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마음은 자신과 닮아있는 것들을 향해 기울어간다.
자신과 비슷한 성격의 이성에게 마음이 끌리기도 하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이야기를 접하고는 눈물 흘리기도 하며, 때로는 위로를 받기도 한다. 이 소설을 읽고 우리들의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는 이러한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김애란 작가의 《서른》에서의 ‘나’의 모습과 이야기는 지금까지의 사람들의 모습과도, 앞으로를 겪어갈 우리들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작가는 수많은 닮음을 형상화하여 비유적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그리 많지 않은 양의 온기를 이야기한다.
신사임당과 같은 훌륭한 아내이자 어머니가 되라는 의미를 지닌 사임당 독서실 속에서 보통이라는 기준을 닮아가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는 여성들의 삶의 한 장면을 보여주기도 하며, 합격해야 탈출할 수 있는 노량진을 섬에 빗대어 ‘노량도’라고 칭하며 이러한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형상화는 ‘나’가 서 있는 위치뿐만 아니라, ‘나’의 직접적인 생각과 행동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사람을 제일 큰 재산으로 빗대던 옛 애인의 말은 그대로 생각한다면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나’는 ‘선진국형 신개념 네트워크 마케팅’회사라 빗대어 말하는 다단계 회사에 들어가 사람을 팔며 자신에게 스르르 온기가 퍼지게 만들어주었던 아이까지 자신의 손으로 망가뜨리고 만다. 이처럼 살아가는데 필요한 그리 많지 않은 양의 온기는 말 그대로 그리 많지 않은 양을 필요로 하지만, 반대로는 너무나도 미약하여 쉬이 꺼져버리고 만다. 이러한 ‘나’는 자신이 아는 사람도, 자신을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 살고 싶다는 핑계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동네로 이사를 가지만 뚜레쥬르 마일리지 카드 그 네모난 칸에 ‘비석’처럼 적힌 ‘나’라는 존재와 그로 생긴 ‘옛날’은 사라지지 않고 끝까지 ‘나’를 옥죄어 주저하게 만든다.
우리의 삶과 닮아있는 이러한 이야기와 언어들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다. 우리가 닮아있는 것을 향해 기울어가는 이유는 어쩌면 닮아있는 것들을 찾기 너무나도 어려운 파편화된 세계 사이에서 느끼는 반가움일지도 모른다. 탈출할 수 없는 섬과도 같은 삶의 모습이, 사고파는 것과 같이 물질적으로 변해버린 인간관계도, 이야기 속의 비유를 보며 우리의 삶의 모습을 떠올리는 이유도 이러한 까닭일 것이다. 혹시 그렇지 않다면 닮아있는 것들을 보며 나 홀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만 같은 그 미약한 온기를 꺼뜨려버린 우리에게 그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 비단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는 위안을 얻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