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번째 이야기
본격적인 대학교 개강 전, 내가 합격한 학과는 학과 홈페이지를 통해서 향후 일정 등을 공유했다. 주된 내용은 오리엔테이션 일정, 수강신청 일정 등이었는데 사실 그보다 더 중요했던 홈페이지의 쓰임새는 따로 있었다. 일부 적극적이었던 신입생 동기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번개를 소집하고 개강 전에 서로 얼굴을 익히는 것을 주도했는데 홈페이지는 그런 과정에서 서로 연락처를 공유하고 약속 장소를 확정하는 사랑방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나는 그러한 번개모임에 나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이었기에, 그렇게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 소식들을 얻고자 사랑방을 자주 방문했다. 홈페이지를 열면 가장 먼저 매 번 같은 BGM이 나를 반겨줬는데 그것은 미국 출신 밴드 Green day가 부른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였다. 반복되는 기타 선율로 도입 부분을 채운 이 노래는 왜인지 나에게 쓸쓸하지만 따뜻한 감상을 불러일으켰는데 이 노래의 배경을 찾아보고는 그 이유를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이었던 조 암스트롱은 자신이 10살 때 폐암으로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다 성인이 되어 유명해진 후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에게 아버지는 노래의 영감이자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을 것이다. 내가 노래를 들으며 느낀 감상들, 그리고 그가 노래에 녹여내고 싶었던 감정들, 그것들은 서로 꽤나 짝이 들어맞는 것들이었다. 정말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이 노래를 듣는 것은 그 자체로 나를 빨아들이는 일이었기에, 나는 가끔 심심할 때면 그냥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멍하니 이 노래를 들었다. 4분마다 한 번씩 F5를 누르며.
아빠가 떠난 이후, 집에서 밥을 먹을 때면 작은 삼촌은 가끔 뜬금없이 나에게 이런 정보를 흘리곤 했다.
“우리 집안에, 작은 외숙 아들이 지금 수원에서 검사를 한다더라”
“그리고 또 우리 먼 친척 중에 누구 아들은 어디서 판사를 하고”
가세가 기울어버린 집안, 이제는 자신이 무엇 하나 들어 올릴 수 없는 그 상황에서 작은 삼촌은 공부 꽤나 한다는 조카에게 그런 정보를 흘리고 짐짓 나의 반응을 살폈다. 작은 삼촌은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가세를 들어 올리는, 그리고 저 문장 속의 주인공이 본인과 내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저 문장을 써먹을 수 있기를 내심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런 내가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합격한 후, 서울로 향하던 날. 작은 삼촌은 기대에 찬 눈을 애써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나에게 한 마디를 건넸다.
“그래, 올라가서 잘하고”
잘하라니. 뭘 잘하라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잘함의 결과물이 어떤 것을 말하는지는 대충 알 수 있었다. 그에게 나는 이제는 초라해져 버린 자신에게 어쩌면 모든 것을 전복시킬 수 있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작은 삼촌은 그간 드라마에서 접했던 수많은 미장센과 나의 성장 스토리를 뒤섞어서 하나의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적고 있었던 걸까. 이를테면,
‘시골에서 힘들게 공부해 서울로 상경한 진우가 성공에 대한 야망을 품은 후 사법고시에 합격한다. 세상에 보란 듯이 자신을 증명한 진우는 고향에 있는 그의 가족에게 크나큰 자랑거리가 되고 이후 자신을 뒷바라지해 온 여인을 버린 후 중견기업 회장의 딸과 결혼을 하는데‘
만약, 작은 삼촌이 시나리오의 남자 주인공으로 나를 캐스팅한 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나는 그 배역에 어울리지 않는 실패한 캐스팅이었다. 물론, 내가 뒷바라지해 준 여자를 버릴 만큼의 쓰레기도 일단 아니긴 하지만서도 무엇보다 내가 상경 후 가장 힘을 쏟았던 것은 ‘또래처럼 평범하게 살기‘였기 때문이다.
서울의 햇볕은 뭐라도 다른 성분이 들어있는지 막 서울에 올라온 뒤로는 멍한 순간도 많이 잦아들던 터였다. 어릴 적부터 이미 평범하게 사는 게 실은 가장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후였기에, 나는 평범하게 보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게 ‘노력’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은 물살 위에 가만히 떠있는 오리가 실은 물 밑에서는 신나게 다리를 젓고 있는 걸 본 사람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하지 않은 내 상황을 동기들을 포함한 주변에 티 내지 않으려 애썼다. 그들이 나를 불쌍하게 볼 것이 두려워서였기보다는 그들이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불편해할 것을 두려워했다. 나는 오리가 되어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대부분의 활동에 참여했다. 이를테면 학생회 활동, 동아리 활동, MT 그리고 미팅 같은 것들 말이다. 그 속에서 나는 거창하지 않은 시간들을 보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평범한 자질을 길러갔다.
와중에 내가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 중 하나는 어릴 적 생긴 안 좋은 버릇, 말을 더듬는 버릇을 교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버릇을 교정하기 위해 자주 혼잣말을 되뇌곤 했다.
‘자, 충분히 생각하고 정리하고 말하자. 그리고 상대방 눈을 보고 말하고 필요하다면 표정과 손짓을 써도 된다고‘
가끔은 나의 이런 노력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점점 그럴싸한 오리의 구색을 갖추어갔고 나는 무리 속에서 겉돌지 않는 내가 좋았다. 물론, 백조들 틈에서는 여전히 그냥 못난 오리이긴 했지만.
신나게 다리를 저으며 대학교 신입생 생활을 이어가던 나는 추석이 되어 오랜만에 고향으로 내려왔다. 작은 삼촌은 자주 가는 단골 식당에 나를 데려가 지인들에게 조카를 자랑스레 소개했다.
“글쎄, 이놈이 공부를 그렇게 잘해가지고 지금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잖아. 우리 집 사람들이 원래 머리가 똑똑하긴 해. 이 놈 먼 사촌도 지금 판사잖아”
그런 삼촌을 보며 내가 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 그리고 어쩌면 세상이 나에게 준 ‘기회’를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일말의 죄책감이 밀려 들었다. 하지만 타고난 반골기질 때문인지 동시에 또 욱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왕래도 안 하는 먼 친척, 판사? 출세? 난 그런 거에 별 관심도 없다고. 차라리 나는 지금 다시 젊은이로 환생한 어떤 노인 같은 심정이라고‘
내가 여기서 말하는 노인은 당시 시사프로그램에서 봤던 한 노인을 말한다. 그는 사법고시를 30년 동안 준비해 왔고 이제는 다 늙어버린 자신을 돌이켜보며 카메라에 대고 한탄했다. 젊은 날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냥 평범하게 살 거라고.
어쩌면 이미 어릴 적 2번의 죽음을 경험해서인지 나의 내면은 종교인 혹은 그것과 결을 같이하는 어떤 부류를 닮아가고 있었다. 가끔은 이런 나의 내면이, 정신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보내는 매일의 소중함에 더욱 마음이 갔다.
신입생이던 그 해 겨울, 나는 전국 각지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고등학교 친구들과 재회해서 다 같이 내일로 기차여행을 떠났다. 총 7명의 여행, 그것은 어쩌면 어릴 적부터 미개봉 상태이던 나의 메모리카드를 언박싱하는 일이기도 했고 역시 자연스레 내 마음이 향하는 방향이기도 했다. 기차를 타고 새벽에 정동진에 도착해서는 한 친구가 말을 꺼냈다.
“여기가 가장 동쪽이라서 정동진이라는 뜻 이래. 그러니깐 여기에서는 우리나라에서 해를 가장 일찍 볼 수 있다고”
정동진(正東津),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 뜨는 것을 볼 수 있는 곳. 친구의 말을 듣다가 해를 가장 먼저 보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할까 하는 생각이 맴돌았다. 어차피 해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건데. 그러는 사이 바다는 해안선을 끊임없이 바꾸었고 점점 해가 차올랐다.
아무렴 어때. 친구들과 어깨동무하며 함께 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좋았다. 그날 우리는 함께 동쪽을 바라보며 단체사진을 찍었다. 그때 나는 드라마 주인공처럼 비니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빨간색이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그 순간, 권상우도 부럽지 않았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