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시절 일기에 적힌 엄마에 대한 글들
스무 살 무렵에 쓴 일기를 읽어보았다.
그때의 나는 참 많이 아팠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토록 아팠을까.
절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지만 만약 그때의 나를 만나게 된다면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1)
나는 인생이 재미 없고 엄마는 인생이 힘들다.
내 인생이 재미없는 이유 중 하나는 엄마에게 있다.
엄마를 생각해서 도전하지도, 포기하지도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
죽음조차 엄마로 인해 저지당한다.
그래서 엄마로 인해 내 인생은 재미가 없다.
엄마의 인생이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나에게 있다.
딸인 나로 인해 엄마는 고되게 일해야 하고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
죽음조차 남겨질 이를 더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나로 인해 엄마는 인생이 힘이 든다.
그러나 나에게 엄마가 없다면 삶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엄마에게 내가 없다면 삶의 이유가 사라진다.
엄마와 나는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2)
내 인생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고 그렇게 된 이유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저주하기 시작했다. 내 실패한 인생의 원인이 적어도 내게 있다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당신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 모든 게 다 당신 탓이야.'
내가 흘릴 피가 두려워 끊임없이 엄마를 난도질했다.
어머니. 왜 날 낳으셨나요. 그리하여 왜 그 수많은 날들을 당신이 아닌 이유로 슬퍼하고 계신가요.
3)
한 개인의 아픔도 사회 구성원 모두가 분담해야 할 고통이라 생각하는 나로선 일상생활 하나하나가 슬픔으로 다가왔다. 젊은이다운 날 선 양심과 빈틈없는 감정은 자꾸 나를 피 흘리게 했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말씀하셨다.
내가 어릴 적, 그러니까 엄마가 지금보단 훨씬 젊었던 시절. 여느 부모와 같이 그녀도 내 자식이 착하고 바른 사람이기를, 다른 사람보다 특출나고 특별하기를 바라셨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엄마는 내 아이가 똑같은 상황에서도 덜 상처 받는 사람이기를, 다른 이들의 눈에 벗어나지 않는 그들과 같은 길을 비슷하게 걷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신다고 하셨다.
엄마의 당부처럼 조금은 현실에 발을 딛고, 조금은 이상에, 감정에, 양심에, 그리고 타인에 무뎌지기를 바라본다.
<내 아이를 위한 기도>
내 아이가 착하고 여린 사람이기보다는
같은 상황에서도 덜 상처 받는 무딘 사람이 되기를.
남들보다 앞 선 사람이기보다는
남들이 걸었던 길을 비슷하게 걷는 사람이 되기를.
바짝 선 감정에 괴로워하는 사람이기보다는
닳고 닳아 익숙해진 아픔만을 안고 가는 사람이기를.
나이 든 엄마는 훌쩍 큰 아이를 위해 기도한다.
4)
어린 시절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다는 창세기 말씀은 내겐 공포 그 자체였다.
어린 나는 엄마에게 재차 물었다.
"엄마. 만약에 하나님이 나를 제물로 바치라고 하면 엄마도 나를 죽일 거야?"
엄마는 하나님이 그러실 리 없다고 했다. 그래도 계속 조르자 엄마는 말씀하셨다.
"엄마가 그렇게까지 신앙이 있는 사람은 아니어서 그런지, 엄마는 너를 택할 거야."
그 말을 듣고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브라함의 이삭 번제 이야기는 내게 두려움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