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 이미 기록된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없다는 소리다. 우리는 종종 지금 내가 처해있는 상황이나 누군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만약 ~했으면", "만약 ~하지 않았더라면" 식의 가정문을 사용하곤 한다. 나는 역사에 만약은 없다는 구절을 읽으면서 우리는 왜 만약이라는 단어로 이미 기록된 역사를 변화시키고 싶은 것일지 생각을 해보니 그 생각의 기저에는 후회가 깔려 있었다.
이전의 잘못을 깨우치고 뉘우친다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후회를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바로 과거에 잘못을 저지르는 것, 그리고 그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과거에 잘못은 저질렀지만 인정을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당당하고 떳떳하지 굳이 후회를 하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른 뒤 인정을 해야만 후회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후회를 하는 과정에는 만약이라는 가정이 들어간다. 후회를 하기 위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잘못에 대해 복기를 하게 되는데, 우리는 이 과정에서 혹시 있을지도 모를 뜻밖의 경우를 생각하며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가정을 한다. 그리고 여기서 나타나는 '혹시 있을지 모를 뜻밖의 경우'가 바로 '만약'이다.
이렇게 놓고 생각해보면 '만약'과 '후회'는 서로가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단어들이 아닐까. '후회'하면서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고, 그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지 못한 것을 또 '후회'하는 아이러니함. '만약'은 '후회'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물론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아마 나는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쓴 것을 '후회'하면서도 '만약'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만약 나 말고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나는 후회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 본다면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후회하기 위해 만약을 가정할 거야"라고 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