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프로 심폐소생

고쳐 쓰는 빌라, 감고 사는 가족

by 후니언니


<우리 빌라에 의사가 산다>


우리 가족은 물건 살리기 명의들이다.

사람을 살릴 땐 CPR이 필요하지만, 죽어가는 물건을 살릴 땐 테이프면 충분하다. 우리 라는 생사를 오가는 물건들의 병원 겸 작업장이며, 때때로 수술실이 되기도 한다.



가장 많은 재수술 경력을 가진 환자는 막대 걸레다. 아침저녁으로 바닥을 닦아대는 엄마 덕에, 막대 걸레의 관절은 ‘툭’ 소리를 자주 냈다. 그때마다 엄마는 메스 대신 테이프를 뜯어, 빠르게 다섯 바퀴를 감는다.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접착력을 극대화하는 치밀함까지! 그 모습은 마치 베테랑 외과 의사 같다.


연이은 수술에 지친 엄마를 위해 큰맘 먹고 30만 원짜리 전동물걸레를 선물했지만, 엄마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미지근했다.


"바닥은 힘줘서 박박 닦아야 속이 후련한데, 이건 닦는 맛이 안 나."


고가의 전동물걸레는 창고로, 노란 테이프 칭칭 감긴 막대 걸레는 다시 최전선으로 복귀했다. 이쯤 되면 테이프가 붙은 게 아니라 ''이 붙은 것 같다.


갈수록 일취월장 하는 수술 실력



<테이프로 골든타임을 사수하라!>


아빠에게도 분신 같은 환자가 있다. 성은 선, 이름은 풍기. 여름만 되면 거실에서 방으로, 방에서 다시 거실로 끌려다니다가 결국 목이 댕강- 다행히 전선은 붙어 있었다. 선풍기 수술은 보조까지 필요한 큰 수술이었다. 팔힘 좋은 내가 선풍기 머리를 몸통에 맞춰 들고 있으면, 아빠는 테이프 정밀한 봉합 수술을 진행했다.


"전선 연결해."


긴장되는 마음으로 버튼을 누르자, 한번 덜커덩하더니 기적처럼 숨을 내었다. 그날 이후 아빠는 '선풍기 수술 전문' 명의 등극했다.


테이프 수술로 선풍기 수명 10년 연장


나와 동생 역시 아빠 엄마를 닮아 수술 경력이 화려하다. 단선된 충전기 선, 리모컨, 샤워기, 우산 등등 테이프 하나면 빠르고, 확실한 심폐소생이 가능하다. 이쯤 되면 '가족력'이라 불러도 될 재주다.


연결이 살짝 엉성하고, 조심히 써야 하지만 여전히 제 역할을 해내는 물건들. 그 안엔 우리 가족이 살고, 아끼고, 고쳐온 시간이 켜켜이 묻어 있다.



<미워할 수 없는 애착 빌라>


주변 사람들은 종종 혀를 다.

"그렇게까지 해서 쓴다고? 그냥 새로 하나 사!"


음… 말하자면, 이건 단순히 ‘재활용’이 아니라 ‘재애착’에 가깝다. 새것을 사들이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안다. 고장 나고, 닳고, 자꾸만 틀어지는 물건들. 그런데 이상하게… 미워할 수가 없다. 처음 샀을 때의 든든함을 떠올리면, '그동안 많이 고생했겠구나' 싶어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우리는 함부로 버리지 못한다.

빌라도 테이프로 고치기 가능한가요?


우리 빌라도 그렇다.

곳곳이 삐걱거리고, 벽엔 미세한 금이 가 있지만 우리는 그걸 보고 “이 집도 나이 들었네.” 하며 웃는다.


우리 가족은 이 빌라를 몰래, 꾸준히 고쳐 쓰고 있다. 우리에게 빌라는 그냥 집이 아니라, 우리가 붙잡고 있는 삶 그 자체니까. 언젠가 진짜 무너질 날이 오더라도, 익숙하게 말할 것이다.


“테이프 디 뒀더라?”




우리는 언제든 테이프를 꺼낼 준비가 되어있다.

각을 맞추고, 테이프를 칭칭 감아 다시 붙일 것이다.

우리 빌라도, 가족도- 테이프로라도 오래오래 함께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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