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매 미용사의 고백
살다 보면 ‘이런 것쯤은 내 손으로 해결하지 뭐’로 시작했다가 피를 보는 경우가 꽤 있다. 최근 우리 집도 딱 그랬다. 모든 건 반려견 ‘꿍이’로부터 시작됐다.
“곰돌이 컷도 아닌데, 그냥 털 미는데 10만 원? 그 돈이면 내가 직접 하지!”
야심 차게 애견 미용 유튜브 10편 정주행, 다이소에서 3천 원짜리 미용 가위 겟, 마지막 미션은 꿍이 안심시키기. 꿍이는 닥쳐올 운명도 모른 채 쿨매트 위에 해맑게 앉아 있었다.
“꿍~ 너 머리 너무 길다~ 언니가 예쁘게 잘라줄게! 언니 완전 금손이야~”
일단 꿍이 시야에서 벗어난 엉덩이 쪽부터 공략. 그런데 첫 가위질과 동시에 꿍이의 평화는 산산조각 났다. 눈치 100단 꿍이는 가위 소리 몇 번에 철퍼덕 주저앉더니, 이내 몸을 휙 돌려버렸다. 결국 아빠가 포박 담당으로 긴급 투입! 이렇게 온 가족 협업 미용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아니, 유튜브에선 샥샥 잘리던데, 이거 왜 이래...?'
현실은 샥샥이 아니라 숭덩숭덩, 가위 자국이 고스란히 남은 누더기 스타일.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조금씩 더 자르다 보니 결국 쥐 파먹은 스타일이 됐다. 이건 내가 아니라... 다이소 가위 잘못이다. 가족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고, 꿍이는 그날 이후로 나를 ‘주인님’이 아닌 ‘주인 놈’의 눈빛으로 쳐다본다.
오른쪽 엉덩이를 끝내고 왼쪽을 자르려는 찰나 쌩- 도망. 행여 가위 트라우마라도 생길까 봐 쫓지 않았다. ‘비대칭 컷이 요즘 트렌드야~’라는 자기 합리화를 곁들여서.
그 사건(?)이 겨우 잊힐 즈음, 내 야매 미용 기술이 또 호출됐다. 이번 타깃은... 아빠였다.
“이번 주 결혼식 있거든? 새치 염색 좀 해줄래?”
우리 아빠는 머리카락보다 인격이 풍성한 분이다. 아빠 머리는... 뭐랄까... 위쪽 뚜껑은 휑, 주변머리만 남아서 염색 난이도 최하였다. 이번엔 자신 있게 거실 한가운데 염색살롱 오픈, 다이소표 5천 원짜리 염색약과 함께 시작됐다. 염색약을 조심스럽게 바르던 내 손길은 어느새 귀 뒤, 목덜미, 이마 라인까지 확장되었고... 결국 절대 넘지 말아야 할 정수리까지 영역을 넓혔다.
“두피가 시원한데? 살에 묻은 거 아니지?”
“아니? 나 지금 완전 전문가 수준으로 바르는 중인데?”
군데군데 염색약이 묻어 달마시안처럼 얼룩진 두피를 수습하려고 급히 물티슈로 닦아냈다. 그러자 마치 구두약을 칠한 듯, 정수리 절반이 검게 번들거렸다.
30분 뒤, 아빠는 ‘구두약을 머리에 바른 중년 신사’가 되어 거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괜찮아~ 금방 지워지겠지.” 라며 쿨한 척했지만, 표정은 전혀 안 괜찮았다. 가족들은 바닥을 구르며 웃었고, 그날 이후 아빠는 내게 염색에 ‘ㅇ’ 자도 꺼내지 않는다.
그 사건 이후, 우리 가족은 서로의 외모에 관여하지 않기로 평화 협정을 맺었다. 다만, 모두가 한 가지에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성의 가격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가끔은 생각한다. 절약하려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우리는 매번 그보다 더 소중한 걸 얻었다.
실패한 강아지 미용, 구두약(?) 신사가 된 아빠,
그리고 모두가 눈물 나게 웃었던 순간들.
그건 돈 주고도 못 사는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추억이다.
참고로 꿍이는 그날 이후 가위 소리만 나면 꼬리를 내렸고,
아빠는 구두약 머리가 숱이 많아 보인다며
지워지는 게 못내 아쉬운 눈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