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동기 보러 출근한다.
아빠는 내가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회사 험담을 듣더니 말했다.
"회사는 다 그래."
"그게 사회생활이지."
아니, 부조리함에 이렇게 순응하는 게 어른이란 말인가. 내 하루치 경험에 공감해달라는 게 그렇게 어렵다고?
이럴 땐 같은 핏줄의 가족이지만 이렇게 공감대가 다르나 싶다. 그때마다 나는 내 직장동료들을 떠올린다. 이상한 얘기 같겠지만 '같은' 회사, '같은' 직무 탓인지, 회사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가족이나 친구보다 직장동료들과의 공감대가 더 잘 맞다. 같은 내용을 동료들에게 말하면 그들은,
"아 그렇죠!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진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이 하는 빈번한 말들 중 이런 게 있다.
"일보다 사람이 더 힘들다."
나는 저 말을 대학생활 때부터 뼈저리게 느꼈던 터라, 일은 고되더라도 좋은 동료를 만나면 그래도 더 버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았다. 그러던 중 만난 첫 회사는, 말이 씨가 된 것처럼 일은 내 가치관과 맞지 않았으나 입사동기들은 내 마음에 들었다. 어느 점에서 마음에 들었냐고 묻는다면 그냥 우리가 대인관계를 맺어오는 여느 방식과 다를 바 없다.
우선, 빡침 포인트가 같아야 한다. (빡침 말고 더 찰떡같은 단어를 찾지 못했다)
회사에서 하루 9시간을 근무하니 거의 모든 에피소드는 회사 내부에서, 회사 사람들에 의해 일어난다. 그때 바로바로 동기들과 소곤소곤 불평불만을 이야기하는 건 스트레스 푸는 데 제격이다. 그러나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회사에서 겪은 빡침 모먼트를 설명하려면 앞뒤 상황과, 인물과 인물의 관계를 대략적으로라도 덧붙여야 한다. 나는 빨리 내가 화난 부분까지 이야기를 전개하고 싶은데, 상대방은 아직 내 회사 대인관계를 잘 모른다. 지금 내 입사 동기들은 이런 부분에서 더할 나위 없이 최고의 수다 메이트다.
다음으로, 유머 코드도 맞아야 한다.
여기까지 말하다 보니 정말 그냥 친구 사귀는 방식과 같다. 내가 말해놓고서는 너무 시답잖은 말이라 반응을 기대하지도 않은 적이 종종 있는데, 동기들은 빵빵 잘 터진다. 그리고 대화하다 보면 서로 유머 코드가 비슷해서 웃을 때도 같이 웃을 수 있다. 왜, 다들 생각해보시라. 회사의 높으신 분들이 하는 전혀 재밌지 않은 농담에 온 힘을 다해 웃어야 하는 눈물겨운 비즈니스가 다들 있지 않나. 나도 그렇게 힘든 순간 뒤에 동기들하고 떠드는 게 회사생활 중 몇 안 되는 낙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감수성이 맞아야 한다.
이건 내가 특수한 경우가 해당되는 말인 것 같다. 나는 문예창작학과를 전공으로 한 사람이라, 유감스럽게도 흔히 말하는 '오글거림'을 디폴트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새벽이 좋고, 글은 밤에 더 잘 써지고, 낮에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여가 시간에 뭐하냐고 물으면 정말 책을 읽거나 쓰거나가 90%인 삶을 살고 있다. 솔직히 입사하고 첫 일주일까지만 해도, 나의 이런 예민함이랄까 섬세한 면을 남이 이해해주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거기에 내성적이고 낯가리는 사회성 부족 성격까지 더하면 사회생활 부적응의 금상첨화였다. 그런데 이런 내 우려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동기들은 나와 비슷한 감수성의 소유자였고, 적어도 글쓰기 플랫폼으로 브런치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다.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 없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서로의 예민하고도 섬세한 면을 존중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동기들과 우스갯소리로 '동기 보러 출근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입사 16일 차, 결심했다. 너무나도 이직하고 싶고 너무나도 퇴사의 충동에 휩싸이지만, 입사 17일 차는 동기들을 보러 출근하기로 말이다. 그리고 입사 18일 차도, 19일 차도... 그렇게 수습 기간이 끝나는 3개월 차까지는 버틸 수 있기를 바란다.
일과 사람 중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사람을 고를 거다.
일보다 사람이 힘들다는 말은 거의 내 가치관과 같기 때문에 나는 일이 힘들더라도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고 싶다. 일이 없어도 사람은 다른 일을 찾아갈 수 있지만, 사람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뒤에도 내 곁에 좋은 사람들이 생겨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