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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띵뉴 Sep 24. 2024

열등감에 초조해지던 여름밤에 한 생각


에어컨 냉매를 충전한 밤. 그러나 예약이 꺼지고 새벽더위에 잠도 깼다. 요즘 소나기가 자주 내려서 불편한데 그때가 시원하긴 하다. 눈을 감고 여기저기 둥둥 떠다니는 생각을 잡아보다가 다른 사람은 잘 되고 나는 그렇지 못한 거 같을 때 느끼는 열등감과 불안 질투 초조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좋아하는 방울토마토랑 카랑코에로 비유하여 끄적여보려 한다. 먼저 둘은 다른 품종이다. 토마토는 6-7월에 꽃을 피우고 여름에 한창 열매를 맺는다. 잎꽂이가 안 되는 종이다. 꽃핀 자리에 금방 열매가 나와 꽃이 일찍 떨어진다. 물을 많이 필요로 한다. 그만큼 뿌리 성장이 강력하다. 빨간 열매는 탐스럽고 맛있다.


카랑코에는 특이하게도 여름이 아닌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운다. 밤이 더 길어질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꽃대가 올라온다. 꽃다발처럼 소복하니 몇 달씩을 피어있다. 열매가 열리진 않는다. 대신 잎을 흙 위에 던져놓으면 물 없이도 뿌리를 내린다. 스스로 머금은 수분이 있기 때문이다.


둘의 공통점을 뽑으라 한다면 강력한 뿌리를 가졌다는 것 하나 정도지 않을까. 자세히 보지 않으면 계절을 엇비슷하게 자라는 듯하다. 하지만 이렇게나 다른 성장조건을 필요로 한다. 각자의 생장주기대로 커가며 그 과정에서 다른 조건을 필요로 한다. 카랑코에 화분에 매일같이 물을 주면 뿌리가 썩어 시들어버린다. 방울토마토로 잎꽂이를 하겠다며 잎사귀를 뜯어낸다면 번식은커녕 양분조차 끌어올리지 못하고 앓다 죽을 것이다.


누군가는 제철에 열심히 열매 맺는 방울토마토고 누군가는 겨울이 되어야 꽃필 준비가 된 카랑코에다. 누군가는 100일간 명품꽃을 피우는 배롱나무고 누군가는 가시 속에 촉촉함을 머금은 선인장이다. 품종마다 존재마다 각자가 가진 고유한 법칙이 있다. 속도가 있다. 개화의 시기가 있다. 모두 다 다르다. 같은 품종 안에서조차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내가 열등감을 느낀 순간을 톺아본다. 누군가의 빛나는 순간을 마주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하고 얼굴이 굳어졌던, 스스로가 너무나 작게 느껴졌던 그 기억을. 그리고 생각을 바꾸어본다. 내가 철마다 다르게 피어나는 꽃을 보고 몹시도 기뻐하는 것처럼 누군가가 피워낸 개화의 아름다움을 누리고 감탄하면 되겠노라고. 나는 나의 성장조건을 공부하고 키워보면서 기쁘게 하루하루 잘 커가면 된다라고.


마음이 몹시도 고요해지는 유레카에 도달하게 되어 기쁠 따름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강한 뿌리를 가진 고유한 존재들이니. 각 존재들만의 개화 시기가 반드시 있으니 그러려니 하면서 불안을 잘 다스려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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