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종이가방 컬렉션
엄마의 패션은 가방으로 완성된다. 명품백도 아닌 종이가방.
언제부터인가 천이나 가죽으로 된 가방은 엄마에겐 낯간지러운 물건이 되어버렸다.
“모셔야 되는 가방이 나한테 어울리기나 해?”
엄마에게는 종이가방 하나를 고를 때도 나름의 기준이 있다.
첫째, A4용지보다 살짝 크거나 작을 것
둘째, 색깔이나 무늬가 너무 튀지 않을 것
셋째, 코팅 처리가 되어 있을 것
이 세 가지만 충족된다면 가방에 ‘고추장 2kg’, ‘침대 매트리스 이벤트’ 같은 글씨가 대문짝만 하게 쓰여 있어도 노 프라블럼이다. 아니, 오히려 땡큐다. 그런 건 누구도 탐내지 않고, 아무도 안 훔쳐가는 안심 포인트로 작용하니까.
문제는 그 가방들이 엄마의 옷차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슬랙스에 하늘하늘 블라우스를 입고, 마무리로 가방을 드는데… 어딘가 2% 부족해 보이는 이유는 '기장떡'이라 적힌 종이가방 때문이었다.
“엄마, 그 가방은 진짜 아니야. 옷이랑 전혀 안 어울리잖아.”
“가방은 짐 들려고 있는 거지, 무슨 옷에 맞춰?”
엄마의 패션 철학은 단호하다. 그날의 코디에 어울리게 가방을 매치하는 건, 엄마에겐 '쓰잘 떼기 없는 짓'에 불과하다. 엄마는 실용성 없는 예쁨에는 관심조차 없다. 디자인, 브랜드, 시즌 한정? 엄마에게 가방은 '패션 아이템'이 아니라 '생존 장비'에 불과하다. 길 가다 갑자기 떨이로 파는 물건을 살 수도 있고, 누가 반찬 한 통을 준다 해도 즉시 수납 가능한 전투력 100%, 실용성 200% 생존 필수템!
가방을 바꾸는 시점도 확고하다. 종이가방 바닥이 너덜너덜해지거나 손잡이가 빠질 듯 흐느적거릴 때, 테이프를 붙여도 안 되겠다 싶을 때가 돼야 겨우 바꾼다.
K 장녀인 내 입장은? ‘딸이 돼서 엄마 가방 하나 안 사주냐’는 시선이 느껴져서 뒤통수가 자주 따갑다…
엄마는 매번 가방으로 내 속을 박박 긁는다. 근사한 핸드백 하나쯤은 받아줄 법도 한데, 늘 손사래를 치며 뒤로 빠진다. 가끔은 이게 고집인지, 사랑인지 헷갈릴 정도다.
“내가 하나 사줄 테니까, 제발 좀 버리면 안 돼?”
“됐어, 알뜰히 모아뒀다가 너 시집갈 때나 보태.”
아빠 말에 의하면 엄마는 소문난 멋쟁이였다. 아가씨 때 사진을 보면 솔직히 인정이다.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메이크업에 윤기 나는 파마머리, 반바지에 하이힐, 각 잡힌 핸드백까지! 패션 잡지 표지모델 그 자체다. 그 시절 엄마는 군산 바닥에서 제일가는 패셔니스타였다.
그런 엄마가 서울로 상경해 나를 낳고, 비좁은 단칸방에서 시작한 삶을 버티느라 가방을 포기했다. 엄마의 낡은 종이가방엔, 가족을 위한 40년의 희생과 사랑이 빽빽하게 담겨 있었다.
가방이 없는 것도 아니다. 몇 년 전 결혼식 가느라 큰맘 먹고 백화점에서 장만한 가방도 있다. 사서 딱 한 번 들고 모셔둔 65만 원짜리 나름 준명품 가방. 가방의 감가상각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65만 원을 옷장에 썩히고 있다. 엄마는 진심으로 명품백보다 종이가방이 좋다고 했다.
어느 정도 이해는 하지만, 내가 진짜 엄마가 되기 전까진 엄마의 가방 철학을 온전히 이해하긴 어려울 것 같다.
앞으로 엄마와 가방으로 싸우는 일은 그만둘 거다. 패션에는 안 맞지만, 엄마 마음에는 딱 맞는 가방을 사주자, 엄마가 그토록 애정하는 튼튼한 손잡이에 코팅된 종이가방.
163cm에 군살 하나 없는 늘씬한 몸매,
명품 가방 없이도 빛나는 62살 비주얼.
진정한 위너는 엄마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