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컴퓨팅 기술의 양자 도약을 기원하며
근래 IT와 관련해 주식 시장에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핫 키워드로 AI와 양자 컴퓨터를 들 수 있다.
나는 AI라고 하면 학부 시절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교내 공학관 건물의 복도 풍경이 종종 떠오른다. 캠퍼스의 북동쪽에 위치한 공학관은 디귿자 모양이었다. 건물 앞 도로와 면한 바깥쪽 강의실에는 주로 저학년을 위한 전공 수업이 열렸는데 덕분에 그쪽 복도는 새로운 환경과 서로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청춘들이 모여 왁자지껄하고 활기찬 거리를 만들어냈다.
반면 코너를 돌면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교수실과 연구실이 번갈아 늘어선 그곳은 1년 365일 조용했고, 어딘지 모르게 춥고 쓸쓸한 기운이 맴돌았다. 코너 반대쪽에서 화산 같이 터져 나오는 청춘의 뜨거운 에너지를 차가운 이성으로 단숨에 식혀버리는 깊은 심연 같은 공간이었다.
그 복도에서 유독 춥고 쓸쓸해 보이는 곳에 ‘인공 지능’ 연구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해당 분야를 지금은 한국에서도 ‘AI’라는 영어 약자로 많이 지칭하지만 당시에는 ‘인공 지능’이라고 한국어로 풀어서 많이 지칭했다.
지금이야 그 어느 분야보다 뜨거운 분야이지만 당시에는 지금 같지 않았다. 동트기 직전이라 그랬을까. 한창 노는 것에만 관심 많았던 시기였기에 당시 내 정보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겠으나 학교에서도, 언론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인공 지능 관련 이야기를 듣기는 어려웠다. 알고리즘 수업의 리포트를 제출하러 인공 지능 연구실 앞에 갔을 때 아는 것은 없고 혈기만 가득한 학부생의 눈에 그 안의 사람들은 평생 전진해도 가닿을 수 없는 신기루를 쫓는 사람들로 보였다. 앞으로의 전망이나 발전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아예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분야라고 생각했으며, 미래가 없는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인공 지능이라니. 조건문과 반복문만으로 도대체 어떻게 ‘지능’을 만들어 낸다는 것인가. 끝도 없이 긴 코드로 흉내라도 내려는 것인가. 그렇게 만들어 낸 것을 과연 ‘지능’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후 채 10년이 지나기도 전에 알파고가 이세돌을 격파했고, AI는 우리 생활 곳곳으로 순식간에 스며들었다.
최근에 아래 글을 읽었다.
https://techblog.lycorp.co.jp/ko/pqc-to-protect-data-in-the-age-of-quantum-computers
PQC는 Post-Quantum Cryptography의 약자다. 양자 시대 이후의 암호(학). 위 글을 짧게 요약하면 양자 컴퓨터가 향후 현대 암호 시스템을 어떻게 위협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세계 곳곳에서 어떤 대비를 하고 있고, 이에 맞춰 우리도 암호 기술을 단계적으로 PQC로 전환해야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동안 드문드문 양자 컴퓨터 관련 소식을 뉴스 기사로 접하면서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에 대항하기 위한 기술까지도 이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문득 양자 컴퓨터 기술이 진지하게 다가왔다. AI처럼 어느 순간 ‘양자 도약’하면서 부흥의 길로 올라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양자 역학이란 게 무엇인지 최소한 개념 정도는 알아놓아야 할 것 같아서 서점에서 몇 권을 들춰본 끝에 이 책을 골랐다. TV 출연 경력이 있으신 분이라서 그런가 물리학자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연예인 같이 과즙 터지는 표정을 짓고 계신다. 에너지를 흡수해 들뜬 상태이신 것 같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291201
책은 입문서답다. 저자는 학창 시절을 적당히 성실하게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쉽고 친절하게 양자 역학의 기본 개념을 설명해 준다. 학부 시절 수학과 물리학을 피해 생물과 화학으로 교양 필수 학점을 채웠던 나도 다소 숨은 벅찼지만 따라갈 수 있었다.
전자는 입자이자 파동이다.
이 책은 이 문장을 증명하기 위한 300여 페이지에 걸친 여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양자 역학에 큰 공헌을 한 과학자들과 그들의 주요 발견 및 실험 결과를 소개하면서 그들이 왜 전자는 입자이자 파동이라고 선언하게 됐는지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측정과 중첩, 결어긋남, 양자 도약, 얽힘, 다세계 등 양자 역학에서 사용하는 주요 개념을 소개한다. 각 개념이 무엇인지, 이런 개념을 정의하게 된 발견이나 실험, 과학자들 간의 논쟁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거시 세계의 역학과는 다른 양자 역학의 특성을 알아본다. 또한 이와 같은 양자 역학의 특성이 거시 세계인 인간의 실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고, 앞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짧게 살펴본다.
이 책을 읽을 때는 리처드 파인만의 다음 말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양자 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안전하게 말할 수 있다.
또한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이 죽을 때까지 양자 역학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함께 알아두면 좋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의 상식을 기준으로 하나 하나 이해하면서 스스로를 납득시키려고 들면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저자는 양자 역학을 개척한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 역시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실험을 통해서 양자의 특성을 부분 부분 알아내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실제 양자 우주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측정을 통해 얻은 정보뿐이다. 우주에 실체나 본질은 없다. 질문과 답, 측정과 정보만이 있을 뿐이다.
…
원자는 실제 어떻게 운동하고 있는 걸까? … 에너지가 띄엄띄엄하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하나의 에너지에서 다른 에너지로 에너지가 변할 때 중간 단계 없이 변한다는 말인가?
양자 역학은 이런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익숙한 거시 세계의 관점에서 책에서 소개하는 모든 개념을 하나로 묶어 전체를 관통하는 원칙을 만들어 내 그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원자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책을 읽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신 각 특성을 개별적으로 하나씩 암기하듯 살펴보고 넘어가야 했다.
전체를 아우르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각 개념 자체는 어렵지 않다. 과학자들이 실험을 통해 해당 현상을 관찰한 뒤 그 결과를 토대로 수식을 도출하고 증명하는 과정은 어려웠을지언정 각 개념의 개별적 의미를 표면적 수준으로 파악하는 것은 문외한도 할 수 있다. 참고로 대부분의 개념은 그 유명한 전자의 이중 슬릿 실험의 과정과 결과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도출되기 때문에 책을 읽기 전에 전자의 이중 슬릿 실험이 무엇인지는 한 번 알아두면 좋다.
먼저 ‘측정’. 측정이라는 단어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다. 다만 양자 세계에서의 측정은 거시 세계에서 측정과는 다른 특징이 하나 있다. 바로 측정이라는 행위가 대상의 운동량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
저자는 ‘본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본다는 것은 대상에 빛이 부딪혀 반사하여 내 눈에 들어온 것을 말한다. 원자가 텅 비어 있지만 빛이 투과하지 못하고 튕겨 나온다면 적어도 내 눈에는 빛을 튕겨 낸 뭔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대상에 빛이 부딪혀’라는 부분이 포인트다. 거시 세계에서는 빛의 부딪힘이 운동량에 끼치는 영향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영향이 너무 미미하기 때문이다. 올림픽 육상 종목에서 빛을 등지고 달렸다고 부정행위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없이 작아진 양자 세게에서는 빛의 부딪힘이 대상의 운동량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빛의 부딪힘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작은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우리는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를 하이젠베르크 불확정성 원리라고 한다.
빛은 파동이다. 위치가 불확실하다. 이때 불확실성의 크기는 대략 사용한 파동의 파장 정도가 된다. 파장은 파동이 공간적으로 한 번 반복되는 거리다. 또한 입자이기 때문에 빛과 부딪힐 때 물체는 충격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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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면 짧은 파장의 빛을 사용해야 한다. 위치의 부정확도가 파장의 크기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파장이 짧아지면 광양자 이론에 따라 빛의 운동량이 커진다는 사실이다. 빛의 운동량이 커지면 빛과 충돌하는 전자가 받는 충격도 커진다. 따라서 전자의 운동량에 큰 변화가 생긴다. 결국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기는 불가능하다. 위치가 정확해지면 운동량이 불확실해지고 운동량이 정확하려면 위치가 부정확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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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로 측정해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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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 때문에 ‘원리적으로’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다. 측정은 반드시 교란을 수반할 뿐 아니라, 위치나 운동량의 오차 중 한쪽을 줄이는 것이 다른 쪽을 늘리게 된다. 이것을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라 부른다. 본질적으로 완벽한 측정은 존재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불가지론은 측정에 담긴 자연의 본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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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절대로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면 전자의 운동을 확률로 기술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을 때 국립국어원에서 정의한 다음 ‘측정’의 정의에 갇혀 책을 읽으면 내용을 이해하기가 한층 어려워진다.
일정한 양을 기준으로 하여 같은 종류의 다른 양의 크기를 잼. 기계나 장치를 사용하여 재기도 한다.
헤아려 결정함.
측정의 의미를 양자 역학에 맞춰 확장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국립국어원의 정의는 은연중에 측정의 주체를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 말하는 측정의 주체는 우주 전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빛이나 전자가 부딪히는 것 또한 측정이다. 대상을 측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대상을 둘러싼 환경 전체, 우주 전체다. 이 책을 읽을 때는 측정을 이런 개념으로 생각해야 한다.
다음으로 중첩. 중첩은 말 그대로 여러 상태가 동시에 중첩해서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전자는 측정하면 입자처럼 행동하지만 측정하지 않으면 파동처럼 행동한다. 측정 전에는 중첩 상태에 있지만 측정하면 하나의 분명한 실재적 상황으로 붕괴된다(여기서 붕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이 현상을 과학자들이 ‘파동 함수의 붕괴’라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중 슬릿 실험의 결과를 살펴보면, 전자는 측정하지 않는다면 파동의 특성을 띄고 두 개의 슬릿을 동시에 통과한다. 즉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한다. 이 실험에서 슬릿을 두 개만 만들었기 때문에 두 곳이라고 한 것이다. 실제로 전자는 확률적으로 위치할 수 있는 모든 곳에 동시에 중첩해서 존재한다.
화학 시간에 배운 공유 결합, 도체에 전류가 흐르는 것 등이 바로 이 중첩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또한 양자 컴퓨터가 일반 컴퓨터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연산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중첩 때문이다.
중첩은 문외한이 양자 역학을 공부할 때 부딪치는 가장 큰 장애물이 아닐까 싶다. 거시 세계의 상식에서는 그 무엇도 중첩해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야기가 바로 이 중첩 상태와 관련이 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슈뢰딩거는 양자 역학에 중첩 상태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이 사고 실험을 고안했다. 슈뢰딩거는 머릿속에서 몇 가지 장치를 이용해 양자의 세계와 거시 세계의 고양이를 연결했다. 이를 통해 만약 양자 역학의 중첩 상태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고양이 역시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을 수 있는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하지만 현실의 고양이는 실제로 그런 중첩 상태에 놓일 수 없기 때문에 중첩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위 실험에는 논리적 허점이 없고, 실제 실험 결과를 살펴보면 양자 역학의 세계에는 중첩이 존재하며, 현실 세계에서 고양이는 죽어 있으면서 동시에 살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 문장이 모두 참이기 때문에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결어긋남(decoherence) 이론과 코펜하겐 해석 및 다세계(many-world) 해석이다.
먼저 결어긋남이란 파동의 결이 잘 맞지 않아 이중 슬릿 실험에서 간섭무늬가 나타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앞서 전자를 측정하면 전자는 파동이 아니라 입자처럼 행동한다고 했다. 측정하면 결이 어긋나는 것이다.
여기서 측정이란 앞서 말했듯 우주 전체의 측정이다. 저자는 이론적으로 ‘당신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결어긋남을 막을 수만 있다면 당신도 2개의 문을 동시에 지날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저자의 다음 조건을 살펴보면 거시 세계에서 결어긋남을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숨도 쉬지 말아야 하고, 단 하나의 공기 분자와 부딪쳐도 안 되며, 심지어 빛과 부딪쳐도 안 된다. 당신 몸을 이루는 단 하나의 원자라도 외부에 떨어뜨리면 안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사실상 너무 어려워서 우리는 양자 역학적으로 행동할 수 없는 것이다.
즉 결이 어긋나지 않는다면 측정하기 전까지 고양이는 살아 있으면서 죽어 있는 중첩 상태에 놓이고, 측정하는 순간 어느 한쪽으로 붕괴된다는 것이다(사실 지금 독서록을 쓰면서도 어떻게 그런 상태가 가능한지 이해할 수 없다).
이 결어긋남이 현재 양자 컴퓨터의 상용화를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한다.
양자 컴퓨터의 핵심은 중첩을 이용해 하나의 비트가 동시에 0과 1을 가질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중첩을 이용한 비트를 퀀텀 비트, 줄여서 큐비트라고 부르는데 당연하게도 큐비트가 중첩을 유지하려면 결어긋남을 막아야 한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결어긋남을 막으려면 측정되지 않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 측정이란 게 원자 하나만 부딪혀도 발생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막는 게 쉽지 않다. 이에 양자 실험은 결어긋남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진공 또는 섭씨 -270도 정도의 극저온 환경에서 수행한다. 이 때문에 양자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서 냉각이나 초고진공 기술이 필요한 것이며, 결어긋남을 막으면서 큐비트 수를 늘리는 게 어려운 것이다.
지금까지의 설명이 코펜하겐 해석을 따른 설명이다. 위키피디아 설명에 따르면 현재 학계에서는 코펜하겐 해석을 지지하는 사람이 가장 많으며, 두 번째가 다세계 해석이라고 한다. 저자 역시 책에서 자신은 코펜하겐 해석을 지지한다고 밝혔고, 이에 따라 양자 역학의 특성을 설명할 때 코펜하겐 해석을 따른다.
코펜하겐 해석과 다세계 해석의 차이를 알기 위해서는 파동 함수 붕괴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파동 함수라는 이름도 어려워 보이는데 그게 심지어 붕괴된다니… 이 무시무시한 개념을 나는 안타깝게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사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필요가 없는 개념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파동 함수의 붕괴’를 인정하느냐 아니냐가 코펜하겐 해석과 다세계 해석을 가르는 주요 기준이라는 것이다.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파동 함수의 붕괴를 인정한다.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측정이 어떻게 수행되는지, 측정이 왜 혹은 어떻게 중첩된 상태를 붕괴시키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측정해 보니 그렇더라’라고 하면서 거기에 ‘파동 함수의 붕괴’라는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이다. 이제 익숙하겠지만 여기에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설명 같은 것은 없다. 그냥 측정하면 그렇게 된다고 한다.
여기서 다세계 해석 설명으로 들어가기 전에 하나 알고 가야 할 개념이 ‘유니타리 진행’이다.
양자 역학의 표준 해석인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운동을 두 단계로 나누어 기술한다. 유니타리(unitary) 진행과 측정이다.
유니타리 진행이란 물체가 양자 역학이 허용하는 이상한 상태를 모두 가지며 운동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의 전자가 동시에 2개의 구멍을 지나가는 것이 그 좋은 예다. 양자 중첩이라 불리는 기괴한 상태다. 이제 전자가 3개의 구멍을 지나면 2개의 구멍을 지나는 경우에 3개의 구멍을 지나는 경우까지 합쳐져 모두 6개의 가능한 상태가 중첩된다. 유니타리 진행 과정에서는 이런 식으로 자꾸 중첩이 늘어날 수 있다. 물론 처음에 있던 중첩이 그냥 유지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과정은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완벽하게 기술된다.
이어서 다세계 해석을 살펴보자. 다세계 해석 역시 중첩까지는, 즉 유니타리 진행까지는 코펜하겐 해석과 동일하게 전개된다. 그런데 측정이 수행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설명하는 방식에서 코펜하겐 해석과 갈라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세계 해석에는 측정이 없다. 유니타리 진행만 있다. 다세계 해석은 파동 함수의 붕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중첩된 상태가 하나로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측정하는 순간 우주가 나뉜다고 설명한다(이쯤 되면 내가 물리학 교양서를 읽는 것인지 SF 소설을 읽는 것인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른다). 이중 슬릿 실험을 생각해 보자. 다세계 해석에 따르면 측정하는 순간 전자가 두 구멍 중 어느 한쪽만 지나간 것이 아니다. 전자는 여전히 두 구멍을 모두 지나간다. 단지 측정하는 순간 우주가 나뉜 것이다. 전자가 오른쪽으로 가고 그것을 본 관측자가 있고, 전자가 왼쪽으로 가고 그것을 본 관측자가 있다.
다세계 해석에 따르면 관측자의 몸도 모두 원자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양자 역학의 지배를 받는다. 전자가 두 개의 구멍을 지날 때 유니타리 진행을 고려하면 관측자까지 포함된 중첩 상태가 형성되며, 측정하는 순간 우주가 둘로 나뉘는 것이다. 붕괴니 확률이니 하는 따위는 모두 관측자라는 부수적인 존재가 자신의 양자 상태를 이해하려고 할 때 생기는 허상 같은 것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얽힘이라는 개념이 있다. 얽힘은 한 입자의 상태가 다른 입자의 상태를 결정하는 관계를 말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두 입자는 어느 한쪽을 측정하기 전까지는 상태가 결정돼 있지 않으며, 어느 한쪽을 측정해 상태를 결정하는 순간 다른 한쪽이 그 결정에 상응하는 다른 상태로 결정되고, 이 관계는 두 입자가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도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 얽힘과 관련해서는 아인슈타인, 포돌스키, 로젠이 함께 작성한 ‘물리적 실재에 대한 양자물리학적 기술은 완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논문이 얽혀있다. 이 논문은 세 사람의 이름의 앞글자를 따서 EPR 논문이라고도 하며, 사고 실험을 통해 양자 역학 이론에 모순이 있다고 주장하고, 이 때문에 양자 역학은 불완전한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사고 실험을 보기 전에 이 논문에서 정의하는 ‘실재’와 이에 대응하는 양자 역학의 설명을 비교해 보는 것이 좋다. EPR 논문에서는 ‘대상을 교란하지 않고 물리량을 확실히 예측할 수 있다면 이 물리량에 대응하는 물리적 실재의 요소가 존재한다’고 정의한다. 반면 앞서 살펴봤듯 양자 역학에서는 ‘측정하기 전까지 대상은 확률적으로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참고로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은 ‘확률적으로 존재한다’는 코펜하겐 해석 측의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주장의 요지는 대상이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양자 역학에 아직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숨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며, 이 변수를 파악하면 더 이상 ‘확률적 존재’ 같은 것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차이를 염두에 두고 EPR 논문에서 세 사람이 얽힘을 이용해 진행한 사고 실험을 살펴보자. 정확히 말하면 아래는 저자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단순화/간략화한 실험이다.
상자 안에 서로 얽혀 있는 빨간색 알약과 파란색 알약이 있다. 어떤 색인지 보지 않은 채로 알약 하나를 꺼내 빛의 속도로 4년 걸리는 센타우루스 알파별로 가서 알약을 확인한다. 관측은 지구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지구에 남은 알약의 색깔을 확실히 알 수 있다. … 색깔 대신 위치와 운동량을 사용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두 알약이 같은 속도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멀어진다면 센타우루스 자리 알파별에 도착한 순간 다른 알약의 위치는 측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상황에서 지구에 있는 알약의 색깔은 언제 실재가 되는가? 만약 센타우루스자리 알파별에서 파란색이라고 알게 되는 순간이라면, 정보는 빛의 속도보다 빨리 전달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다 정확한 실험 내용을 알고 싶다면 곽영직 수원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님이 NAVER 지식백과에 올려놓은 EPR 패러독스의 설명을 보거나 위키백과의 EPR 역설 페이지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단순화한 위 설명을 읽고 다시 두 설명을 읽으면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다음과 같은 사고 실험을 통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위배되는 상황도 제시한다.
서로 얽혀 있는 두 입자 A, B가 있고, 이 입자에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둘 다 한 번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는 두 수치 x와 y(예를 들어 위치와 운동량)가 있다고 가정한다. 두 입자를 1광년 거리로 떨어트리고 A입자의 x를 측정한다. 측정이 완료되면 두 입자는 얽혀 있으므로 B의 x값도 알 수 있다. 어떤 영향의 전달도 빛의 속력보다 빠를 수 없으므로 1년이 지나기 전까지는 A를 측정한 것이 B입자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 이어서 B의 y을 측정한다. 그러면 A의 y값을 알 수 있다. 이제 이 두 정보를 교환하면, 하이젠베르크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둘 다 한꺼번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는 물리량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위 모순을 해결하려면 다음 둘 중 하나가 성립해야 한다고 한다(참고로 나는 아직 양자 얽힘이 비국소적이라는 것이 어떻게 하이젠베르크 불확정성 원리가 위배되는 상황을 해결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양자 역학에는 아직 파악하지 못한 숨은 변수가 있고, 이 변수에 따라 실재는 측정하기 전에 이미 결정돼 있다(숨은 변수 이론).
양자 얽힘은 비국소적이다.
당시 코펜하겐 해석 지지자들은 아인슈타인의 이 문제 제기에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이 문제는 1964년 유럽 입자 물리학 연구소(CERN)의 이론 물리학자였던 존 벨이라는 사람이 ‘벨의 부등식’이라는 것을 제안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고 한다.
이 부등식은 ‘EPR이 가정한 입자 쌍이 양자 역학 이론을 따르지 않는다면 실험적으로 만족해야 할 부등식’이라고 한다. 즉 실험을 통해 벨 부등식이 위배된다는 것을 증명하면 양자 역학에는 숨은 변수 같은 것은 없으며 입자의 얽힘은 비국소적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라고 한다.
1969년 미국의 실험물리학자 존 클라우저가 칼슘 원자를 활용해 광자성 실험을 진행해 입자 쌍이 이 부등식을 위배한다는 것을 최초로 밝혀냈고, 이후 여러 과학자와 연구팀이 이전 실험의 허점을 보완해 새로운 실험을 진행해서 다시금 벨의 부등식이 위배됨을, 즉 아인슈타인이 틀렸고 양자 역학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한다. 2022년에는 이 실험에 성공한 알랭 아스페, 존 프랜시스 클라우저, 안톤 차일링거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음으로 양자 도약이라는 개념이 있다. Quantum이라는 단어는 띄엄띄엄한 양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온 단어라고 한다. 처음부터 이름 자체에 도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내포돼 있는 것이다.
양자가 왜 도약하는지 이해하려면 ‘정상 상태’라는 개념과 함께 살펴봐야 한다.
정상 상태 - 전자가 가속 운동을 하면 빛(전자기파)을 방출하고 에너지를 잃어야 하지만, 원자핵 주위의 전자는 가속 운동인 원운동을 하지만 빛을 방출하지 않는다. 이를 정상 상태라고 한다.
전자의 정상 상태는 불연속적이다. 원운동 궤도가 띄엄띄엄하게 존재한다. 전자는 오직 정상 상태의 궤도에만 존재할 수 있다. 이웃한 두 궤도를 넘나들 때 그 사이의 공간을 거치지 않고 궤도를 변경한다는 의미다. 이를 양자 도약(quantum jump)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궤도라고 해서 마치 달이 지구 주위를 돌듯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한다. 모든 것은 확률로 생각해야 하며, 궤도가 아니라 확률 분포 구름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한다.
하이젠베르크는 전자 궤도의 기술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전자는 어디에 있는가? 이것 역시 좋은 질문은 아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전자의 상태뿐이다. 바로 보어가 말한 정상 상태 말이다.
정상 상태와 관련해서 다음 사실도 알아두면 좋다.
전자가 하나의 정상 상태에서 다른 정상 상태로 이동하면 에너지가 달라진다. 에너지 보존 법칙에 따라 이 에너지 차이만큼의 에너지가 입력되거나 출력돼야 한다. 원자가 빛을 흡수/방출하는 것은 정확히 이 때문이다.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면 수소 원자에서 전자가 가질 수 있는 에너지들을 얻을 수 있다. 에너지는 양자 역학에서 특별한 물리량이다. 양자 역학이니까 에너지는 불연속적이다. 띄엄띄엄한 에너지 하나하나에 상태가 대응된다. 띄엄띄엄하지만 상태는 무한히 많다. 어느 상태에 있는지 알려면 측정을 해야 한다.
다음으로 대응 원리와 카오스. 카오스는 이 책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아직도 카오스가 무엇인지 명확히 잘 모르겠다. 예측할 수 없는 아주 복잡한 것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감만 있을 뿐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카오스는 양자 역학에서 사용하는 개념이 아니라 거시 세계의 고전 역학에서 사용하는 개념이다. 이 개념이 양자 역학 책에 나오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양자 역학을 거시 세계에 적용했을 때 고전 역학으로 환원된다는 것을 대응 원리(correspondence principle)라고 한다. 대응 원리에 따르면 양자 역학은 고전 역학을 포함하는 더 일반적인 이론이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고전 역학의 모든 것을 양자 역학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카오스가 고전 역학에만 존재하고 양자 역학에는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카오스는 초기 조건에 민감한 계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비 효과’를 떠올리면 된다. 카오스의 특징으로는 비선형과 프랙털 구조를 들 수 있다고 한다. 비선형은 말 그대로 선형적이지 않다는 것이고, 프랙털 구조란 아무리 확대해도 자신의 모습이 반복되는 기하학적 구조를 말한다(예: 망델브로 집합).
먼저 비선형과 관련해서, 양자 역학은 그 자체로 선형적이기 때문에 절대로 카오스가 발생할 수 없다고 한다. 애초에 양자 역학을 기술한 슈뢰딩거의 방정식은 선형 미분 방정식이며, 하이젠베르크의 양자 역학 역시 행렬 역학이기 때문에 양자 역학의 눈으로는 비선형 현상을 볼 수 없다고 한다.
다음으로 양자 역학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프랙털 구조를 볼 수 없다고 한다.
양자 역학에서는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아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때문이다. 이 원리에 따르면 위치와 운동량의 부정확도의 곱이 플랑크 상수 정도보다 커야 한다. 양자 역학은 위상 공간에서 플랑크 상수의 크기까지만 확대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이야기다. 즉 작아질 수 있는 크기에 근본적인 제약이 있다. 프랙털은 무한히 확대될 수 있음을 전제하므로 무한히 자은 크기를 가정하고 있다. 따라서 애초부터 양자 역학에 프랙털이 설 자리는 없다.
마지막으로 정보 엔트로피라는 개념이 나온다. 여기서 엔트로피란 열역학에 나오는 엔트로피와 같은 의미로, ‘가역 과정에서는 변하지 않고 비가역 과정에서 증가하는 물리량’를 말한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엔트로피는 결코 줄지 않는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정보 엔트로피에 따라 정보를 일로 바꿀 수 있으며, 추상적 개념이라고 생각했던 정보가 물리학의 대상이 된다. 또한 이 개념을 확장하면 ‘우주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정보’가 그 답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시된다. it from bit. 굉장히 흥미로운 개념이었다.
정보 엔트로피는 1948년 미국의 수학자이자 전기 공학자인 클로드 섀넌이 제안한 것이다. 이에 따라 섀넌 엔트로피라고도 부른다.
섀넌은 어떤 문장이 가진 정보의 양이 그 문장이 진술하는 일이 일어날 확률에 반비례한다고 생각했다. 즉 1/p이 정보의 양이다. 여기서 p는 그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다.
저자는 확률의 다음과 같은 특징을 살펴본다(참고로 브런치에서 수식 입력하는 방법을 찾지 못해 마지막 수식은 부득이하게 LaTeX 문법으로 적어 놓았다).
확률에는 한 가지 단순한 성질이 있다. 독립적으로 일어난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날 확률은 개별 확률의 곱으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내일 해가 뜰 확률은 p1, 바람이 불 확률을 p2라고 하면, 내일 해가 뜨고 바람도 불 확률은 p1p2이다. 해가 뜨는 사건의 정보량은 1/p1, 바람이 불 확률의 정보량은 1/p2이다.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의 정보량이 각각의 정보량을 더한 것이 되어야 한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1/p1+1/p2는 1/p1p2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가 꼭 이처럼 더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는 것이 직관적이다. 질량은 물질의 양을 나타낸다. 두 물체 전체의 질량은 개별 물체가 갖는 질량의 합으로 주어진다. 결국 확률에 반비례하는 성질은 유지하면서 독립 사건의 정보량이 더해지려면 적절한 함수를 도입해야 한다.
이렇게 도입된 함수가 로그다. 곱의 로그는 로그의 합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섀넌이 제시한 정보의 척도는 확률의 역수에 로그를 씌운 ln1/pn이다. 어떤 상황이 갖는 정보량은 그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사건들의 평균적인 정보량으로 나타내면 될 것이다. 개별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pn이라면 여기에 정보량을 곱해 더한 \sum_np_{n}\ln\frac{1}{p_{n}}로 쓸 수 있다는 말이다. … 그런데 놀랍게도 마지막으로 얻은 공식은 물리학에서 잘 알려진 볼츠만의 엔트로피 공식과 수학적으로 동일하다.
위와 같이 정보 엔트로피는 정보를 놀라움의 양으로 정의한 것인데 이 정보 엔트로피는 엔트로피라는 말답게 열역학 법칙과 연결된다.
열역학 제1법칙: 에너지 보존 법칙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가역 과정에서는 변하지 않고 비가역 과정에서 증가하는 물리량)는 결코 줄지 않는다. 즉, 확률이 높은 것이 많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정보가 일로 바뀌는 과정은 헝가리 태생의 미국 물리학자 실라르드 레오의 사고 실험인 실라르드 엔진과 함께 설명된다. 다음 그림으로 책에 실린 실라르드 엔진의 그림이다(책에 더 자세한 설명이 실려있다).
실라르드 엔진은 정보를 물리적인 엔트로피로 간주하지 않으면 열역학 제2법칙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고 한다.
실라르드 엔진의 정보는 원자의 위치 측정을 통해 얻어진다. 물리학에 들어오는 정보는 측정으로 얻어진 것이고, 양자 역학에서 측정의 주체는 결어긋남을 설명할 때 이야기했듯 명확히 정해져 있다. 측정 대상을 제외한 우주 전체다. 양자 역학은 정보의 주관성 문제를 해결해 준다. 실라르드 엔진을 통해 물리에 들어오는 정보는 양자 측정에 의한 객관적 정보다.
…
1998년 게르하르트 렘페의 실험에 따르면 교란을 가하지 않은 측정에서도 간섭무늬는 나오지 않았다. 즉 측정에서 중요한 것은 교란 여부가 아니라 정보라는 것이다. 전자가 어느 구멍을 지났으냐는 정보만 얻어지면 원자는 입자같이 행동한다.
저자는 정보를 일로 바꿀 수 있다는 이론과 양자 역학을 결합하고 확장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입자성과 파도성은 전자가 둘로 나뉠 때가 아니라 측정할 때 결정된다. … 측정이 있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다. 측정이 대상을 만든다.
실라르드 엔진에 따르면 정보를 이용해 일을 할 수 있다. 일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물리의 모든 것이다. 정보는 에너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물리적 실체다. 여기서 말하는 정보란 양자 측정으로 얻은 객관적인 것이다. 양자 역학은 상태를 기술한다. 보어는 정상 상태를 도입해 양자 역학의 문을 열었다. 양자 역학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상태를 얻을 확률이다. 확률은 정보로 정량화된다. 이처럼 양자 역학은 기본적으로 정보를 기술하는 형태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램페의 실험은 양자 역학의 측정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정보라는 것을 보여준다. 휠러의 지연된 선택은 입자성과 파동성을 결정하는 것이 추가적 측정 여부, 즉 추가 측정의 정보임을 보여준다. 이것은 양자 역학에서 측정이 대상 자체를 만든다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보여준다. 결국 양자 역학으로 바라본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논리적으로 명확한 귀결이라기보다는 그럴듯한 추론 정도에 불과하다. … 실제 양자 우주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측정을 통해 얻은 정보뿐이다. 우주에 실체나 본질은 없다. 질문과 답, 측정과 정보만이 있을 뿐이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추론이다. 과연 실제로 그러한지 알고 싶다. 모든 것의 근본인 입자가 마치 0과 1처럼 띄엄띄엄하게 행동한다는 것과 우주의 본질이 정보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책에서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는 SF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양자 역학이 빨간약의 역할을 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현실의 빨간약은 영화처럼 그냥 삼킬 수 있는 약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창 시절 수학과 물리학을 포기한 게 못내 아쉬워진다.
기술의 발전은 늘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불러온다.
알파고의 등장 이후 AI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투자가 쏟아졌다. 그 결과 AI 기술은 알파폴드와 같이 인류 전체에 많은 혜택을 가져다줄 방향으로 발전하기도 했지만 생성형 AI와 같이 사람을 모방하기 위한 방향으로 보다 급속히 발전했다.
후자의 기술은 명백히 사람을 대체하기 위한 기술이다. 지금도 수많은 기업에서 생산성을 높인다거나 업무 효율을 높인다는 미명 하에 사람 대신 사용할 AI를 직접 연구/개발하고 있거나 관련 업체에 돈을 지불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후자의 AI는 그 어떤 기술보다 자본가를 위한 기술이다. 파업하지도 않고, 마음 관리도 필요 없고, 휴가도 필요 없고, 점심시간이나 휴식 시간도 필요 없고, 출퇴근 없이 회사에 상주하면서 24시간 지치지 않고 일하는 직원이 생기는 셈이다. 이로 인해 인간이 설 자리는 단순 사무 업무부터 시작해 점점 좁아질 것이다.
이미 시작된 흐름은 누구도 멈출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덜 아프게 연착륙시키는 것 정도일 텐데 그것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과와 직장에서의 생존을 위해 아직 제대로 익지도 않은 AI 기술을 앞다투어 자발적으로 업무에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자 컴퓨팅 기술에 더 관심이 간다. 물론 양자 컴퓨팅 기술 역시 발전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진통은 있겠지만, 짧은 내 식견으로는 AI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파이를 키우기보다는 저숙련 노동자의 몫부터 차츰차츰 자본가에게 돌려놓는 기술이라는 느낌인 반면 그래도 양자 컴퓨팅 기술은 시장 그 자체를 키우는 쪽에 더 방점을 둔 기술로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우주 항공 기술 같이 이전에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던 일을 해내 시장 자체를 키울 수 있을 것 같은 기술.
책에 실린 안톤 차일링거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마치겠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정보이다. 이것은 우리의 감각 인상이며, 우리가 제기한 질문에 대한 대답들이다. 실재는 그다음에 오는 이차적인 것이다. 실재는 우리가 얻는 정보로부터 도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