 기준에 딱히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 아무것에 대한 나열을 해보자면,


1. 일주일 동안 밀린 빨래를 했다.

- 옷 좀 오래 입겠다고 흰색, 검은색, 그냥으로 나눠서 빠느라 힘들었다.

- 스웨터는 손빨래했다.


2. 청소기를 돌렸다.

- 왜 쓰레기통은 뭐 좀 버리려고 하면 꽉 차 있는 걸까?

- 대체 이 많은 바닥의 먼지들은 언제 들어온 걸까?


3. 월세 재계약 서류를 준비... 하려고 했으나 유튜브로 빠졌다. 유튜브, 넷플릭스, 티빙 만세다.


4. 낮잠을 잤다. 아니 어떻게 낮잠만 5시간을 잘까. 현실도피성 숙면인 것 같다.


이렇게 하고 나니 시간은 벌써 오후 9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아주 늦은 저녁 겸 야식으로 닭발까지 시켜먹으니 밤 11시를 넘겼다. 모든 직장인의 쉬는 날이 이렇게 순삭(순간 삭제)되는 것일까. 이상하게도 일을 시작한 뒤로 더 무능력해지는 것 같고, 바보가 되어가는 것 같다. 같은 업무만 반복하다 보니 성장한다는 느낌이 없다.


나는 원래 집순이라 밖으로 나가는 날이면 밀린 외부 일을 한꺼번에 처리는 타입이다. MBTI 검사는 항상 INFJ(인프제), 그중에서도 내향형을 뜻하는 I의 비중은 89%였다. 내 안의 외향형은 고작 10%다. 그래서 친한 친구를 만나더라도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고, 사전에 계획된 게 아니면 피로감을 느끼는 날이 많다.

 

그런데 회사에 다니고 나서부터는 나의 계획이 아니라 회사의 계획에 맞춰 움직이게 됐다. 움직이기 싫은 날에도 정신을 차리면 내 몸은 지하철을 타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맛이 사라졌다. 그리고 훨씬, 피곤하다. 야근이라도 하는 날엔 하루에 내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단 생각에 심히 울적해졌다. 


일단 토요일은 나도 모르게 지나갔다. 아쉽게도 이 글을 쓰는 동안 시간은 계속 흘러 이제 20분 후면 일요일이다. 모레는 직장인들이 제일 싫어한다는 월요일이고.


나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해봐야 할 것 같다. INFJ 직장인은 어쩌면 성립되지 않는 말일지 모른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 회사생활이라니. 다들 이렇게 사는데 나만 고민하는 건지, 그저 주말이 지나갔다는 사실에 심술이 난 건지. 꽤 심란한 토요일을 보내고 있다. 


와중에 닭발은 맛있었다. 사장님 저 단골 예약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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