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가는 할머니의 시간
할머니와의 통화는 늘 언성이 높아졌다.
80년 넘게 살면서 남들 다 가는
제주도 한번 못 가본 할머니를 생각하면
자꾸만 부화가 치민다.
그깟 제주도가 뭐라고,
휠체어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내가 알아서 다 모셔가고, 모셔올 텐데
할머니는 절대 고집을 꺾지 않았다.
4개월 전 허리 수술을 받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에 갇힌 할머니는
제주도 대신 베란다로 수시로 여행을 떠났다.
베란다 창문으로 얼굴만 빼꼼 내밀고는
가뭄에 콩 나듯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아마 허리를 다치기 전에도
할머니의 일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텅 빈 방 안에 가만히 앉아있다가
때가 되면 밥을 먹고,
해가지면 억지로 잠을 청했겠지.
엄마의 엄마,
엄마들은 왜 하나같이 다 짠할까.
그 긴 세월, 지지고 볶을 남편도 없이
오롯이 혼자 버텨낸 할머니를 떠올리면
얼굴도 기억 안 나는 할아버지가 미워진다.
할머니를 잊고 잘만 살아온 나는
염치도 없이 이제야 할머니를 그리워하고 있다.
"제주도는 허리 좀 괜찮아지면 내년에 가, 내년에"
"맨날 내년, 내년! 내년엔 뭐 안 아파?"
"제주도 말만 들어도 간 거나 다름없네~"
매번 '다음'으로 미룬 건 할머니가 아니라 나였다.
수십 년을 미뤄놓고는
고작 한번 미룬 할머니를 매섭게 나무라고 있다.
사실 비행기를 태워드리고 싶은 마음보다
비행기도 안 타보고 떠난 할머니를 떠올리면 슬플 것 같아서.
생각해 보니 결국 다 내 욕심이다.
오랜만에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 10월에는 무조건! 꼭! 제주도 가는 거야, 알았지?"
"가야지~ 그때까지 살아 있으면!"
핸드폰을 붙잡고 한참을 깔깔 웃으며 생각했다.
뛰어가는 할머니의 세월을 잠깐이라도 붙잡아 두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