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의 세계, 독서록

세상을 뒤바꿀 기술, 양자 컴퓨터의 모든 것

by gnugeun

이 책은 카이스트 물리학과 이순칠 교수가 쓴 책이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824851

책에 적힌 저자 소개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양자 컴퓨터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물리학자라고 한다. 책 표지 날개를 보면 TV에 출연한 경험이 있는 김상욱 교수나 정재승 교수, 미치오 카쿠 교수의 사진과는 다르게 날 것 그대로의 이공계 교수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사진이 하나 실려있다. 대중의 입맛에 맞게 깔끔하게 정돈한 너드가 아니라 진정한 너드 느낌.

이순칠교수님.png

그래서 그런지 중간중간 아래와 같이 외골수 물리학자다운 대사가 나온다.

닐스 보어 연구소는 보어의 모국인 덴마크 정부와 칼스버그 맥주 회사의 자금으로 코펜하겐에 설립되었다. 아마도 칼스버그 맥주 회사 역사상 가장 잘한 일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대기업이 닐스 보어 연구소나 미국의 벨 연구소 같은 기관을 설립한다면 회사의 이미지는 영원히 걱정할 필요가 없을 텐데, 아쉬운 일이다.


읽고 난 후 소감


책은 아주 만족스럽다. 양자 컴퓨팅에 관심을 갖고 지금까지 관련 책을 총 세 권 구입해 읽었는데 읽는 순서가 괜찮았던 것 같다. ‘김상욱의 양자 공부’로 양자 역학의 기초 개념을 다소 쉬운 설명으로 먼저 접할 수 있었고, 이어서 미치오 카쿠의 ‘양자컴퓨터의 미래’를 읽으면서 양자 컴퓨터가 완전히 상용화된 뒤에 펼쳐질 무한히 긍정적인 미래를 살펴본 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현실을 자각할 수 있었다. 국내 최고 권위자라는 타이틀을 후광으로 장착한 저자가 양자 컴퓨팅 기술의 현재(라고 썼지만 책 출간일을 고려하면 2022년) 발전 상태와 앞으로 극복해야 할 난관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설명해 주는데, 그 설명을 듣다 보면 미치오 카쿠가 그린 미래가 아주 근미래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나를 돌아보게도 만들었다. 이 책은 앞서 읽은 두 책에 비해 조금 더 기술적으로 파고드는 책이었는데 그 때문인지 책 읽는 속도가 거의 반으로 바로 줄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미래와 기원이 전부 담겨 있을 것 같은 분야라서 조금 더 깊이 알고 싶었고, 가능하다면 작게나마 이 분야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었는데 내 능력으로는 그다지 할 게 없을 것 같다는 아픈 느낌을 받았다. 수학과 물리를 피해 살아온 내 탓이겠지.

덕분에 다 읽고 나서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금방이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적인 미래가 저 멀리 달아나는 기분이 들었고, 그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나는 그저 관객 역할이나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책은 양자 역학보다는 양자 컴퓨팅에 초점을 맞춘 책이기 때문에 자신의 관심이 양자 컴퓨팅이라면 셋 중에 이 책이 으뜸이다. 이 책을 보면 된다. 양자 컴퓨터가 탄생한 계기와 발전해 온 역사부터 기본적인 양자 연산 방법과 양자 전산 전용으로 발표된 유명한 알고리즘 해설은 물론, IBM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디웨이브, 허니웰, 아이온큐 등 최근 양자 컴퓨팅 분야에서 이름을 널리 알린 플레이어와 그들이 양자 컴퓨터를 구현한 방식까지 (2021년 기준이긴 하지만) 한 번에 훑어볼 수 있다.


요약 및 발췌


책은 2037년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로 시작된다. 이 책을 포함해 앞서 읽은 두 책 모두 서두나 끝에 이와 같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실려 있는데 아무래도 아직 제대로 상용화되지 않은 분야의 잠재력을 독자에게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전달하려다 보니 SF 소설의 형식을 차용한 것 같다.

아쉽게도 세 권 모두 소설 자체의 재미나 완성도는 처참한 수준이다. SF라고 해서 앤디 위어의 ‘마션’이나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같은 소설을 생각하면 안 된다. 비교 자체가 실례일 정도. 그중에서도 특히 이 책에 실린 소설은 ‘굳이 소설 형식을 사용해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수준이 아쉽다.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이 세련되지 않고 투박하며, 뜬금없이 인물의 배경이나 성격을 주절주절 설명하는 등 이야기 전개도 서투르다. 게다가 글에 전반적으로 제대로 된 너드 성향의 꼰대 아저씨 냄새가 강하게 배어있다. 상당히 재미없고 오글거리는 소설이기 때문에 읽기 어려울 수 있는데 다행히 그리 길지는 않다.

짧은 소설이 끝나면 다른 책들과 비슷하게 양자 역학의 역사 이야기가 시작되고, 역사를 따라 현대로 흘러 내려오며 양자 역학의 특성을 하나씩 짚어나간다. 입자로만 생각했던 전자가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인정받기까지 있었던 굵직한 사건과 실험, 이를 통해 도출된 원리들을 시간순으로 짧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801년, 토머스 영이 광자의 이중 슬릿 실험을 통해 빛이 파동과 같이 간섭 현상을 보이는 것을 발견(이후 1924~27년에 걸쳐 데이비슨과 저머가 전자총과 니켈 결정으로 전자 이중 슬릿 실험을 진행해 전자가 파동의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밝혀냄)

1877년, 루트비히 볼츠만이 분자 등의 물리적 계의 에너지 준위가 이산적(연속적이지 않고 낱개로 떨어지거나 끊어져 있다)이라고 제안

1887년, 하인리히 헤르츠가 광전 효과 발견

1900년, 플랑크가 흑체 복사를 연구해 복사 법칙을 발표하면서 에너지가 양자화돼 있다는 사실을 이끌어 냄

1905년, 아인슈타인이 광전 효과를 연구해 파동의 특성을 보이는 빛이 에너지와 운동량을 가진 입자이기도 하다는 광양자 가설 제시

1911년, 벨기에의 기업가 에르네스트 솔베이가 브뢰셀에서 ‘방사능과 양자’를 주제로 1차 솔베이 회의 개최(아인슈타인이 가장 어린 참석자로 참석)

1923년, 루이 드 브로이가 모든 물질이 파동성의 성질을 갖는다는 물질파(입자가 떨면서 발생하는 파동이 아니라 입자가 그 자체로 파동의 성질을 보이는 것을 의미) 개념과 이를 설명하는 공식 제안

1924년, 1920년대 괴팅겐 대학교에서 막스 보른과 베르너 하이젠페르크, 볼프강 파울리가 포함된 물리학자 모임에서 만들어 낸 ‘양자 역학’이라는 표현을 막스 보른이 공식적으로 논문에서 처음 사용(독일어로 Quantenmechanik)

1925년, 슈뢰딩거가 물질파를 기술하는 방정식(시간에 따라 양자 상태가 어떻게 변하는지 설명하는 방정식)인 슈뢰딩거 방정식 발표

1927년, 3월에 하이젠 베르크가 불확정성의 원리 발표, 10월에 (그 유명한) 5차 솔베이 회의 열림

1935년, 슈뢰딩거가 양자 역학의 불완전함을 보이기 위해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 실험 고안


흑체 복사나 광전 효과 등 사건 하나하나가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들이어서 읽어 내려오는 게 쉽지 않았다. 언뜻 이해한 것 같다가도 조금만 깊게 생각하면 생각의 연결 고리가 툭툭 끊어진다. 아직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불확정성 원리는 원리 자체는 아래와 같이 간단하지만 왜 아래 원리가 성립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위치의 불확실성) * (운동량의 불확실성) >= 플랑크 상수

이 책에서 수식이 아니라 아래와 같이 최대한 쉽게 말로 풀어서 설명해 주는데도 파동에 대한 기초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같은 문장을 몇 번을 다시 읽어야 했다.

입자는 파동이기 때문에 입자가 있는 곳은 파동의 진폭이 있을 것이고, 입자가 없는 곳은 진폭이 0일 것이다.

두 개 이상의 파장이 서로 만나 합쳐지면 맥놀이 현상이 발생한다.

푸리에 변환은 어떤 모양의 파형이라도 파장이 다른 사인파들을 합해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맥놀이 현상과 푸리에 변환을 기반으로 생각해 보면 파동의 위치를 어느 한 공간으로 국한시키면 파동이 위치하는 범위는 좁혀지지만 파장의 불확실성이 크다.

반대로 공간에 국한되지 않은 파동은 파장은 명확하지만 우주 공간 어디서나 파동의 진폭이 일정하므로 위치의 불확실성은 무한대다.

즉 위치와 파장을 모두 명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음으로 얽힘. 저자는 얽힘을 로봇의 사교춤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그다지 효과적인 예시가 아니었다.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지는 기분이었다. 다시 저자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었달까. 예단하기 조심스럽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차라리 로봇 춤 예시를 생략하고 바로 117쪽으로 넘어가 일반적인 설명을 읽는 게 나을 수 있다. 아래는 그중 일부를 발췌해 온 것이다.

양자 물리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열렬히 응용되어 현대 문명을 완전히 변화시켰으나 그동안 전혀 사용되지 않은 속성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얽힘이라는 속성으로서, 이 속성을 응용한 기술은 나중에 양자 정보 기술로 발전하여 양자 컴퓨터를 발명하게 해준다.
자연에서는 가끔 광자 한 쌍이 동시에 생성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생성되는 두 개의 광자는 편극 방향이 서로 다르다. 1번 광자의 편극 방향이 수평이면 2번 광자는 수직이고, 1번 광자의 편극 방향이 수직이면 2번 광자는 수평이다. 즉, 1번이 수평이고 2번이 수직인 상태와 1번이 수직이고 2번이 수평인 상태가 중첩돼 있다. 이때 1번 광자의 편극 방향을 측정해서 수평이 나오면 2번 광자의 편극 방향은 측정해 보지 않아도 수직이며, 1번 광자의 편극 방향이 수직이 나오면 2번 광자의 편극 방향은 측정해 보지 않아도 수평이다. 이렇게 두 개의 입자가 독립적이지 않고 상대의 측정 결과에 영향을 받을 때, 이 두 입자는 서로 ‘얽혀 있다’라고 말한다. … 태초에 얽힌 상태로 태어난 두 개의 광자가 각각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서 우주의 한쪽 끝과 반대쪽 끝에 도달했다고 하자. 놀랍게도 이 입자들은 편광의 얽힘 관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토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 광자를 측정하면 그 즉시 다른 광자의 상태를 알 수 있다. 중첩이 야기하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 중에서도 얽힘은 가장 괴상한, 가장 양자스러운 현상이다. … 양자 전산이 고전 전산보다 빠른 이유는 중첩에 의한 현상 중에서도 얽힘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얽힘이라는 현상은 그 괴상함만큼이나 받아들여지는데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그 우여곡절의 중심에는 아인슈타인이 있었다. 참고로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 양자 역학을 받아들이지 않고 ‘신이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 해석을 찾았다고 한다.


첫 번째 우여곡절은 ‘정보를 포함해 그 어떤 것도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에서 비롯됐고, 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됐다.

상대론에 따르면 빛보다 빠른 것은 없으며 따라서 어떤 정보도 빛보다 빠른 속도로 전달될 수 없다. 반면 양자론에 따르면 얽혀 있는 입자들 중 하나를 내가 측정해서 그 결과를 보는 즉시, 나는 우주 반대편에 있는 입자의 상태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된다. … 그런데 정보를 즉시 알게 되는 것과 정보를 보내는 것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내 입자와 얽혀 있는 상대방 입자의 상태 정보를 내가 즉시 알 수는 있지만, 이런 메커니즘을 이용해서 정보를 보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내 입자의 상태를 측정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내용을 전달할 수 있어야 정보가 전달되었다고 할 텐데, 무작위인 내용이 전달되어서는 그럴 수가 없다.

내가 원하는 내용은 아니지만 무엇인가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우주 반대편으로 즉시 전달된 것은 맞는데 정보가 전달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사실 왜 그러한지 잘 모르겠다. ‘정보’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달려 있을 것 같은데 이 책에서 거기까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처럼 우주 반대편으로 입자를 보낼 때 상자 안에 독약과 고양이를 함께 넣어 입자의 스핀 상태에 따라 독약이 터지도록 만든 뒤 이쪽에서 입자를 측정하면 우주 반대편의 고양이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그 상태를 알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고양이의 생사 정보를 빛보다 빠른 속도로 알게 된 것 아닌가 싶긴 한데 잘 모르겠다.


두 번째 우여곡절은 EPR 논문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EPR은 아인슈타인(그 아인슈타인이 맞다)과 포돌스키, 로즈의 앞글자를 딴 것으로 이 세 명이 모여 양자 역학에 내재된 모순을 지적하기 위해 작성한 논문을 소위 EPR 논문, 이 논문에서 제기한 역설을 EPR 역설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이 논문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준다.

양자 물리에 따르면 물리량은 실재성이 있다 없다 한다.

경우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므로 양자 물리는 불완전한 이론이다.

여기서 ‘물리량의 실재성이 있다 없다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려면 ‘중첩된 어떤 것의 상태를 측정하면 측정과 동시에 그 계는 측정에 해당하는 상태로 붕괴한다’는 코펜하겐 해석과, ‘어떤 입자의 위치나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불확정성 원리를 알고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책 뒤 부록에 자세한 설명이 실려 있으니 EPR 논문을 이해하고 싶은 분들은 꼭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PR 논문에는 코펜하겐 해석과 불확정성 원리에 기반한 양자 역학의 ‘물리량의 측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사고 실험을 하나 소개한다. 사고 실험의 자세한 내용은 위키피디아 EPR 역설에 잘 실려 있으니 이를 참고하길 바란다.


결론만 가져와보면, 이 사고 실험의 결과에 따르면 양자 역학에는 모순이 있고, 이 모순을 해결하려면 아래 둘 중 하나가 참이어야 한다고 한다.

아직 물리학자들이 모르는 숨은 변수가 있어서, 그 숨은 변수에 따라 측정하기 전부터 다 결정되어 있다. 이를 숨은 변수 이론이라고 한다.

양자 얽힘이 비국소적이다.

실험을 통해 양자 얽힘이 비국소적이라고 밝혀진 지금이야 당연히 두 번째가 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EPR 논문이 나온 당시에는 자연은 국소적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아래 발췌 문장을 읽으면 국소적/비국소적이라는 표현이 조금 더 피부로 와닿는다.

물체와 물체 사이에는 중력이 작용하는데, 이 힘은 빛의 속도로 전파된다. 빛이란 전자기력이 진동해서 만들어진 전파이므로, 전자기력이나 중력이나 전파되는 속도가 같다는 뜻이다. 햇빛이 태양에서 지구까지 오는 데 약 8분이 걸린다. 만일 태양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지구에서 보는 태양의 모습이 사라지는 데도 8분이 걸리겠지만, 우리 지구가 갑자기 중심을 잃고 어쩔 줄 모르는 현상을 겪기 시작하는 것도 8분 후이다. 뉴턴의 시대에는 물론 이렇게 빠르게 전파되는 현상을 측정하거나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모든 힘은 순간적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을 터다. 그랬던 것을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견하면서 빛의 속도가 자연의 제한 속도임을 알게 되었고, 결국 자연은 국소적이라는 입장이 대두하게 되었다.

즉, EPR 논문이 나온 당시에는 첫 번째가 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고, 이에 따라 숨은 변수 이론이 대두되었다고 하지만, 이후 실제 실험에서 숨은 변수가 발견되는 대신 양자 역학의 얽힘이 비국소적으로 작동된다는 것이 증명돼 버린다. EPR이 틀렸고 양자 역학이 옳았다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1935년에 EPR 논문에서 촉발된 ‘양자 역학의 얽힘이 비국소적으로 작용한다’는 이슈가 긴 세월이 흐른 후 존 스튜어트 벨이라는 과학자의 호기심을 자극해 1964년에 벨의 부등식이라는 식을 제시한 ‘EPR 패러독스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작성하게 만든다. 벨이 논문에서 제시한 부등식은, 만약 부등식이 만족하면 자연은 국소적이며 숨은 변수가 있고 양자 역학이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양자 물리가 옳다는 것이 증명되는 부등식이라고 한다.

이론으로만 발표되었던 이 논문은 다시 긴 세월이 흐른 후 알랭 아스펙트라는 프랑스 물리학자의 호기심을 자극해 벨 부등식을 테스트할 수 있는 실험을 설계하게 만들고, 결국 그는 1980년대 초, 박사 학위 논문을 쓰는 동안 이 실험에 성공해 양자 역학의 얽힘이 실제로 비국소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최초로 밝혀낸다. 이후 다시 여러 명의 똑똑한 과학자들이 달려들어 알랭 아스펙트의 첫 번째 실험, 혹은 그 이후에 진행된 실험들에 내포돼 있던 허점들을 발견하고 보완해 다시 실험하는 과정을 여러 번 거쳤는데 아직까지는 얽힘이 비국소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뒤집히지 않았다고 한다.

무엇인가가 빛의 속도에 국한되지 않고 비국소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이 양자 역학에 호기심을 갖게 만들었으며, 그 과정에서 결국 양자 컴퓨터가 탄생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왜 양자 컴퓨터가 필요하다고 느꼈을까? 지금이야 그 속도가 주춤하고 있는 것 같지만 과학자들이 양자 컴퓨터에 관심을 갖고 초기 아키텍처를 고민하던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을 텐데. 당시 고전 컴퓨터는 본격적으로 발전하며 영화 히든 피겨스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을 우주로 보내는 중요하고 빛나는 일에 속속 도입돼 그 가치를 증명하고 있었고, 이후로는 무어의 법칙이니 황의 법칙이니 하면서 마치 한계가 없는 양 눈부시게 발전하며 말 그대로 세상을 혁명적으로 바꾸고 있던 기계인데 도대체 그 이른 시기에 어떻게 고전 컴퓨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을까?

이는 고전 컴퓨터의 구조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고전 컴퓨터에 사용하는 메모리칩이나 트랜지스터 같은 부품을 소자라고 하는데 같은 크기의 소자에서 용량을 늘리려면 메모리 한 비트가 차지하는 크기를 점점 줄이는 수밖에 없다. 그 극한은 결국 원자 한 개가 될 텐데 한 비트의 물리적 크기가 원자에 가까워지면 미시 세계의 양자 물리적 현상이 강하게 발현되면서 전자 회로의 작동을 방해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전자 소자 제조 회사에서는 메모리 용량을 늘리기 위해 양자 물리적 현상을 제거하는데 애를 써왔는데 반대로 이 현상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양자 컴퓨터인 것이다.

집적도의 한계와 더불어 또 하나의 장애물은 연산이 발생시키는 열이었다. 메모리 집적도와 함께 연산 속도 또한 컴퓨터의 발전 정도를 측정하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인데 컴퓨터의 연산은 필연적으로 열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연산 속도가 올라갈수록 더욱더 많은 냉각 장치가 필요해진다. 이에 따라 기술은 연산 하나가 발생시키는 열을 줄이는 쪽으로 발전해 왔는데, 이 열이 상온에 도달하면 우리가 연산을 명령하지 않아도 상온에서 무작위로 아무 연산이나 수행되면서 컴퓨터로써 기능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여기서 왜 컴퓨터의 연산이 열을 발생시키는지 짚고 넘어가기 위해 비가역과 엔트로피 개념을 설명한다.

연산할 때 열이 발생하는 이유는 연산이 비가역적이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수행하는 연산이란 입력 신호로 들어온 0이나 1을 원하는 조건에 맞게 출력해 주는 조작을 의미한다. 출력으로부터 입력을 복구할 수 없는 경우를 비가역적 연산이라고 한다. 반대로 거꾸로 갈 수 있는 연산은 가역적 연산이라고 부르는데 NOT 연산이 이에 해당한다. 컴퓨터의 비가역적 연산은 입력 신호의 개수와 출력 신호의 개수가 다르다는 데에서 비롯한다. 연산 과정에서 정보가 일부 손실돼 출력으로부터 입력을 복구할 수 없는 것이다.
가역과 비가역은 열 물리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이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비가역 과정에서는 무질서한 정도, 즉 무질서도가 증가한다. 무질서도를 고상하게 엔트로피라고 부르기 때문에 열역학 제2법칙은 보통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라고도 부른다.
비가역적인 과정은 일반적으로 발열을 동반한다. 사실, 현재 우리가 쓰는 컴퓨터가 더운 김을 확확 뿜어대는 이유는 소자들이 비가역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론적인 한계보다 훨씬 더 비효율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가역적 과정이 우리가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할 한계인 것은 분명하다. … 1961년, 비가역적 연산에서 정보가 손실되고 정보가 손실되면 열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처음 지적한 것은 롤프 란다우어였다. 당시 그는 IBM에서 근무했는데, 계산의 궁극적 한계라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정보를 지우는 데 에너지가 소모된다면 정보를 지우지 않는 컴퓨터를 만들면 어떨까? 1973년, 롤프 란다우어 밑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던 베넷은 정보를 지우지 않는 연산만 수행하는 가역적 컴퓨터 모델을 제시했고, 이는 양자 컴퓨터의 등장을 촉발했다. 1980년, 폴 베니오프는 양자 물리 법칙에 따르면 가역적 연산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1982년, 파인먼은 베넷의 제안으로 양자 컴퓨터를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가역적 과정이나 발열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고전컴퓨터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비가역과 엔트로피의 개념은 다시 들어도 신기한 개념이다. 나에게 ‘정보가 손실된다’는 것은 추상적 세계에 속한 현상으로 느껴지는데 이것이 ‘열이 발생한다’는 물리적, 감각적 세계의 현상과 연결된다니.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가장 근본적인 비밀과 연결돼 있는 개념과 현상이 아닐까. 참고로 위 발췌에 나오는 파인먼은 그 리처드 파인먼이 맞다.

여기까지를 주요 사건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61년, IBM의 롤프 란다우어가 비가역적 연산에서 정보가 손실되고 이로 인해 열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

1973년, 롤프 란다우어 밑에서 일하던 찰스 베넷이 가역적 컴퓨터 모델 제시

1980년, 미국 아르곤 연구소의 폴 베니오프가 양자 물리 법칙에 따르면 가역적 연산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양자 컴퓨터의 개념 제시

1982년, 알랭 아스페가 실험을 통해 벨의 부등식이 만족하지 않는 것을 검증(이후 이 실험의 허점이 발견돼 보완한 실험이 진행되고, 다시 그 실험의 허점이 발견돼 보완하는 실험이 진행됐지만 벨의 부등식은 여전히 만족하지 않았음)

1984년, 찰스 베넷이 질 브라사르와 함께 양자 암호 통신 방법 제안

1985년, 데이비드 도이치가 아주 간단한 알고리즘과 함께 양자 컴퓨터의 모델 제시

1989년, 찰스 베넷은 존 스몰린과 양자 암호 통신 구현 성공

1992년, 데이비드 도이치가 리처드 조사와 함께 도이치-조사 알고리즘 발표

1993년, 찰스 베넷이 양자 원격 이동 기술 발표(1997년에 안톤 자일링거가 광자를 이용해 양자 원격 이동 기술 구현에 성공해 202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1994년, 피터 쇼어가 공개키 암호를 깰 수 있는 양자 알고리즘 발표

1996년, 로브 그로버가 데이터 검색 알고리즘 발표

1997년, 핵 자기 공명 방식으로 최초의 양자 컴퓨터(2비트) 구현 성공

...

2022년 400비트가 넘는 양자 컴퓨터 CPU 칩 개발


참고로 여기서 원격 이동이라는 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방식의 원격 이동이 아니다. 양자 컴퓨터와 관련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라서 책에서도 한 챕터로 다루고 지나간다.

양자 원격 이동이 스타트렉에서처럼 물체를 순간적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아니다. 물체는 순간 이동할 수 없다. 순간 이동하려면 속도가 순간적으로 무한대가 되었다가 다시 순간적으로 0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물체의 속도는 무한대가 될 수 없으며, 조금이라도 순간적으로 변할 수도 없다. … 속도가 순간적으로 바뀌려면 무한대의 힘이 가해져야 한다. 힘을 무한대로 가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가능하다고 해도 생명체가 견디지 못하고 즉사할 것이다.
양자 원격 이동은 물체를 원격 이동시키지 않고 물체에 대한 정보를 원격 이동시킨다. 물체의 구성 요소와 구성 상태의 정보만 전달하면, 도착지에서 같은 입자들을 구해 같은 상태로 구성하면 된다. … 이 세상 모든 물질은 모두 100여 개 원소의 조합으로 구성된다. 지구에서 8.6광년 떨어진 별 시리우스에도 이런 원소들이 있을 것이므로, 어떤 원소들이 어떻게 쌓여서 나를 구성하고 있는지에 관한 정보만 전달하면 시리우스에서 같은 원소들을 구해 같은 방식으로 쌓으면 된다.

이게 어떻게 ‘이동’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인데 다음 설명을 읽으면 그나마 조금 이해할 수 있다(물론 그렇다고 이게 ‘이동’이라고 납득되지는 않았다).

원격 이동 기술은 한 입자의 상태를 멀리 떨어진 다른 입자에게 팩스 보내듯이 복사해 주는 게 아니라 문자 그대로 ‘보내버리는’ 것이며, 만일 나를 원격 이동시키면 나와 똑같은 것은 오히려 시리우스에서 만들어진 나이고, 여기 남은 나는 붕괴되면서 변질돼 이전의 나와는 뭐가 달라도 달라진다. 만일 원본과 이동된 물체가 완전히 같다면 이는 복사된 것인데 양자 정보 과학에서는 복제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증명돼 있다. 복제가 가능하다면 임의의 중첩된 양자 상태를 수없이 많이 복제한 뒤, 그것들을 측정해서 나오는 결과로부터 고유 상태들의 중첩 비율을 알 수 있다. 즉 일반적인 중첩 상태에 대해서 완벽하게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렵게 양자 원격 이동 기술을 사용해 모르는 채로 보낼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상태에 대한 정보를 일반 통신 채널로 보내면 된다. “양은 복제할 수 있는데 전자는 복제할 수 없다.”

아직 한계가 많은 기술이라서 큐빗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벤저민 슈마허는 ‘차라리 걸어가는 게 낫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저자는 고전 컴퓨터 설계의 기본 요소로 사용하는 NAND 연산을 짧게 짚어주고 양자 컴퓨터의 가장 기본적인 연산인 회전 연산과 CNOT 연산을 살펴본다.

입력이 두 개이고 출력이 한 개인 게이트는 총 8가지가 있을 수 있다. … 사실 NOT 연산과 AND 연산을 결합한 NAND 연산, 즉 두 입력이 모두 1일 때만 출력이 0이고 나머지 세 가지 경우의 입력에 대해서는 1을 출력하는 연산 하나만 있으면 컴퓨터에 가능한 모든 일을 다 시킬 수 있다. 이를 범용연산이라고 부르는데, 범용연산자 하나만 있으면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 등 사칙연산을 할 수 있으며 그 밖에도 논리연산까지 다 할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의 CPU는 이 범용 게이트를 조합해 100여 개의 단순 작업을 처리할 수 있는데, 이 단순 작업을 다양하게 조합해 컴퓨터가 하는 모든 일을 수행한다.
회전 연산은 큐빗으로 스핀을 사용하는 양자 컴퓨터에서 숫자 1과 0을 나타내기 위해 각각 스핀 업과 스핀 다운 상태를 사용할 때 스핀 큐빗의 방향을 돌리는 연산을 뜻한다.
CNOT(controlled-NOT, 조건부 NOT) 연산은 두 입력 큐빗 중 한 큐빗의 상태에 따라 나머지 큐빗의 상태를 바꾸거나 그대로 두는 연산자이다. 첫 번째 비트를 제어 비트, 두 번째 비트를 표적 비트라고 하자. CNOT 연산은 제어 비트에는 아무런 조작도 하지 않고 그대로 통과시킨다. 제어 비트가 0이면 표적 비트도 그대로 통과시키고, 제어 비트가 1이면 표적 비트의 상태를 바꿔 통과시킨다(NOT 연산).
위와 같은 정의 아래에서, 0과 1의 중첩 상태에 연산이 가해지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앞서 말한 것처럼 중첩은 양자 컴퓨터가 고전 컴퓨터보다 우수한 이유이기 때문에, 이 질문은 대단히 중요하다. 양자 세계의 중첩 상태에 물리적 조작이 가해지면 중첩을 이루는 고유 상태 하나하나에 각각 그 조작이 가해진다. 즉, 중첩 상태에 가해진 물리적 조작의 결과는 각각의 고유 상태에 물리적 조작이 가해진 결과들이 중첩된 것과 같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중첩된 상태에 연산을 가하면 각각의 상태에 따로따로 연산이 가해진다. 예를 들어 0과 1이 7대 3의 비율로 중첩된 상태에 NOT 연산이 가해지면, 0과 1이 따로따로 NOT 연산이 가해져서 0은 1로 바뀌고 1은 0으로 바뀌며, 결과적으로 1과 0이 7대 3의 비율로 중첩된 상태가 된다.
스핀 큐빗이 두 개가 있으면 가능한 상태는 00, 01, 10, 11로 총 네 가지이다. 이 네 가지 중에서 스핀 큐빗 두 개로 이뤄진 양자계가 01과 11, 두 상태가 중첩된 상태에 있다고 해보자. 즉, 첫 번째 스핀은 0과 1의 중첩 상태에 있고, 두 번째 스핀은 1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첫 번째 스핀을 제어 큐빗, 두 번째 스핀을 표적 큐빗으로 생각해서 CNOT 연산을 해보자. CNOT 연산은 01과 11 상태에 각각 가해진다. 먼저 01 상태에 가해진 연산을 따져보면, 제어 큐빗이 0이라 표적 큐빗이 바뀌지 않으므로 결과는 그대로 01로 출력된다. 이어서 11 상태에 가해진 연산을 고려해 보면, 제어 큐빗이 1이라 표적 큐빗이 바뀌어 결과로 10이 출력된다. 그러므로 01과 11의 중첩 상태에 CNOT이 가해진 결과는 01과 10의 중첩 상태이다.
처음 01과 11의 중첩 상태는 얽힘과 무관했다. 제어 큐빗은 0과 1의 중첩 상태에 있고, 표적 큐빗은 제어 큐빗과 무관하게 그냥 1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표적 큐빗을 측정하고 나서도 제어 큐빗은 여전히 0과 1의 중첩 상태에 있으며, 제어 큐빗을 측정해서 0이 나오든 1이 나오든 표적 큐빗은 언제나 1이다. 그러나 CNOT 연산이 수행된 결과인 01과 10의 중첩 상태는 서로 얽혀 있다. 제어 큐빗과 표적 큐빗 모두 0과 1의 중첩 상태이긴 하지만 따로따로 중첩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제어 큐빗을 측정해서 중첩이 붕괴되어 0이 나오면 표적 큐빗도 그 순간 중첩이 붕괴되어 1이 되고, 제어 큐빗을 측정했을 때 1이 나오면 표적 큐빗은 그 순간 0이 된다. … 두 큐빗이 얽혀 있는 01과 10의 중첩 상태에 다시 한번 CNOT 연산을 가해보자. CNOT이 01에 걸리면 01 그대로이고, 10에 걸리면 11로 바뀐다. 그러므로 맨 처음 상태, 01과 11의 중첩 상태로 다시 돌아온다. 즉, CNOT 연산은 얽힘이 없던 상태에 얽힘을 만들기도 하고, 얽혀 있는 상태의 얽힘을 풀기도 한다. 양자 전산에서 사용되는 두 큐빗 연산의 종류가 많음에도 CNOT 연산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이유는 두 큐빗 사이에 얽힘을 만들거나 풀어주는 기본 연산이기 때문이다. … 쓸만한 양자 알고리즘에서는 얽힌 상태가 반드시 나타나기 때문에 CNOT 연산을 거치지 않는 알고리즘은 상상하기 힘들다.

이어서 양자 컴퓨터를 만들기 위한 준비물과 그 준비물의 조건을 살펴본다. 저자의 설명을 읽어보면 왜 여러 회사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양자 컴퓨터를 만들고 있는지, 왜 발전 속도가 더딘지 대략 파악할 수 있다.

양자 컴퓨터는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양자 컴퓨터를 만들려면, 첫째로 큐빗이 있어야 한다. 큐빗은 에너지나 운동량, 스핀 등 우리가 측정하는 물리량의 고유 상태를 두 개 이상 가지고 있는 어떤 양자계나 가능하다. 예를 들어 수소 원자는 무한히 많은 에너지 상태를 가지는데, 가장 바닥인 상태와 바로 위 들뜬 상태를 골라 각각 0과 1인 상태로 규정하고 이들을 이용해 연산을 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수소 원자는 무한히 많은 에너지 상태를 가졌기 때문에 그중에 딱 두 개만 골라서 연산을 하려면 꽤나 조심해야 한다. 반면 고유 상태가 두 개뿐인 전자 스핀의 상태는 0과 1, 두 값에 대응시키기에 안성맞춤이다.
양자 컴퓨터의 두 번째 조건은 읽기, 쓰기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구현하기는 만만하지가 않다. … 양자 컴퓨터의 큐빗은 쓰기는 쉽지만 읽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스핀 큐빗에 0이나 1을 쓰려면 자기장을 수직 위나 아래 방향으로 가해줘서 스핀을 같은 방향으로 정렬하면 된다. 숫자를 바꾸려면 자기장을 직각으로 걸어 180도 회전 연산을 해주면 된다. 그런데 읽기 위해서는 전자 스핀 단 한 개의 상태를 측정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전자를, 더구나 그 스핀을 읽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물론 답은 ‘가능하다’이다. 과학자들의 연구 개발 능력의 놀라운 사례 중 하나인데,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양자 컴퓨터의 세 번째 조건은 큐빗 간에 상호작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호작용이 있어야 얽힌 상태를 만들 수 있고, 얽힌 상태는 양자 컴퓨터가 고전 컴퓨터보다 우월한 이유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 미시 세계의 입자들은 서로 가까이 있기만 하면 늘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큐빗 간 거리가 너무 멀지만 않으면 양자 컴퓨터의 CPU가 될 수 있다. 사실은 상호작용을 하지 않아야 할 때도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된다. 상호작용을 제어할 수 없다면, CNOT 연산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CNOT 연산을 하고 있게 된다. 스핀 간의 상호작용은 있어라 할 때 있고 없어져라 할 때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호작용을 조절하는 문제는 어떤 양자계로 양자 컴퓨터로 개발하고자 할 때 만나게 되는 가장 큰 난관이다.
양자 컴퓨터의 네 번째 조건은 결맞음 시간이 길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 또한 상호작용과 관련이 있다. 결맞음 시간이란, 양자 컴퓨터의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1이나 0이 그대로 유지되는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양자 세계의 입자들은 늘 주변의 입자들과 상호작용을 하는데, 주변의 입자들 중에는 큐빗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도 있지만 큐빗을 그 자리에 고정해 두기 위한 구조물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있다. 입자들은 그런 주변 입자들과의 상호작용에도 민감해서, 1이나 0인 상태로 만들어두어도 0이나 1인 상태가 흐물흐물 섞여 들어와 중첩상태로 변한다. … 따라서 결맞음 시간은 당연히 연산 시간보다 훨씬 길어야 한다.


이어서 자기 공명, 이온 덫, 초전도 등 현재 여러 회사에서 양자 컴퓨터를 만드는 방식을 간략히 소개한다. 얼마 전 다녀온 퀀텀 코리아 2025에서 찍은 아래 사진에 잘 정리돼 있어서 사진으로 대체한다. 참고로 책에는 조금 더 깊이 원리까지 설명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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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도: 전류 저항이 없는 초전도체를 이용해 조셉슨 효과를 이용한(솔직히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일단 링크 걸어 놓음) 조셉슨 접합 소자를 제작해 큐비트를 만드는 방식

이온 덫: 전자를 제거하거나 추가해 이온을 형성한 후 전자기장으로 이온의 상태를 조작해 큐비트를 만드는 방식

중성 원자: 중성 상태의 원자를 광집게로 포획해 큐비트로 활용하는 방식

반도체 양자점(quantum dots): 반도체에서 특정 물질을 고립시켜 점을 형성한 뒤 이 점 안의 전자를 큐비트로 사용하는 방식

광자: 광자를 나누거나 특성을 변경하는 장치를 이용해 큐비트로 사용하는 방식

점 결함(point defect): 고체 내부에 원자가 없거나 다른 원자가 배치된 결함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큐비트로 활용하는 방식


양자 컴퓨터를 만드는 다양한 방식을 알아본 후 저자는 이렇게 만든 양자 컴퓨터로 어떤 문제를 풀 수 있는지 몇 가지 알고리즘을 소개한다.


먼저 도이치-조사 알고리즘. 현재 연산이, 입력값에 상관없이 출력이 항상 0 또는 1인 상수 연산과, 입력값 중 50%는 출력이 0이고 50%는 출력이 1인 균형 연산 중 어느 연산인지 알아내려면 원래는 두 번 연산해야 하는데, 이걸 중첩을 이용해 한 번에 알 수 있다는 알고리즘이다. 실 생활에 쓸모 있는 알고리즘은 아니고 양자 컴퓨터가 고전 컴퓨터보다 어떤 방식의 문제를 더 빨리 풀 수 있는지를 홍보하기 위한 알고리즘인데, 첫 번째 양자 알고리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한다.


다음으로 쇼어의 소인수 분해 알고리즘. 양자 컴퓨터에 많은 사람의 관심을 집중시켜 많은 투자가 몰리게 한 알고리즘으로, 저자는 이 알고리즘을 양자 전산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꼽을 정도다. 두 숫자를 곱하기는 쉽지만 소인수 분해하기는 어렵다는 원리를 이용해 만든 공개 키 암호 방식을 기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쉽고 빠르게 깰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알고리즘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책 뒤 부록에 별도 설명이 실려 있다. 부록 설명에 따르면, 큰 수 n을 소인수 분해해 약수를 구하는 한 가지 방법은 두 임의의 수 x와 a를 고르고 x^a를 n으로 나눈 나머지를 구하는 것인데(x는 n과 서로소), a를 하나씩 늘려가면서 이 작업을 계속할 때 나오는 나머지 값들은 주기적이라고 한다. 이 주기가 r인데 이것이 운 좋게 짝수였다면(홀수라면 다시 시도하면 된다) n과 (x^(r/2) + 1) 혹은 (x^(r/2) - 1)이 공약수를 가졌다는 것을 뜻하며, 두 수의 최대 공약수는 유클리드 소거법으로 빠르게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쇼어의 소인수 분해 풀이법은 바로 이 주기를 빠르게 찾는 해법이라고 한다. 저자의 예시를 읽어보면 왜 빠른지 어느 정도 감은 잡을 수 있다.

이 풀이법에서는 우선 주기를 찾기 위해 쓸 지수 a값과 나머지 값을 한쌍으로 하는 데이터를 만들고, 이 데이터들을 모두 중첩해 저장한다. n=8, x=5인 위의 사례에서 a를 0에서 7까지 변화시킴에 따라 나머지는 1, 5, 1, 5, 1, 5, 1, 5가 되니, 저장되는 것은 다음 8개 숫자들의 중첩 상태이다.

01, 15, 21, 35, 41, 55, 61, 75

위 두 자리 숫자에서 앞자리는 a 값이고 뒷자리는 나머지 값이다. a값을 나타내는 큐빗과 나머지 값을 나타내는 큐빗들이 얽혀 있다. 이때 나머지 값을 측정하면 1과 5 중 하나가 나올 텐데, 만일 5가 측정됐다면 나머지가 1인 네 개의 상태는 붕괴돼 없어지고 데이터는 다음 네 상태의 중첩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15, 35, 55, 75

이제 데이터의 앞부분은 1,3,5,7에 해당하는 상태들만 중첩되어 있다. 만약 나머지를 측정했을 때 1이 나왔다면 앞자리에는 0,2,4,6에 해당하는 상태들만 중첩되어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이건, 남아 있는 숫자들 간의 차이는 2로 똑같다. 이렇게 우리가 찾는 주기를 가진 등차수열을 구했다면 소인수분해라는 목적의 반은 성취한 셈인데, 이 과정을 되돌아보면 양자 세계의 중첩과 측정의 특별한 속성 덕분에 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때 앞부분의 상태를 모두 읽을 수 있다면 공통 차이가 2임을 당장 알아차릴 수 있으므로 즉시 주기를 구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양자 상태는 읽으려고 하면 중첩된 상태 중 하나만 읽힐 뿐이다. 따라서 그대로 읽으면 주기 정보를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쇼어의 소인수분해 풀이법에서는 데이터의 앞부분에 양자 푸리에변환 풀이법을 적용한다. 푸리에 변환이란 파동꾸러미를 구성하는 파동의 성분을 찾아주는 수학 변환법이다. 이 파동 성분들은 파장과 주기가 다 다르다. 그러므로 푸리에 변환은 어떤 주기를 가진 성분들이 존재하는지 알려준다고도 말할 수 있다. 주식 시세의 변화를 푸리에 변환하면 주식값이 오르고 내리는 단기적인 주기들과 장기적인 주기들이 나타난다. 쇼어의 풀이법을 설명할 때 사례로 들었던 데이터의 경우, 숫자들이 중첩된 앞부분을 푸리에 변환하면 어떤 주기의 성분들이 중첩돼 있는지 알게 된다. 푸리에 변환을 한 후에는 측정을 한다. 이때 푸리에 변환을 하기 전 단계의 계산을 성의 있게 많이 해두면 측정했을 때 맞는 주기를 얻을 확률이 올라간다.
즉 양자 소인수 분해 알고리즘도 반드시 옳은 결과를 얻는 게 아니라 확률적으로 맞는 답을 얻는다. 그러나 어떤 수가 약수인지 아닌지는 금방 확인해 볼 수 있으므로 틀렸다면 다시 시도하면 된다.
양자 소인수 분해 알고리즘이 고전 소인수 분해 알고리즘보다 비약적으로 빠를 수 있는 이유는 측정이라는 행위로 등차 수열이 한 번에 걸러진다는 점과 한 번의 연산으로 푸리에 변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중첩과 측정에 의한 붕괴, 이 두 가지 성질 때문이다. 중첩된 양자 상태의 이점은 모든 연산이 중첩된 상태에 독립적으로 가해진다는 자연계의 성질에서 비롯된다.


다음으로 그로버의 데이터 검색 알고리즘. 이 알고리즘 역시 양자 역학 책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알고리즘이며, 이 책에 실린 설명을 읽으면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감은 잡을 수 있다.

양자 컴퓨터는 공개키 암호를 매우 잘 푸는 동시에 비밀키 암호도 꽤 잘 푼다. 비밀키 암호 해독에 적합한 그로버의 알고리즘은 기본적으로 데이터 검색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 전화번호부에 수록된 이름의 수가 총 N개라면 원래는 적어도 N/2번 이상 뒤지는 수고를 해야 50% 이상의 확률로 이름을 찾아 번호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양자 컴퓨터와 로브 그로버의 양자 알고리즘을 사용하면 루트 N번만에 찾을 수 있다. … 이 풀이법은 기본적으로 N개의 자료 중 임의의 함수 f(x) = 0의 해답을 찾는 방법인데, 총 두 단계의 연산으로 이루어진다. 우선 모든 자료에 해당하는 상태들을 중첩시키고 난 후, 해답이 되는 자료의 상태의 부호만 바꾸는 연산이 첫 번째 단계이다. 그다음 단계로, 상태들의 크기의 평균을 기준으로 계수 값을 반전시킨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결국 해답이 되는 상태의 계수만 커지고, 몇 번 반복한 후에 측정하면 해답이 읽힌다.

저자는 전화번호부를 예시로 그로버의 데이터 검색 알고리즘을 보다 쉽게 설명한다.

이름을 나타내는 큐빗들과 전화번호를 나타내는 큐빗들은 서로 얽혀 있다. 이제부터 데이터 중에서 찾으려는 이름과 전화번호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사라지게 하려 한다. 우선 이름에 해당하는 첫 두 큐빗에만 연산을 가하는데, 첫 번째 연산은 우리가 찾는 이름에 해당하는 상태의 부호만 뒤집는 연산이다.
이때 중첩된 상태에는 순서 따위는 없으므로 ‘연산’이 알아서 그 상태만 찾아 부호를 뒤집는데 이 과정을 ‘오라클’이라고 부른다. … 이름이 어디에 쓰여있는지 모르며,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 이름이 붙어 있는 데이터만 변화시켜 주니 신기한 일이라는 뜻에서 이 과정으로 오라클이라 부른다.
이런 오라클스러운 연산은 어떻게 하면 수행할 수 있을까? 앞서 설명한 조건부 NOT 연산, 즉 CNOT 연산은 제어비트의 상태에 따라 표적비트의 상태를 바꾸는 것이었다. 제어비트가 0이면 표적비트를 그대로 두고, 제어비트가 1이면 표적비트의 상태를 바꾼다. 제어비트를 2개로 확장한 게이트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제어비트 2개가 모두 1이면 표적비트의 상태를 바꾸는 게이트인데, 실제로 많이 쓰이는 게이트로, 조건 조건부 NOT 연산이란 뜻으로 CCNOT 연산이라 불린다.
우리가 여기서 바라는 것은 첫 번째 제어비트가 1이고 두 번째 제어비트가 0일 때만 무언가를 하는 게이트이므로, 두 번째 제어비트를 CCNOT 게이트 입력단에 연결하기 바로 전에 NOT 연산자를 하나 둔다. 그러면 두 번째 제어비트는 상태가 바뀌어 CCNOT 게이트에 입력된다. 즉, 첫 번째 제어비트가 1, 두 번째 제어비트가 0일 때 CCNOT 연산자가 작동해 표적비트가 바뀐다. 여기서는 조건이 만족되었을 때 CCNOT 연산처럼 표적비트에 NOT 연산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표적비트 상태의 부호가 바뀌도록 연산 내용을 살짝 바꿔주면 우리가 원하는 연산이 된다.
두 번째 연산은 중첩된 상태의 크기를 모두 뒤집는 과정인데, 0을 기준으로 뒤집는 것이 아니라 상태들의 크기의 평균값을 기준으로 뒤집는다. 처음 준비된 상태들의 크기가 모두 1/2이었다면 첫 번째 연산으로 세 번째 상태만 크기가 -1/2가 되므로 네 상태의 크기의 평균값은 1/4이다. 이 값을 기준으로 1/2을 뒤집으면 0이 되고, -1/2를 뒤집으면 1이 된다.
이 두 번의 연산을 거치고 나니 네 상태의 중첩상태 중에서 이름이 10인 상태만 남고 나머지 상태들은 사라졌다. 즉, 전화번호부에서 세 번째 항목만 남고 나머지는 다 사라진 것이다. …. 일반적으로 명단이 많으면 위 연산을 여러 번 반복함에 따라 원하는 답을 찾을 확률이 점점 높아지지만 그래도 100%에 도달한다는 보장은 없으며, 심지어 이 연산을 너무 많이 하면 확률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따라서 적당히 반복하다가 측정해야 한다. … 여기서 문제는 이 전화번호부는 매번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측정할 때마다 전체가 하나로 붕괴하므로.
애초에 처음부터 그 상태의 진폭만 왕창 늘리지 왜 부호만 바꾸는 것일까? 양자 전산에서 할 수 있는 연산과 그렇지 않은 연산은 바로 슈뢰딩거의 방정식이 결정한다. … 양자 세계의 입자들은 슈뢰딩거 방정식이 정해주는 대로 움직여야지 아무렇게나 변화할 수는 없다. … 그로버는 슈뢰딩거 방정식이 허락하는 연산 중에서 데이터를 검색할 수 있게 하는 연산을 영리하게 잘 조합해서 알고리즘을 만든 것이다.
이런 제한 탓에 양자 컴퓨터는 아무 연산이나 잘하지는 않는다. 덧셈을 할 줄은 알긴 하지만 고전 컴퓨터보다 더 나을 게 없다. 그래서 양자알고리즘 중에서 쓸 만한 것은 아직 많지 않다. 쓸 만한 알고리즘을 만들기도 어렵기도 하거니와, 지금 사용 가능한 알고리즘을 돌릴 하드웨어도 없는 판이라 더 좋은 알고리즘을 개발한다는 것 자체가 공허한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로버의 데이터 검색 알고리즘은 원하는 데이터를 무작위로 찾는 방법이므로 암호를 알아내는 데도 쓰일 수 있다. 약간의 원문만 있으면 비밀키 방식 암호의 비밀키를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이후 양자 암호 통신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1984년에 발표된 최초의 양자 암호 통신 프로토콜인 BB84를 설명하는데 다른 알고리즘 설명과 같이 꽤나 자세하고도 쉽게 잘 알려주기 때문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양자 암호 통신까지 살펴본 다음에는 이제 양자 컴퓨터의 미래를 살펴보며, 자연스럽게 현재 양자 컴퓨터 업계에서 이름을 알린 기업들과 그들의 성과를 간략히 짚어본다.

먼저 캐나다의 디웨이브.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 기업에서 만든 양자 컴퓨터는 디지털 방식의 양자 컴퓨터가 아니라 아날로그 방식의 양자 컴퓨터라고 한다. 금속 같은 물체의 온도를 높였다가 내리면 성질이 변화한다. 이때 급속히 내리는 것을 ‘담금질’이라 하고 천천히 내리는 것을 풀림(annealing, 이하 어닐링)이라고 하는데 디웨이브는 어닐링 방식을 이용한 컴퓨터라고 한다.

주어진 원자들을 쌓을 때 위치에너지가 가장 낮은 안정된 상태는 어떤 상태일까 하는 문제는 물리학자들이 즐겨 푸는 퀴즈이다.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원리를 알아도 복잡해서 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이미 답까지 안다.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자연의 모습이 바로 개개의 입자들이 최소 위치 에너지 상태를 찾아간 상태이니까.
이를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풀지 못하는 문제를 꼭 수식으로 풀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자연 현상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예를 들어 어떤 공장에서 생산 비용을 나타내는 함수와 알갱이들의 위치에너지 함수가 동일한 형태를 띤다면 그 공장에서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생산 방식은 알갱이들이 어떻게 배열되어 있는지 자연을 관찰함으로써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 착안한 것이 바로 어닐링 계산이다. 큐빗에 연산을 가하지 않고 큐빗의 온도를 내린다든지 혹은 자기장을 걸어주고 한참을 기다려 큐빗들이 스스로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로 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도달한 최종 상태를 관측해 원하는 답을 얻는다.
이런 방식의 풀이법은 우리가 알고자 하는 대상의 상태를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고 알갱이들로 모사하는 것이므로 시뮬레이션이다. 그리고 컴퓨터와 같이 0과 1 이진법을 다루는 기계로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므로 아날로그 방식의 시뮬레이션이다.
그런데 이런 아날로그 계산은 고전컴퓨터에서도 하고 있었다. 양자 어닐링이 고전 어닐링과 다른 점은 원자 세계에 이른바 ‘터널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터널 효과란, 높은 담을 넘을 에너지가 없어도 수없이 벽에 부딪치다 보면 한 번쯤 통과할 수도 있는 현상으로, 매우 양자적인 현상이며 고전적인 세상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어닐링은 알갱이들이 벽을 넘어 위치에너지가 더 낮은 상태를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과정인데, 양자 어닐링에서는 추가로 터널 효과 덕분에 알갱이들이 더 빨리 제 위치를 찾아갈 수 있다.
디웨이브사의 컴퓨터는 이 양자 어닐링 현상을 이용해 계산하는 컴퓨터이다. 디웨이브사의 주장에 따르면, 알갱이들의 최소 에너지를 찾는 것 같은 문제를 자기네 컴퓨터에서 풀어보니 고전 어닐링 컴퓨터보다 훨씬 빨리 문제를 풀 수 있다고 했다. … 양자 어닐링은 특정한 문제만 풀 수 있을 뿐 범용 계산을 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디지털 방식의 양자 컴퓨터는 아니다.

이어서 디지털 방식의 양자 컴퓨터를 만드는 다른 기업의 사례를 훑으며, 양자 컴퓨터의 성능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단순히 큐빗수만 비교해서는 안 되고 ‘양자 부피’라는 개념을 사용해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2010년대부터 IBM, 구글,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정보 분야의 대기업들이 양자 컴퓨터 연구에 뛰어들었는데, 이것이 양자컴퓨터의 부흥을 일으키는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 이 중에서 IBM, 구글, 인텔은 하드웨어를 개발하고 있는데, 모두 초전도소자를 CPU로 선택했다. … 2022년에는 IBM에서 400큐빗이 넘는 CPU를 개발했다. … 2019년 말 구글에서는 퀀텀 슈프리머시, 즉 양자컴퓨터가 고전 컴퓨터보다 우월함을 보이는 첫 증거를 논문으로 내놓았다. … 2023년에는 심지어 1000큐빗이 넘는 양자 CPU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 127큐빗 CPU를 개발했다고 하면 작동하는 큐빗이 127개가 있다는 뜻이지 127큐빗용 일반 양자 알고리즘이 돌아간다는 뜻은 아니다. 바로 연산 시 발생하는 오류 때문인데, 양자컴퓨터에서는 오류의 문제가 고전 컴퓨터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초전도 양자 컴퓨터는 액체 질소 온도에서도 초전도가 되는 고온 초전도 물질을 쓰면 매우 저렴하게 작동시킬 수 있는데도 절대 온도 0.01도 수준에서 작동시키고 있다. 주변에서 오는 열 에너지가 만들어내는 잡음으로 인한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다.
고전 전산에서는 오류가 발생했는지 검사하기 위해 홀짝 여부를 조사하는 방법을 쓴다. 정보 교류에 8비트를 사용한다고 하면 7비트에는 데이터를 보내고 1비트에는 7비트의 데이터에 있는 1의 개수가 짝수이면 0, 홀수이면 1을 쓴다. 그러면 8비트 전체의 1의 개수는 항상 짝수이므로, 수신 측에서 1의 개수를 검사하면 오류 여부를 알 수 있다.
양자 전산에서는 고전 전산의 방법을 쓸 수 없다. 데이터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데이터를 읽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방법을 쓰는데 고전 전산보다 훨씬 더 비효율적이다. 1큐빗 데이터의 오류를 수정하는 데 4큐빗을 추가로 사용해야 한다. 이렇게 5큐빗을 하나로 묶어 논리 큐빗이라고 부른다. … 사실 5개의 물리적 큐빗을 사용해도 오류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오류가 백만분의 1 이하인 논리 큐빗 한 개를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 기술 수준에서 천 개의 물리적 큐빗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렇게 오류 문제가 심각하므로 양자컴퓨터 CPU의 능력을 비교할 때에는 단순히 큐빗 수만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양자부피를 고려한다. 양자부피란 대충 말해서 큐빗 수에다가 연산을 몇 번이나 할 수 있는지를 곱한 수이다. 한 번 연산에 오류가 많으면 연산을 반복할수록 오류가 쌓이므로 오래 계속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양자부피는 CPU의 능력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현재 CPU의 큐빗 수만 보면 이온덫은 이제 한물가고 초전도큐빗이 대세를 이루는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양자부피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이온덫 방식은 허니웰, 아이온큐 같은 회사들이 이끌어가며 초전도 방식을 고수하는 IBM, 구글 등의 공룡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 IBM에서는 400큐빗이 넘어가는 초전도 CPU를 공개하면서도 양자부피에 대한 언급이 잘 없다. 현재로는 연산은 몇 개 못 하는 수준인 것이다. 반면 이온덫 CPU의 큐빗 수는 30개 정도이지만 양자부피가 400만에 이른다고 하니 수만 개의 연산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온덫 CPU가 10년 전에는 큐빗 수 20개를 넘어가기가 힘들었으나 이제는 기술이 발전해 32큐빗도 개발했으며 앞으로 그 이상도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진보는 최근 큐빗 수 증가 속도가 워낙 가팔랐던 초전도 CPU에 묻힌 것으로, 양자컴퓨터 경쟁의 최종 승자가 누가 될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맥킨지 보고서로 유명한 맥킨지&컴퍼니사에서는 2021년 12월 양자 컴퓨터 업계에 대한 보고서를 냈다. 이에 따르면 양자 컴퓨터 하드웨어를 만드는 회사는 60개, 소프트웨어 회사는 120개나 넘으며 연구기관은 최소 160개라고 한다. 양자컴퓨터는 하드웨어의 작동 원리가 완전히 다르므로 컴퓨터 운영체제나 프로그래밍 언어가 고전 컴퓨터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특수한 목적을 가진 프로그램뿐 아니라 이런 기본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도 하고 있으며, 양자 컴퓨터를 고객들이 접속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클라우드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IBM과 구글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개발뿐 아니라 클라우드 서비스까지 종합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전문으로 제공하고 있다. IBM, 구글, 허니웰, 인텔 같은 거대 기업들은 여러 가지 사업 중의 하나로 양자 컴퓨터를 개발하고 있는 반면 순전히 양자 컴퓨터 개발에만 회사의 명운을 걸고 있는 벤처 기업들도 여럿 있다. 양자 컴퓨터는 아직 큐빗 수도 모자라고 오류도 많아 제대로 양자 알고리즘을 돌릴 수도 없는 상황인데 무슨 벤처 기업이냐는 생각이 얼핏 들 수 있지만, 다음 장에서 보듯이 완전하지 않은 양자 컴퓨터로도 할 수 있는 사업들이 있다.

저자는 또한 현재는 이온 덫과 초전도 소자가 앞서 나가는 것으로 보이지만 언제 승자가 바뀔지 모르며, 어쩌면 최종 승자는 하나가 아니고 분야에 따라 여럿이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앞서 잠깐 언급한 광자나 중성 원자, 반도체 퀀텀 닷을 큐빗으로 사용하는 양자 컴퓨터가 도약할 수도 있고, 이론상 오류가 발생하지 않는 양자계인 위상 양자 컴퓨터가 구현될 수도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향후 양자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사업들을 소개한다.

첫 번째는 압축과 관련된 것이다. 비트는 0과 1 두 가지 상태만 사용하지만 큐빗은 이들의 중첩을 모두 사용하므로 무한대의 상태를 표현할 수 있으며, 이런 특성을 살려 양자 컴퓨터는 고전 컴퓨터보다 더 많은 변수를 같은 비트 수에 담을 수 있으므로 많은 정보를 압축해서 전달하는 데에도 쓰일 수 있다고 한다.

다음으로 난수인데, 고전컴퓨터는 난수를 만들 때 원주율 파이나 사인 함수의 소수점 이하 값 등을 활용하며, 이는 엄밀히 말해 완전하게 무작위로 발생시킨 난수가 아니지만, 양자 세계에서는 중첩된 상태를 측정할 때 어떤 상태가 나타날지가 완전히 확률적이므로 완전한 난수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이를 활용한 난수 발생기는 이미 국산으로 생산되었으며, 이름에 ‘퀀텀’이라는 단어가 붙은 휴대폰에 장착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난수는 보안이 필요한 데이터를 발송할 때 사용하는데 이 난수가 진정한 무작위수면 보안이 조금 더 강화된다고 한다.

다음으로 양자 계측 과학. 정확한 원리는 모르겠지만 얽힘 현상을 이용하면 고전 기기가 도달할 수 없었던 정밀도로 측정할 수 있다고 한다. 이를 이용해 원자 시계의 정밀도나 자력계의 측정 감도, 중력 측정 감도 등을 높이고 있다고 하는데, 예를 들어 GPS에서는 세 개의 위성에서 보내는 신호의 시간차를 이용해서 내 위치를 측정하므로 시간이 정밀해지면 위치 측정 정밀도도 높아지며, 시계의 정밀도가 높아지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열리는 주식 시장에서 주문을 낼 때 훨씬 유리해진다고 한다. 또한 자력계의 측정 감도가 높아지면 뇌자도 등을 측정하는 의료 영상 기기의 해상도가 높아지고 잠수함 탐지가 쉬워진다고 한다.

다음은 조금 신기한 분야이다. 역시 원리는 모르겠지만 광자의 얽힘 현상을 이용하면 멀리 떨어진 물체의 모습을 알아내기가 훨씬 쉬워진다고 한다. 이에 따라 스텔스기라든가 장애물 뒤에 숨은 물체를 볼 수 있다고 하며 간섭계의 감도가 좋아지면 중력파같이 미약한 신호를 잡기가 용이해져서 여태껏 인류에게 닫혀 있던 세상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데이터 검색. 앞서 그로버 알고리즘에서 살펴봤듯 양자 컴퓨터는 데이터 검색을 잘하므로 빅데이터 분석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으며, 데이터 개수를 N이라 했을 때 루트 N번만에 데이터를 검색할 수 있다고 한다.

데이터 검색과 관련해서 저자는 양자 데이터 생산업이라는 추가 사업을 제안하기도 한다. 양자 컴퓨터에서 활용하려면 고전적인 데이터를 양자 상태에 입력시켜 몽땅 중첩시켜 놓아야 그걸 양자 알고리즘이 학습할 수 있는데 이 데이터를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며, 심지어 양자 데이터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조회하는 순간 붕괴되기 때문에 딱 한 번 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만약 양자 컴퓨터가 실현된다면 양자 데이터 생산업이 필요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마치며


아래는 저자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잘 드러내는 발췌이다.

벨과 같은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다면 왜 안 할까 싶지만, 막상 연구자가 되면 그게 쉽지가 않다. 직장과 연구비, 연구 결과와 스펙 때문이다. 지긋지긋한 주입식 입시 교육을 끝내고 드디어 청운의 꿈을 품고 대학교 물리학과에 들어와도, 우선 지난 300년간 물리학에서 천재들이 쌓아온 지식을 머릿속에 구겨 넣기 바쁘다. 좋은 학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를 할 수 있는 대학원에 들어올 때쯤에는 아인슈타인의 꿈을 포기하고, 빨리 좋은 연구 결과를 많이 내서 졸업 후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는 스펙 쌓기에 목을 매게 된다. 박사 학위를 받고 전문 연구자가 되면 좋은 논문을 많이 써야 연구비를 많이 딸 수 있고, 그제야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으며 연구원을 많이 확보해서 더 훌륭한 논문을 쓸 수 있다. 이 쳇바퀴를 잠시라도 벗어나기란 무척 어렵기 때문에 책을 보아도 당장 논문을 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양자 물리의 기본 철학 문제에 흥미가 있고 그것이야말로 물리학자로서 인생을 걸 가치가 있는 큰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할지라도 감히 들여다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는 네 가지 기본 힘 가운데 약력과 전자기력을 통일적으로 다루는 이론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는데, 나 같은 사람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인생을 보내고 있다.” … 암흑기에 몇 안 되는 양자 물리 연구자 중 야키르 아하로노프가 있었다. 그는 마찬가지로 양자 물리학자였던 데이비드 봄과 함께 아하로노프-봄 효과라는 것을 발견했는데, 물리학 교과서에도 나오는 유명한 현상이다. 이 대가도 와인버그와 비슷한 취지로 이렇게 말했다. “이런 문제들은 외면하고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 대가들이야 이런 말을 하기가 쉽다. 하지만 맞는 말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벨이나 아스페 같이 자신이 꿈과 가치만을 따라서 비난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거센 주류의 물결을 거슬러간 몇몇 용기 있는 사람들 덕분에, 양자 물리는 암흑기를 끝내고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며 비주류가 주류가 되는 새로운 세상을 열게 되었다.

하지 말라면 말 안 듣고 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이런 말썽꾸러기들은 일반적으로 문젯거리이지만, 나처럼 규칙대로 하는 사람만 있는 사회는 진보하지 못해 낙후될 것이다. .. 양자 물리 전성기의 끝인 1930년에서 50년이 지난 1980년, 미국 아르곤 연구소의 젊은 연구자 폴 베니오프가 제시한 양자컴퓨터의 개념은 암흑기가 끝나고 양자 르네상스가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나 다름없었다. 1982년에는 파인먼이 양자 컴퓨터가 있으면 고전 컴퓨터로는 불가능한 계산을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1984년에는 찰스 베넷이 질 브라사르와 함께 양자 암호 통신 방법을 제안했다. 도청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양자 암호 통신은 5년 후인 1989년 베넷이 존 스몰린과 함께 처음으로 직접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 1993년, 베넷은 양자 원격 이동 기술을 발표했다. … 이 원격 이동이야말로 양자 정보 기술 중에서 가장 쓸모가 없으나 가장 재미있는 기술일 것이다. … 이 기술은 1997년에 광자, 즉 빛을 이용해 안톤 자일링거가 처음 구현했는데 그 업적으로 202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나중에는 원자로도 구현되었다.
1994년, 피터 쇼어는 공개키 암호를 깰 수 있는 양자 알고리즘을 발표했는데, 아마도 양자 정보 기술의 발전 과정에서 가장 충격이 큰 사건이 아니었을까 싶다. 암호는 국방이나 안보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금융 등 인터넷을 이용한 통신에서도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암호 체계가 무너진다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가 붕괴된다는 뜻이다. 1996년에는 로브 그로버가 데이터 검색 알고리즘을 발표했다. 데이터 검색은 빅 데이터 처리가 중요한 모든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비밀키 암호를 격파하는 데도 쓸 수 있다. 양자 컴퓨터를 대체 어디에 쓰느냐는 의문이 편재했던 냉소적인 분위기가 이 두 알고리즘이 나오고 나서는 싹 바뀌었다. … 1997년에는 핵자기공명으로 양자컴퓨터가 처음 구현됐다. 비록 2비트짜리 장난감 수준의 데모였지만, 이제는 정말로 암호를 깨는 양자 컴퓨터가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내가 양자컴퓨터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바로 이때였다. … 양자 정보 기술에 관련된 논문들은 이제 곧 폐간될 학술지가 아니라 가장 인기 있는 학술지에 실리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논문들을 양자 정보 기술과 관계가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경향까지 나타났다. 분야 전공자들은 이제 첨단 분야를 연구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직장 걱정 없이 연구한다. … 이때부터 양자컴퓨터 연구 선진국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막대한 규모의 연구비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다소 극단적인 실용주의자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꽉 막힌 꼰대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는데 위 발췌 부분을 읽으면 많은 부분이 이해가 된다. 이런 게 바로 TMI의 힘인 것 같다.


아래는 양자 역학의 관점에서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문구들이다.

입자는 형상이 있는 물체이고, 파동은 물체의 떨림이 공간에 퍼져나가는 현상이다. 이 세상 삼라만상은 모두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발현한다.
미시 세계에서는 물체들의 크기와 질량뿐 아니라 에너지나 속도 같은 물리적 속성도 불연속적으로 변한다. 불연속적으로 변화하는 양의 기본 값을 양자(quantum)라고 부르며, 불연속적인 세상의 법칙을 양자 물리라고 부른다.
나를 비롯해 세상 모든 것은 떨고 있다. … 떨어야 나는 느낀다. 빛과 소리는 파동이다. 우리는 파동을 통해서 세상을 느낀다. 우리는 세상을 보고 듣는다고 말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파동을 통해 느낄 뿐이며 세상 자체를 보고 듣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단 한 번도 무엇인가를 있는 그대로 보고 들은 적이 없다. 그들의 떨림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떨림을 걷어낸 '있는 그대로'란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실체'란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하는 것일까. 양자 역학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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