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일하게 아끼지 않는 것

내 동생 후니에게

by 후니언니

벌써 세 번째 맞이하는 ‘후니’의 날이다.

평소보다 부지런히 일어나 모자를 대충 눌러쓰고, 마트로 향했다. 평소의 나라면 가격 비교가 우선이었겠지만, 오늘만큼은 후니가 좋아하는 걸 고르는 게 먼저였다.


마트 한 바퀴를 돌고 나니 장바구니는 금세 가득 찼다. 혹시라도 빠뜨린 게 있을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꼼꼼히 확인했다.


나에게 장보기란 ‘적당한 물건을 가성비 좋게 사는 일’이었지만, 후니와 관련된 물건들 앞에서는 그 공식이 통하지 않았다. 영수증이 길게 출력될 때, 내가 걱정한 건 돈이 아니라 혹시라도 빼먹은 게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만큼 후니는 내게 큰 존재였다.


양손 가득 장본 물건을 들고 돌아와 본격적으로 상차림을 시작했다. 이미 깨끗한 그릇을 다시 한번 더 닦고, 하나하나 정성스레 음식을 차렸다. 후니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야 하는데, 자꾸만 눈물이 났다. 눈치 없이 흐르는 눈물 탓에 눈두덩이는 빨갛게 달아올랐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나는 군침 대신 울음만 삼켰다.



<To. 내 동생 후니>


넌 참 이상한 얘였어. 다른 개들은 없어서 못 먹는다는 고기보다 채소랑 과일을 더 좋아했잖아. 상추랑 배추는 몸통보다 꼬다리를, 과일 껍질을 보면 침을 흘리던 너였지.


그리고 산책 중 우연히 주운 테니스공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했었어. 침으로 흠뻑 젖은 공이 마르길 기다리며, 인형을 흔들며 놀던 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


옆에 앉아 있으면 얼굴에 침이 튀는 건 일상이었고, 몇 번을 꿰매서 누더기가 된 인형 하나에도 예쁜 미소를 짓던 너. 가끔 다이소에서 산 인형을 등 뒤에 숨겼다가 ‘짠!’ 하고 내밀면, 너는 세상을 다 가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했어.


속상한 일을 잔뜩 안고 집에 오는 날이면, 너는 귀신같이 알아챘어. 침대 끝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다가와 킁킁- 축축한 코를 들이밀며 얼굴을 파묻었지.


필사적인 애교에 피식 한번 웃고 “공 가지고 놀까?” 한 마디에 너는 귀를 쫑긋 세우며 있는 힘껏 발을 굴러. 그럼 나는 괜히 또 기분이 좋아져서 공을 던지고, 너는 신나게 공을 물어와서 내 앞에 내려놔. 그렇게 열 번, 스무 번... 주고받다 보면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이 생겼어.


너랑 마주 앉아 맛있는 걸 나눠 먹던 게 제일 그리워. 내가 쩝쩝 소리를 내면 너는 드르렁 코를 골며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달려왔지. 침을 뚝뚝 흘리며 불쌍한 표정을 짓는 널 보면, 뭐든 안 줄 수가 없었어.


그래서였을까. 11살이 되던 해, 너는 눈이 자주 충혈되기 시작했어. 미루고 미루다가 겨우 데려간 병원에선 원인 불명이라는 진단을 내렸고, 그로부터 2년 뒤 넌 그렇게 좋아하던 공놀이를 할 수 없게 됐지.


한쪽 눈이 흐려지더니, 결국은 빛 한 줄기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 갇혀버렸어. 병원 한번 갈 때마다 수십만 원씩 깨지는 게 아까웠던 걸까. ‘고치기 어려울 것 같아요.’ 고작 그 한마디에 나는 너무 쉽게 포기해 버렸어. 이 세상에 의지할 곳이라곤 나뿐이었던 너를... 그땐 몰랐어. ‘차곡차곡 아껴서 다음에 더 좋은 거 해줄 거야.’ 라며 미뤘던 사랑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비겁한 거였는지.


너의 하루는 매일 캄캄한 밤이었어. 그럼에도 너는 밥그릇을 찾고, 패드를 찾아 기어이 움직였지. 매번 머리를 부딪쳐도 너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어. 그런 너를 두고 일을 가고, 친구를 만나고, 스트레스를 푼다는 핑계로 밖으로 나갔어. 그러다 우연히 미용실에서 눈을 치료한 강아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또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어.




벌써 너 없는 세 번째 여름이야. 나는 아직도 너를 떠올리면 미안함과 죄책감이 한꺼번에 몰려와 숨이 막혀. 가끔 거실에 우두커니 서서 눈을 감고, 허공에 양손을 더듬더듬 걷다가 금세 눈을 떠버려. 그 몇 초도 견디기 힘든 걸, 어떻게 버텼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넌 끝까지 아프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혹시라도 내가 힘들까 봐, 참아낸 거겠지. 급하게 병원에 데려갔던 그날, 그게 너의 마지막이 될 줄은 정말 몰랐어.


현충일 전날, 6월 5일. 우리 가족은 매년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속에서 너를 기다려. 네가 좋아하던 배추 꼬다리, 황태, 치즈, 쫀드기… 이렇게 맛있는 걸 먹지도 못하고 떠나버린 바보 같은 너를.





누가 그러더라. 먼저 떠난 반려견은 천국에서 주인을 기다린다고. 그런데 나, 정말 네가 있는 천국에 갈 수 있을까? 만약 운이 좋아서 그곳에 닿게 된다면, 하나만 부탁할게.


나는 잠시 잊고, 친구들이랑 신나게 뛰어놀아 줘. 그러다 언니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때 마중 나와줘. 다시 만나면 그동안 못해준 거 열 배, 백 배, 천 배로 해줄게. 끝까지 너의 언니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세상에서 제일 다정했던 널, 대 잊지 않을게.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 후니야!


keyword
이전 09화우리 집은 셀프가 기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